나인티원: 케이팝 영감 받은 '큐팝(Q-pop)'은 카자흐스탄을 어떻게 바꿨을까?

왼쪽에서부터 자크, 발라, 에이스, 알렘. AZ는 올해 그룹을 탈퇴했다

사진 출처, Ninety One

사진 설명, 왼쪽에서부터 자크, 발라, 에이스, 알렘. AZ는 올해 그룹을 탈퇴했다
    • 기자, 이베트 탠
    • 기자, BBC 뉴스

카자흐스탄의 보이 밴드 '나인티원(Ninety One)'은 2014년 그들의 음악을 사랑해주는 팬들이 생기기를 염원하며 데뷔했다.

그러나 데뷔 후 그들을 기다린 것은 분노, 시위, 그리고 위협이었다.

나인티원은 중독성 있는 음악에 맞춰 안무를 짜고 놀랍도록 세련된 뮤직비디오를 제작한다.

'케이팝(K-pop)'을 떠올리게 하는 그들의 음악은 카자흐스탄의 새로운 팝 장르 '큐팝(Q-pop 또는 Qazaq pop)' 열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들이 대중에게 인정을 받는 과정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Q-pop

프로듀서 베델칸은 "밝은 색상의 옷과 스키니진 등 그들의 스타일은 도발적이었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JUZ Entertainment

사진 설명, 프로듀서 베델칸은 "밝은 색상의 옷과 스키니진 등 그들의 스타일은 도발적이었다"고 말했다

나인티원의 5명 멤버 전원은 긴 머리, 남성용 아이라이너, 화장 등으로 중성적인 매력을 어필하고 기존의 젠더 규범에 도전한다.

시작은 2014년 카자흐스탄의 한 소속사가 밴드를 결성하기 위해 오디션을 개최하면서였다.

당시 오디션에서 AZ, 자크, 발라, 그리고 알렘이 캐스팅됐으며, 이후 한국의 유명 소속사 SM 출신의 에이스가 합류했다.

밴드는 BBC에 "우리는 팀이 되어 함께 곡을 만든 뒤, 춤과 공연하는 법을 배웠고, 준비가 됐을 때 마침내 데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아이돌 밴드의 시작과 다름없다.

하지만 나인티원을 제작한 프로듀서 예르보랏 베델칸은 더 큰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카자흐스탄에 큐팝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케이팝도 2014년 당시 주로 아시아권 팬들의 사랑을 받는 장르였다.

볼링그린 주립 대학교의 민족음악학 교수 메건 렌시어는 "나인티원은 케이팝을 국내식으로 재해석한 그룹으로, 어느 정도는 새롭게 제작된 그룹"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의 데뷔는 보수적인 카자흐스탄 국민에 큰 충격을 안겼다.

베델칸은 "밝은 색상의 옷과 스키니진 등 그들의 스타일은 도발적이었다"며 "밴드 멤버들이 사람들이 평소 입지 않는 옷을 입고 외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카자흐스탄에서 "남성이 밝은 옷을 입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차가운 반응

반응은 차가웠다.

사람들은 콘서트 취소를 요구했고, 멤버들을 "게이"라고 부르는 시위가 벌어졌다.

카자흐스탄의 젠더 전문가 아이자다 아리스탄벡은 BBC에 "카자흐스탄 국민은 아직 남성과 여성의 외모에 있어 매우 보수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민이 사람들의 몸과 행동을 두고 '카자흐스탄다운가?'를 질문하며 감시한다"고 덧붙였다.

나인티원에 반대하는 시위대 대부분은 젊은 남성이었다.

그 중 한 학생은 '페이스 더 뮤직(Face the Music)'이라는 제목의 큐팝 다큐멘터리에서 나인티원에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그들을 "남자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군 복무를 하셨다.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자랑스러웠다. 아버지는 진짜 남자"라며 "나인티원은 무엇인가? 남자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남자라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나인티원은 "복부를 찢어버리겠다"는 등 익명의 위협도 여럿 받았다.

또 '나인티원'이라는 문구가 화려한 옷차림 혹은 게이와 동의어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곧 조롱거리나 모욕의 의미로써 사용됐다.

베델칸은 "누군가 '나인티원스럽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구타 당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며 "직접 목격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콘서트 개최를 허용했던 시 측은 시위가 예상된다며 결국 나인티원의 콘서트를 취소했다.

렌시어 교수는 이 모든 것이 옷차림을 뛰어넘어 나인티원이 상징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진짜' 카자흐스탄 남성 그리고 여성이 취해야 할 올바른 행동이 존재한다고 인식되는 것으로 봤을 때, 국가주의적인 젠더 규범 감시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렌시어 교수는 이어 "이 같은 차이는 전통을 뒤엎는 것을 넘어 잠재적으로 문화적, 국가적 뿌리를 버리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이러한 움직임에 반대하는 보수 공동체는 대부분 지방에 있지만, 젠더 규범이 전 국가적으로 "매우 전통적"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페이스 더 뮤직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한 사회학자 역시 나인티원을 향한 반발이 대부분 지방에서 상경한 부모 아래 자란 젊은이들로부터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도시에서 자라는 사람들은) 더 개방적입니다. 그들은 다문화를 전혀 문제 없이 받아들입니다. 반면 (지방에서 온) 매우 전통적인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사회의 보수적 가치를 장려하죠. 나인티원이 이들 젊은이가 어느 집단에 속하는지 식별해주는 척도가 된 거죠."

'부드러운 소년'과 과잉 남성성

성공적인 공연을 마친 나인티원

사진 출처, Juz Entertainment

사진 설명, 성공적인 공연을 마친 나인티원

밴드는 결국 반대 여론은 이겨내고 인기를 얻었다.

렌시어 교수는 "카자흐스탄의 도시 청년들이 이미 케이팝을 알고 좋아했기 때문에 그들에 맞춰 국내에서 만들어진 음악을 즐길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금은 카자흐스탄 전역에 걸쳐 현대 음악이 대중화됐지만, 밴드가 처음 시작했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밴드 멤버들은 어렸을 적 "카자흐스탄에 현대 음악을 하는 음악가가 없었기 때문에 주로 외국 음악을 들었다"며 "예전에는 민속 음악인 '토이(toi)'를 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민속 음악 '토이(toi)'를 연주하는 모습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카자흐스탄 민속 음악 '토이(toi)'를 연주하는 모습

싱가폴 국립 대학의 사비나 인사바예바 박사후연구원은 "나인티원이 '현대 음악'을 했고, 이것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도록 도왔다"고 분석했다.

한편 아리스탄벡은 나인티원의 존재가 "젠더적으로 매우 규범에 맞는 밴드"로 구성됐던 카자흐스탄 음악계에 혼란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나인티원이 카자흐스탄에 '부드러운 소년'의 문화를 가져왔다"며 이들이 "과도하게 남성적으로 보이려 하거나 외모를 통해 남성성을 어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음악계에서 이를 최초로 시도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공연장에 수천 명의 사람들을 불러모았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카자흐스탄 대중이 이 비주류적인 남성성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카자흐스탄에는 수십 개의 큐팝 밴드가 탄생했다.

모두 나인티원의 성공에서 영감을 받은 이들이다.

큐팝은 이어 터키,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과 같은 이웃 국가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전 세계적인 팬층도 생기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큐팝을 접했다는 쿠웨이트에 거주 중인 인도 국적의 칼리나 디소우자는 BBC에 "케이팝을 이미 좋아해서 더 알아보던 중에 큐팝도 덩달아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큐팝이 케이팝과 닮았지만, 여전히 독특한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며 "음악에 많은 힘을 쏟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렌시어 교수는 두 장르가 모두 하나의 성별로 이루어진 잘생기고 젊은 멤버들로 구성됐다는 공통점이 있는 데 반해, 큐팝은 카자흐어를 진흥하기 위한 동기가 있다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 구소련 공화국 중 하나였던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신생국이다.

2009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국민의 85%가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쓸 수 있지만, 카자흐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쓸 수 있는 이들은 62%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카자흐스탄 정부는 2018년 내각 회의에서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하는 등 카자흐어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케이팝 전문가 이규탁 교수는 "큐팝은 (카자흐스탄의) 민족 문화를 구축하는 도구로 여겨져 왔지만, 케이팝은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문화 제품에 가깝다"고 BBC에 말했다.

화두를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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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Juz Entertainment

그렇다면 큐팝은 카자흐스탄의 젠더 규범을 바꾸어놓았을까?

인사바예바 박사는 여전히 대다수 카자흐스탄 국민은 나인티원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밴드가 "카자흐스탄 남성성에 대중화된 대안을 제공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젠더 규범을 크게 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밴드가 이 주제에 대한 화두를 던진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렌시어 교수는 "그들이 실제로 젠더 규범을 바꾸어놓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그들은 외모와 행동을 통해 전통적인 젠더 규범에 도전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밴드가 "카자흐스탄 남성이 어떻게 보이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젠더 규범) 주제에 대한 대화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