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기세척기에서 플라스틱이 잘 마르지 않는 이유

식기세척기에 플라스틱 식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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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식기세척기에 플라스틱 식기가 담겨 있다
    • 기자, 스테판 다울링
    • 기자, BBC 퓨처

현대 주방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인 플라스틱 식기는 식기세척기에 넣어도 제대로 마르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다. 왜 마르지 않는 걸까?

플라스틱 식기만 잘 마르지 않는다는 느낌은 상상이 아니며 그렇다고 식기세척기의 잘못도 아니다. 현대의 식기세척기는 세척뿐만 아니라 건조에도 효과적이다. 단 한 가지 플라스틱 식기만 빼면 말이다.

수동 식기세척기는 19세기 중반부터 개발됐으나, 식기세척기의 진정한 르네상스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볼 수 있다. 당시 주방 찬장과 조리대가 표준화되면서 처음엔 상업적 용도로 쓰이다 이후 가정에도 점차 퍼졌다. 1970년대 들어선 가격도 훨씬 저렴해지면서 빠르게 보급됐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플라스틱 식기도 함께 퍼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식기세척기 온도를 아무리 높이 설정해도 플라스틱 식기에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문제가 제기됐다. 식기세척기 제조업체들은 몇십 년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열역학적 사실을 어느 정도 탓해볼 수도 있다. 플라스틱으로 된 조리 기구는 금속 식기보다 밀도가 낮아 열을 훨씬 더 빨리 잃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영국 '왕립 공학 아카데미'의 회원이자 랭커스터대 공학과 명예 교수인 로저 켐프는 "플라스틱 접시와 커틀러리는 세라믹이나 스테인리스로 만든 것보다 훨씬 가벼우면서도 비열 용량(물질의 온도를 1도 높이는 데 드는 열량)은 거의 비슷하기에 플라스틱에선 열이 더 빨리 빠져나간다"고 설명했다.

금속이나 도자기 식기에선 열이 계속 남아 있어 공기보다 약간 높은 온도가 유지돼 수분이 증발하기 쉬운 것이다.

"플라스틱의 경우 열이 쉽게 빠져나가기에 식기세척기의 일반적인 온도를 크게 웃도는 높은 온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플라스틱 식기에선 수분이 증발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이유로 매우 가벼워 열이 보존되지 않는 얇은 알루미늄 그릇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또 다른 물리적인 요소로 '표면 에너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플라스틱 표면에선 수분이 구슬처럼 뭉치는 반면 유리에선 얇은 층으로 퍼진다. 유리는 표면 에너지가 강하기 때문에 액체와의 접착력도 우수하다.

그런데 수분이 더 잘 퍼질수록 수분층은 더 얇아지고, 더 쉽게 증발한다.

색색의 플라스틱 컵들이 식기세척기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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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석유를 원료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에선 세라믹이나 금속에서보다 수분이 뭉쳐 물방울을 형성하므로 증발 속도가 느리다

영국의 물질 과학자인 안나 플로자이스키 박사 또한 "또 다른 요인으로는 플라스틱은 결국 석유가 원료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면서 "모두 알다시피 기름과 물은 섞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물이 플라스틱과 만나도 퍼지지 않고 물방울처럼 뭉칩니다. 이런 물방울의 표면적은 매우 작죠. 반면 유리, 세라믹 금속 등은 친수성이 매우 강한 물질로, 이들 표면에선 물이 더 퍼집니다."

"이런 물질들은 온도도 더 높을 뿐만 아니라 물이 훨씬 더 얇게 퍼지기 때문에 더 쉽게 마릅니다."

또한 플로자이스키 박사는 "우리가 늘 점심 도시락을 담아 오는, 오래된 플라스틱 식기의 경우 더 물기가 마르지 않을 수 있다"면서 "플라스틱에 긁힌 곳이 많아질수록 물이 달라붙을 수 있는 표면적이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물이 항상 모든 표면에서 고르게 마르지 않기에 식기세척기 제작자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는 게 가정학자인 재클린 마리아니의 설명이다.

식기세척기 제조사의 컨설턴트로도 활동하는 마리아니는 "일부 브랜드에선 빠른 건조를 위해 '건조 과정' 동안 뜨거운 공기를 순환하기 위해 건조 팬을 장착하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비교적 저렴한 식기세척기 모델은 이러한 팬 없이 내부 대류에만 의존하기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어떤 브랜드에선 문이 자동으로 몇 밀리미터씩 열리면서 차가운 공기를 들여보내 순환과 건조를 촉진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는 마리아니는 어떤 방법을 쓰든 간에 플라스틱 식기에선 물이 제대로 마르지 않아 보통 소비자들이 천으로 닦아서 마무리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가전 제조업체 'GE 어플라이언스'의 아담 호프만 엔지니어링 책임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널리 쓰는 재질임에도 불구하고 신형 식기세척기 모델 테스트 시 플라스틱 식기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세라믹 그릇들이 식기세척기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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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세라믹 그릇은 열이 더 오래 남아 있어 표면의 수분이 증발하기 쉽다

식기세척기 세제 또한 발전을 거듭해 현재는 건조를 돕는 계면활성제가 들어 있다. 물의 표면장력을 약화시키는 물질로, 이렇게 되면 식기세척기 속 식기에 물기가 덜 달라붙게 된다.

2019년 독일의 화학 기업인 '바스프'는 플라스틱 식기가 더 빨리 건조될 수 있도록 특별히 설계된 "린스 에이드(헹굼제)" 신제품을 출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더 빠른 건조를 위해 식기세척기 제작사는 단순히 뜨거운 공기 순환이나 계면활성제 이상의 방법을 찾아 나섰다.

그중에서도 고양이 화장실에 까는 모래에서부터 핵폐기물 처리까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다공성 광물인 제올라이트는 식기세척기 내부에 남은 수분을 빨아들이는 데에도 유용하다.

실제로 2000년대 말 제올라이트를 사용한 고급 세척기 모델이 출시됐으며, 이러한 기술이 계속 인기를 끌고 있다.

제올라이트는 물 흡수 능력이 탁월하다. 다공성 물질이기에 표면적이 넓어서 무게의 40% 이상까지 수분을 흡수할 수 있다.

게다가 물을 흡수하면서 동시에 열을 방출하는 능력도 지녔다.

그래서 식기세척기 내부를 들여다보면, 세척 후 건조 과정에 돌입해 물기를 머금은 공기가 내부에 순환하면 제올라이트 알갱이들이 수분은 빨아들이고 열을 방출한다. 이렇게 방출된 열은 식기세척기의 내부로 다시 이동해 건조 시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다음번에 세척하는 동안 전열선으로 가열된 제올라이트 알갱이들은 수분을 배출해 건조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해낼 준비를 마치게 된다.

제올라이트를 건조하는 과정에서도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전열선이 세척 및 건조 전 과정에 걸쳐 필요한 것은 아니기에 제올라이트를 사용한 식기세척기는 일반 모델에 비해 약 20% 정도 에너지 소비가 적다는 게 제작사의 주장이다.

그런데 여러분 가정에서 사용하는 식기세척기가 제올라이트 모델이 아니라면 또 어떤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제올라이트 알갱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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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일부 식기 세척기에선 물을 흡수하고 열을 방출하는 제올라이트를 사용하기도 한다

영국 소비자 매체 '위치?'의 나탈리 히친스 가정용품 부문 담당자는 세척기에서 식기를 꺼낼 때 플라스틱 식기는 수건으로 한 번 더 말려줘야 할 때가 있다"면서 "또한 플라스틱 식기는 세척기 내에서도 윗부분에 놓아야 열기에 모양이 뒤틀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척기에서 플라스틱 식기를 꺼내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마리아니에 따르면 "만약 사용하는 식기세척기에 건조 팬이 없거나 건조 과정에서 문이 자동으로 살짝 열리는 기능이 없다면, 직접 문을 살짝 열어 습한 공기를 내보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대신 부엌 바닥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결로에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더해 21세기에 걸맞게 SNS에서 입소문이 난 방법도 있다.

올해 초 호주의 어느 여성이 올린 식기세척기 안의 플라스틱 식기를 말리는 팁은 '틱톡'에서 화제가 됐다. 해당 영상에 따르면 세척기 가동이 끝나자마자 문을 조금 열고 마른행주를 문에 반쯤 걸쳐둔 뒤 다시 문을 닫으면 된다.

이 방법에 대해 플로자이스키 박사는 "물기를 흡수하고 있지만 여전히 식기세척기 내부는 뜨겁기 때문"이라고 원리를 설명했다.

그렇긴 하지만 플로자이스키 박사가 생각하는 가장 효과적인 물기 제거법은 무엇일까.

바로 "식기세척기에서 꺼낸 이후 건조대에 올려 두는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