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선에서 총리직 지켜낸 '유럽 통합 회의론자'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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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영국 국민들은 또다시 존슨 총리의 손을 들어줬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가 총리 자리를 지켜냈다.

앞서 그는 지난 7월 보수당 테리사 메이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총리직에 올랐다.

12일 치러진 이번 총선에서도 영국 국민들은 존슨 총리의 손을 들어줬다.

존슨 총리는 언론인에서 정치인으로 전향한 인물이다. 처음 당권을 쥐었을 때, 많은 이들은 그가 권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을 거라 내다봤다.

그러나 존슨 총리는 비판론자들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그는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을까.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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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그는 정치인이자 '셀러브리티(Celebrity)'로서의 이름값을 꾸준히 드높여 왔다

터키계 후손으로 미국서 출생

존슨 총리는 스스로를 '유럽연합 회의론자'로 칭하며 유럽 통합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고수해 왔다.

디만 그를 고립주의자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다.

존슨 총리는 터키 언론인의 증손자로, 외교관 아버지와 예술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 뉴욕에서 출생해 온가족이 영국에 정착하기 전까지 미국과 영국, 브뤼셀 등지를 옮겨 다녔다.

영국의 엘리트 사립학교인 이튼스쿨에 다녔다. 이 때부터 특유의 '괴짜 성격'을 발휘한 것으로 전해진다.

옥스포드 대학교 재학 시절엔 토론 집단인 '옥스포드 유니언'을 이끌었다.

학창 시절의 존슨 총리(1986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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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학창 시절의 존슨 총리(1986년 사진)

논쟁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은 언론인 시절에도 잘 드러났다.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에선 인용구를 조작했다가 해고됐다.

이후 그는 보수 일간지 텔레그래프의 브뤼셀 특파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BBC 정치 담당 선임기자 존 피에나르는 "존슨 총리의 저널리즘은 사실과 유럽통합 회의론적 소설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다"고 평했다.

일부 동료들은 당시 젊은 기자였던 존슨 총리의 태도가 "지적으로 부정직했다"고 봤다. 미국 온라인 매체 인디펜던트의 데이비드 어스본 편집장도 같은 평을 했다.

선동적 칼럼니스트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2000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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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더타임즈에선 해고된 전력도 갖고 있다(2000년 사진)

영국으로 돌아온 뒤 존슨 총리는 텔레그래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우파 성향 잡지 스펙테이터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당시 그는 아프리카인에 대해 경멸적 단어를 쓰거나 한부모가정 아이들을 "잘못 컸고, 무지하며, 공격적인 이들이며 사생아들"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논란도 있었지만 스펙테이터의 판매 부수는 늘었다. 그의 이름값 역시 덩달아 올라갔다.

패널들이 한 주의 뉴스에 대해 조소를 날리는 BBC 시사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다.

여러 발언들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그와 동시에 존슨 총리는 '정치판 유명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혀 갔다. 정치인 데뷔 무대의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셀럽(Celebrity) 정치인'

런던올림픽 홍보대사 활동 당시 존슨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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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런던시장이던 2012년엔 런던올림픽 개최로 덩달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존슨 총리는 2001년 영국 옥스포드 인근의 보수당 텃밭, 헨리온템스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다.

2007년엔 런던 시장직에 오르며 국제 정계에 발을 디뎠다.

2012년 올림픽 개최로 전 세계의 시선이 런던에 쏠렸을 때, 런던시 자체가 올림픽을 주최한 게 아님에도 그는 일종의 홍보대사를 맡았다.

그의 주요 대중교통 정책 중 하나는 2010년 도입된 이른바 '보리스 바이크' 공공자전거 정책이다. 정치인이자 유명인사로서의 그를 상징하는 정책으로도 꼽힌다.

존슨 총리는 종종 직접 공공자전거를 몰고 등장했다. 할리우드 배우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함께한 적도 있었다.

비판론자들은 공공자전거가 존슨 총리의 발상이 아니라며 "전임 시장이 구상한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공공자전거를 타고 있는 존슨 총리와 아놀드 슈왈제네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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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일명 '보리스 바이크'는 사실 전임 런던시장의 정책이었다

존슨 총리는 비판에 정면으로 맞섰다.

다이애나비를 기리기 위해 런던 템스강에 '정원 다리'를 설치하겠단 야심찬 계획도 내놨다.

이 계획은 후임 시장인 사디크 칸에 의해 좌절됐다. 이미 7000만 파운드(한화 약 1098억 원)가 쓰인 뒤였다.

브렉시트 챔피언

그는 2015년 총선에서 의원직을 다시 얻어내며 의회로 복귀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둔 당시만 해도 브렉시트에 대한 존슨 총리의 입장은 매우 불분명했다.

그는 한 신문에 "영국은 유럽연합을 떠나야 한다"는 사설을 썼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잔류해야 한다"고 의견을 번복했다.

이후 그는 궁극적으로는 브렉시트 지지 방향으로 마음을 굳혔다. 이는 보수당 대표였던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의 입장에 반하는 것이었다.

탈퇴파가 국민투표에서 이기고 캐머런 총리가 사임하자, 존슨 총리는 당대표에 도전했다.

당시 선거에선 테리사 메이 전 총리가 이겼다. 다른 후보자들은 투표가 시작되기도 전에 패배를 인정한 상황이었다.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 진행 과정에서의 활동을 인정받아 메이 정권의 외무장관으로 임명됐다.

영국 공공보건서비스(NHS) 로고가 박힌 차량 앞에 서 있는 존슨 총리

사진 출처, PA Media

사진 설명, 브렉시트로 '매주' 수천억 원의 공공재정금이 충당될 거란 '황당 공약'도 내놨다

국민투표 캠페인 기간, 그는 유럽연합 탈퇴로 매주 공공보건 부문 재정 3억5천만 파운드(한화 5500억 원) 충당이 가능해질 거란 미심쩍은 주장을 내놨다.

이같은 주장은 존슨 총리에 대한 브렉시트 지지자들의 생각엔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이후 존슨 총리는 메이 내각을 사퇴하며 "메이 총리는 브뤼셀, 즉 유럽연합과의 협상에서 좀 더 배짱을 보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당대표 및 총리직에 오른 뒤 그는 협상안 없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이른바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12월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하면 2020년 1월 21일 예정대로 유럽연합을 탙퇴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브렉시트의 시대 영국에선 강경한 의견과 쇼맨십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든 것으로 보인다. 존슨 총리는 삶 전반에 걸쳐 그가 이 둘 모두에 능력이 있음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