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코빈: 영국 총선 패배 노동당 대표 '다음 선거는 이끌지 않겠다'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가 '또' 패배했다

지난 12일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제러미 코빈 대표가 이끄는 노동당은 '보리스의 벽'을 결국 넘지 못했다.

그는 "매우 실망스러운 밤"을 경험한 노동당의 대표로서 "다음 선거 때 당을 이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부문 재정지출을 늘리고,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겠다는 게 코빈 대표의 주요 공약이었지만 지키기 어렵게 됐다.

그는 비판론자들 사이에서 '턱수염 난 좌파(Bearded leftie)'의 전형이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집권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순수함에 더 의미를 뒀던 과거 노동당으로 회귀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가 정계에 흔치 않은 '정직한 인물'이라며 "새로운 세대에 영감을 주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맞섰다.

그러나 코빈 대표의 혁신적인 계획들은 표심을 사로잡진 못했다.

BBC가 ITV, 스카이 뉴스와 함께 투표 마감 직후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는 보수당은 368석, 노동당은 191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했다.

출구조사 결과가 맞다면 2017년 총선보다 보수당은 50석 더 많고, 노동당은 71석 더 적다.

코빈 대표는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는 동안 대표직을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코빈 대표의 정치 여정을 되짚어보고 그의 향후 입지를 전망해 봤다.

'지치지 않는 논쟁가'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올해 일흔 살, 코빈 대표는 전통적 정치인과는 많이 다르다는 평을 받아 왔다

올해 일흔 살, 코빈 대표는 지난 40여 년간 '영국 좌파'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는 논쟁 유발자이자 지치지 않는 '선전물 제작자'였으며 각종 집회 및 시위에선 늘 그를 볼 수 있었다.

'신노동당(New Labour)'을 주창하던 토니 블레어 정권 당시 노동당은 고등교육세 도입이나 공공보건 서비스의 사기업화 방안 등에 손을 뻗으며 우파 성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장 논란이 됐던 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국 편을 들었던 일이다.

당시 코빈 대표 등 몇몇 인물은 힘없이 잊혀지는 듯했다.

그러나 20여 년이 흐르며 많은 노동당 지지자들은 신노동당에 대한 믿음을 잃어 갔다. 한국으로 치면 '여의도'인 '웨스트민스터'에 신물이 난 것이다.

2015년 그가 노동당 당수로 선출되자 당 내에선 큰 반발이 일었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계 분위기를 휘어잡는 데 그보다 더 적격인 인물은 없었다는 평가가 많다. 그만큼 코빈 대표는 여러 면에서 전통적 정치인들과는 달랐다.

'코빈매니아'

자전거를 타고 있는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

사진 출처, Reuters

사진 설명, 그는 승용차 대신 자전거를 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코빈 대표는 검소한 생활 방식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국회의원 중 업무추진비를 가장 적게 청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돈을 많이 쓰진 않는다"며 "승용차 대신 자전거를 모는 등 매우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술과 단 것을 거의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이기도 하다.

웹사이트 맘스넷과의 질의응답에서 '가장 좋아하는 비스킷이 뭐냐'는 질문이 나오자 그는 "건강 유지 측면에서 난 완전히 '반당(反糖)파'로 비스킷을 거의 먹지 않는다"고 답했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쇼트브레드"라고도 덧붙였다.

파이낸셜 타임즈에 따르면 그는 직접 기른 과일로 잼을 만드는 것을 즐기며, 의회 내 치즈 소모임에도 가입했다.

대마초를 한 번도 피운 적이 없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그가 성장해 온 좌파 진영에선 드문 일이다.

영국에서 대마초 흡연은 불법이지만, 종종 일부 유명인사가 '일탈 경험'으로 대마초 흡연을 꼽는다.

엘리트 교육에 분노했던 중산층 소년

1987년의 코빈 대표
사진 설명, 중산층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란 코빈 대표(1987년 사진)

코빈 대표는 중산층 가정에서 별다른 문제 없이 자랐다.

유년기는 잉글랜드의 시골 지역에서 보냈으며, 웨일즈의 사립학교를 다녔다.

1964년 학교에서 모의 선거를 열었을 때 그는 반 내 노동당 지지자 두 명 중 하나였다. 노동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급우들의 조롱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엘리트 교육에 분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코빈 대표는 세 번 결혼했다. 두 번째 아내와는 '아들을 동네 공립학교 대신 사립학교에 보냈다'는 이유로 갈라선 것으로 알려졌다.

'미스터 턱수염'

1984년의 코빈 대표

사진 출처, PA

사진 설명, 그는 19세 때부터 수염을 길렀다고 한다(1984년 사진)

청년기엔 2년간 자메이카에서 구호단체 자원봉사를 했다. 19살 때부터 길러 온 턱수염 탓에 '미스터 턱수염'으로 불렸다.

귀국 이후엔 노동조합 활동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그의 진짜 열망은 정당 정치에 있었다.

1974년 그는 영국 북부 런던 헤링게이 선거구에서 의원으로 당선된다.

같은 해 노동당원이자 대학 강사였던 제인 샤프먼과 결혼한다. 샤프먼은 "코빈의 정직함과 원칙주의 때문에 결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에만 몰두하는 코빈 대표의 모습에 샤프먼은 곧 피로를 호소하게 됐다. 두 사람은 1979년 이혼했다.

1987년 그는 칠레 출신 클라우디아 브라시타와 결혼해 세 아들을 두게 된다. 이들은 1999년 헤어졌다.

2012년 세 번째 결혼 상대는 마흔여섯 살의 멕시코 공정무역 커피 수입상 로라 알바레즈였다.

'문제적 남자'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

사진 출처, PA

사진 설명, 1984년엔 아일랜드 통합 운동에 앞장섰다

일각에선 그의 성향이 '강경 좌파'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50여 년간 코빈 대표가 반대해 온 사안들 중엔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과 이라크 전쟁 등이 있다. 특히 이라크전에 대해 그는 비핵화와 팔레스타인과의 유대를 강조했다.

그의 정치적 성향은 문화적 취향과도 맥락이 맞닿아 있다. 일례로, 코빈 대표는 아일랜드 국수주의자 시인 예이츠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로는 나이지리아 작가 치누아 아체베를 꼽는다. 아체베의 대표작은 식민주의와 전통적 사회간 갈등을 그린 작품 '멀어지는 것들(Things Fall Apart)'이다.

코빈 대표는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즐겨 읽는다. 영화 중에선 '위대한 개츠비'와 '카사블랑카'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급진주의와 반유대주의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

사진 출처, EPA

사진 설명, 공공부문 재정지출을 늘리고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겠다는 게 노동당의 핵심 공약이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노동당 정권은 대대적인 변화를 약속했었다. 지난 11월 발표된 공약집엔 역대 가장 급진적인 내용이 담겼다.

고소득자와 화석연료 기업에 세금을 더 물리겠다는 방안도 그 중 하나다.

이 돈으로 공공주택을 짓고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리며 '탄소 배출 없는 경제 체제'를 정립시키겠다는 게 골자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도 약속했다.

그는 이스라엘을 '제국주의 나라'라고 부른다. 코빈 대표 체제의 노동당은 오랫동안 반유대주의로 비판받아 왔다.

코빈 대표는 이같은 낙인을 지우기 위해 그다지 빠르게 대응하진 않았다.

다만 그는 "노동당 내 반유대주의가 설 곳은 없다"며 "(논란 관련) 발생한 모든 일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노동당 연대조직인 유대노동운동(JLM)의 보고서는 "유대인 반대 목적으로 난민을 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많은 노동당 의원이 반유대주의를 문제 삼으며 당을 떠났다.

브렉시트 문제엔 '미적지근'

화물차에 '노동당에 투표하는 것은 인종차별주의를 부추기는 것' 등 노동당 비판 문구가 쓰여 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화물차에 '노동당에 투표하는 것은 인종차별주의를 부추기는 것' 등 노동당 비판 문구가 쓰여 있다

코빈 대표가 그간 브렉시트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게 이번 선거의 패착이라는 분석도 있다.

다만 그는 유럽연합에 회의적 태도를 보여 왔다.

2016년 브렉시트 결정 국민투표 당시엔 잔류 지지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밀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앞서 그는 2차 국민투표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유럽연합과 신뢰할 만한 탈퇴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애매모호한 자세를 유지했다.

그의 애매한 태도를 두고 일부 지지자들은 통합이 시급한 현 영국 정세에 필요한 일종의 실용주의라고 그를 감쌌다.

그러나 코빈 대표의 실용주의에 유권자들은 등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