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쳐요'⋯코로나로 되살아난 시골의 작은 학교
- 기자, 이윤녕
- 기자, BBC 코리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국의 많은 아이들은 등교 수업 대신 온라인 수업을 듣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학생 수 부족으로 위기를 겪던 시골의 작은 학교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도시 학교들의 수업 차질이 계속되면서 시골의 작은 학교에 관심을 갖는 학부모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서울을 떠나 가족과 함께 시골의 작은 학교로 전학을 온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다
초등학교 5학년인 시후(11)는 밝은 햇살과 집 마당에 뛰노는 강아지들 소리에 매일 아침잠을 깬다. 시후가 지금 사는 곳은 전라남도 순천의 작은 시골 마을에 위치한 전통 한옥집이다. 넓은 마당에는 언제든 앉아서 쉴 수 있는 나무 그네가 있고 집 앞에는 감자와 옥수수, 가지 등 다양한 작물을 키울 수 있는 텃밭도 있다.
근처에는 주인집에서 키우는 닭장도 있어 아침이면 암탉이 갓 낳은 따뜻한 달걀을 직접 꺼내 볼 수도 있다. 집 주변으로는 푸른 산과 커다란 나무가 가득 들어서 있고, 집 앞을 조금만 걸어 나가면 마을 사람들의 생계가 달린 넓은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텃밭 가꾸면서 돌 고르는 작업을 제가 직접 했어요. 큰 돌 빼는 작업이요. 지금은 제가 고추랑 가지, 상추에 매일매일 물을 주고 있는데 6월 중순쯤에 수확할 예정이에요."

언뜻 시골 어린이의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지만 사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시후의 삶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주변엔 온통 고층 건물들로 가득했고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안에서 동생과 공놀이를 하거나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서울에서 태어나 다른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던 시후에게 시골에서의 이런 생활은 평소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제가 태어나서 언제 이런 텃밭을 가꿔보겠어요. 지금은 진짜 제가 평소 할 수 없었던 모든 걸 다 해보고 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로 잃어버린 교육
시후네 가족은 지난 2월, 서울에서 차로 4시간 넘게 떨어진 이곳 순천으로 이사를 왔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녀야 하는 아빠를 제외하고 엄마와 중학생 누나, 남동생이 모두 함께 학교와 생활 터전을 옮겼다. 평생 서울에서만 살아온 가족이 작은 시골 학교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코로나19 대유행의 영향이 컸다.
시후를 포함해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오수정 씨는 코로나 장기화로 비대면 수업이 계속되자 부모로서 이를 지켜보는 것이 너무도 마음 아팠다고 했다.
"작년 3월부터 등교 수업 대신 비대면 온라인 수업을 했어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뛰놀지 못하고 화면 안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났어요. 나중에는 친구들 이름도 잘 모르고 선생님과 어떤 애정도 못 쌓고 그냥 다음 학년으로 올라갔어요."
지난해 2월,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가장 문을 먼저 닫은 건 학교들이었다. 지난해 4월에는 악화된 코로나 상황 때문에 한 달 넘게 개학을 미룬 뒤에야 겨우 온라인 개학을 할 수 있었고, 이후에도 아이들이 학교에 나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비대면 수업 중에 제일 황당했던 건 눈으로 체육 수업을 한다는 거예요. 눈으로 하니까 아이들이 잘 따라 하지도 않아요. 어쩌다 오랜만에 학교에 가도 책상이 다 멀리 떨어져 있고 대화도 못하게 하고 칸막이를 쳐서 밥을 먹었어요. 그걸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작년 내내 아이들의 비대면 수업을 지켜본 수정 씨는 중대 결심을 내렸다. 코로나 상황이 나쁘지 않고 아이들 수도 적은 시골 학교로 아이들을 전학 보내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수도권의 큰 학교들과 달리 시골 학교들은 코로나 대유행 속에서도 대부분 원격 수업이 아닌 등교 수업을 했다. 다행히 올해 초 서울교육청에서 도시 아이들의 생태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농촌 유학'이라는 이름으로 거주 지원금이나 행정 절차 등의 지원을 시작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거주지와 학교를 완전히 옮긴다는 건 분명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일단 6개월 혹은 1년만 살아보자고 했지만 아이들은 불편한 시골 생활을 걱정하며 엄마의 생각에 반기를 들었다.
"일단 도시에서 편하게 누리던 것들을 하루아침에 포기해야 하잖아요. 교육적인 부분을 생각하면 시골에는 근처에 학원도 없고요. 하지만 저는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공부만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골에서 함께 밭을 가꾸고 농작물을 수확해 보면서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어요."
주목받는 시골 학교
이렇게 시골 작은 학교에 관심을 두는 건 비단 시후네 가족뿐만이 아니다. 코로나 상황이 1년 넘게 장기화되면서 대도시 학교 수업에도 적잖은 차질이 생겼고 이에 시골 학교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이다.
시후 가족이 살고 있는 전남 지역만 해도 올해 80명이 넘는 아이들이 서울에서 전학을 왔다. 시후가 다니는 월등초등학교에만 올해 7명의 서울 아이들이 내려와 함께 수업을 듣고 있다.

코로나 대유행 속에서 시골 학교들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등교 수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밀집한 서울 등 대도시보다 코로나에 영향을 덜 받기도 했지만 시골 학교는 학생 수가 적다 보니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도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시골 학교들은 코로나 대유행 속에서도 대부분 평소처럼 등교 수업을 해오고 있다.
실제로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초등학생의 평균 등교 일수는 42.4일로 학교에 나간 시간이 한 달 반도 채 되지 않았다. 반면, 같은 기간 전남 지역은 서울 학생의 3배가 넘는 136.7일을 등교했다.
다른 시골 지역도 마찬가지다. 학생 수 부족을 겪고 있던 강원도의 작은 학교들에도 최근 인근 도시에서 온 전학생들이 늘면서 전례 없는 활기를 띠고 있다. 일부 학교는 늘어난 도시 전학생을 수용하기 위해 학교 교실과 건물을 새로 짓는 경우도 있다.
활기 되찾은 학교와 마을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과 오랜 도시화의 영향으로 시골의 작은 마을에는 학생 수 부족으로 폐교 위기를 겪는 학교들이 많았다. 시후가 현재 다니고 있는 월등초등학교의 경우, 원래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 수가 33명에 불과했고 학년마다 한 교실만 겨우 만들 수 있을 만큼 작은 학교였다.
월등초 5학년을 담당하고 있는 신영미 교사는 새로운 도시 아이들의 전학이 시골 아이들에게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제가 가르치는 초등학교 5학년 같은 경우는 기존 학생이 한 명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올해 서울에서 세 명의 전학생이 오니까 이제 같이 협동 프로젝트 활동도 하고 다양한 체육 활동이나 음악 활동도 할 수 있게 돼서 수업이 풍성해졌어요."
비대면 수업으로 또래와의 관계 형성 기회마저 잃어버린 도시 아이들에게 시골의 작은 학교는 새로운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 동시에 오랜 시간 또래 친구들을 찾을 수 없었던 시골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

"시골 학교는 학생 수가 적다 보니까 사회성을 키우거나 또래 관계를 형성할 만한 기회가 없었죠. 하지만 이렇게 또래 친구들이 오니까 같이 놀고 얘기하면서 또래 문화를 형성하게 되고 사회성도 훨씬 좋아졌어요."
또, 삭막한 도시가 아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시골 학교가 갖는 또 다른 장점이기도 하다. 코로나 대유행 상황이지만 아이들은 청정한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같이 뛰어놀고 많은 걸 체험하며 시간을 보낸다.
수정 씨는 시골에 온 뒤 아이들의 달라진 얼굴에서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는 걸 느낀다고 말한다.
"일단 표정이 변하는 게 보이잖아요. 엄마들은 묻지 않아도 아이 표정만 보면 알잖아요. 아이가 행복해 보이는 표정, 그게 느껴져요."
시후네 가족처럼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시골로 오면서 한적했던 시골 마을에도 활기가 생겼다.
월등초 신영미 교사는 예전에는 아이들을 찾기 힘든 마을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고 말했다.
"시골은 대부분 고령화 사회잖아요. 하지만 이제 아이들이 뛰어노는 마을이 된 거죠. 아이들과 젊은 가족들이 함께 지내면서 지금은 마을에 시끌벅적한 웃음소리도 많이 들리고 활기찬 분위기가 된 것 같아요."
미래 교육의 답이 될까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 교육의 고질적 문제로 꼽히는 입시 위주의 교육은 많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심리적 압박이 되고 있다. 시후네 가족이 처음 시골 학교로의 전학을 결정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모두 반대한 것도 바로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

"시댁에서도 그랬고 친구 엄마들이랑 주변에서 거의 다 반대했어요. 저를 이상하게 봤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다 교육 문제 때문인 것 같았어요. 여기 와서 얻는 것이 더 많을 거란 걸 모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코로나 대유행 상황에서도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농촌의 작은 학교들은 미래 교육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월등초 신영미 교사는 시골의 작은 학교들이 아이들의 전인 교육을 위한 곳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도시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 벌써 지쳐서 공부를 포기하거나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들도 있잖아요. 하지만 이곳은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연에서 뛰어놀면서 아이들답게 자라고 개성을 키울 수 있는 곳이에요. 아이들이 인성적으로, 정서적으로 따뜻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시후는 내년에 학년이 올라가면 다시 서울로 돌아갈 계획이다. 학교 생활도 시골 생활도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만 직장 때문에 함께 살 수 없는 아빠 때문이다. 인터뷰 말미, 엄마가 시후에게 지금 이 시간들이 나중에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 같은지 묻자 시후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세 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그중에 하나에 들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