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과 감옥 탈출해 찾은 새 삶... 영국 선거 도전하는 탈북민들

- 기자, 이윤녕
- 기자, BBC 코리아
오는 5월 6일 실시되는 영국 지방선거에 도전하는 두 명의 탈북민이 있다. 탈북민이 한국 외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직 선거에 출마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 보수당 후보로 맨체스터 지역에서 출마하는 박지현 씨와 티모시 조 씨를 화상으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BBC 코리아에 영국에서의 삶과 선거 출마 이유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두 번의 탈출
영국을 비롯해 유럽 지역에서 북한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는 52살의 박지현 씨는 맨체스터 지역 구의원 보수당 후보로 최종 선정됐다. 이 지역은 이번 선거에 7명의 후보가 나왔을 만큼 격전지로 꼽힌다.
영국에서 13년을 보낸 박 씨가 선거 출마 결심을 한 건 '도움을 받던 삶'에서 이제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지방의회도 정치로 볼 수 있지만 영국에서 구의원이라는 자리는 정치라기보다는 커뮤니티 리더를 뽑는 자리예요. 그래서 공직이긴 하지만 월급을 받고 일하는 게 아니라 자원봉사로 일하죠. 저는 그래서 더 마음에 들어요."

사진 출처, Jihyun Park
한국 언론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진 그는 1998년 '고난의 행군' 당시 남동생을 데리고 북한을 탈출했다. 중국에서 매매혼을 겪으며 아들을 낳았고, 이후 강제북송을 당해 끔찍한 수용소 생활도 견뎌냈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탈북한 그는 지난 2008년 영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무사히 새 보금자리에 정착했다.
탈북 여성이 겪는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그는 이후 탈북 여성과 아동들을 위한 인권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유럽을 무대로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탈북민들의 정착을 돕는 일에도 앞장섰다.
"처음 영국에 왔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언어였어요. 중국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언어를 모르면 생계유지가 힘드니까요. 제가 처음 왔던 2008년 당시만 해도 맨체스터에 아시아인들이 거의 없어서 집에 돌을 던진다거나 하는 인종차별 경험도 많이 했어요."
"먼저 언어부터 배워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내가 이 사회를 아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죠. 그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줘야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한곳에 계속 정착해 살며 사람들과 대화했고 나중에는 다들 친해졌어요. 그래서 이곳은 제게 고향 같은 곳이라고 말해요. 제가 지방선거에 나온다고 하니까 응원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선거를 경험하다

처음 영국에 정착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그에게 도움을 준 건 이웃들이었다. 영어도 한마디 모르던 그를 편견 없이 도와준 사람들 덕분에 낯선 땅에서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그는 "문화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나에게 영국에 잘 왔다고 '웰컴'이라고 해 준 사람들 때문에 살아갈 용기가 났다"라고 전했다.
그렇게 정착한 영국 사회에서 선거 운동에 직접 뛰어드는 건 또 다른 도전이었다. 영국의 지방 선거는 한국과는 달리 현수막이나 거리 유세가 없고 집집마다 방문하며 주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식이다. 때문에 그는 이번 선거 운동이 새로운 공동체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는 한 마디로 발로 뛰는 선거예요. 길거리에 선거 홍보 사진 한 장 없죠. 집집마다 편지를 돌리고 유권자들을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식인데 새로운 사회를 알아가는 것이 신기하고 즐거워요."
그는 북한에서 경험한 전체주의 하에서의 선거를 언급하며 이번 선거에서 자신만이 가진 강점으로 '자유'를 꼽았다.
"사람들이 자유에 대해 많이 얘기하지만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북한과 중국에서 다 살아봤기 때문에 자유의 진짜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자유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에요. 그래야만 나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고, 세계를 보는 눈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는 선거에 당선되면 교육 분야에 힘을 쏟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자유의 소중함을 쉽게 망각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당선되더라도 자신이 해왔던 북한 인권 관련 활동은 사명감을 갖고 계속 해나갈 뜻을 전했다.
'꽃제비' 소년

사진 출처, Timothy Cho
영국 맨체스터 지역의 보수당 구의원 후보로 출마한 33살의 티머시 조 씨도 탈북민 출신이다. 어린 시절 부모와 헤어졌던 그는 길거리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이른바 '꽃제비' 생활을 했다.
"부모님이 모두 교사셨는데 아버지는 특히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셨어요. 그런데 거짓된 역사를 계속 가르쳐야 하다 보니 일종의 자괴감이 느껴지셨나봐요. 이후 문제가 생기게 됐고 결국 북한을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일인데 그렇게 부모님과 헤어지게 됐죠."
당시 북한은 아사자들이 많이 나오는 힘든 시기였기에 부모를 잃은 그가 친척 집을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길에서 배고픈 나날을 보내던 그는 2004년 처음 탈북해 중국 땅을 밟았다. 하지만 이후 강제북송 돼 고통스러운 수용소 생활을 견뎌야 했고, 고생 끝에 살아남아 다시 북한을 탈출한 그는 제3국을 거쳐 2008년 영국에 정착했다.

"저는 북한 정권은 싫어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좋아해요. 북한 정권이 나쁜 것이지 북한 사람들이 나쁜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처음엔 북한을 떠나겠다는 생각이 쉽게 들진 않았어요. 그런데 아버지 문제로 제가 가장 천대를 받는 적대 그룹에 속해있었고, 남들 다 가는 군대조차 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이 땅에서는 전혀 희망이 없어 탈북을 결심했죠."
험난했던 탈북 과정에서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트라우마도 남았다. 영국에 와서도 밤마다 자다 깨기를 계속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배고파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맞아서 죽는 거예요. 북한 감옥에 있을 때 옆에 있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가장 무서웠어요. 영국에 왔을 때도 그 소리가 한동안 계속 들리는 것 같았어요. 말이 안 통하고 친구도 없었지만 이런 트라우마가 없었다면 좀 더 빨리 적응했을 것 같아요."
한반도 통일의 꿈
영국에 정착한 조 씨는 대학 졸업 후 리버풀대에서 국제관계안보학 석사학위를 받고 하원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처음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북한 문제에 관한 초당파 의원 모임(APPGNK)' 행정관으로 근무하며 정치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치과의사가 되려고 대학에서도 생물, 화학, 수학을 공부했어요. 그런데 문득 내가 왜 이걸 공부하나 싶었어요. 치과의사가 되면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겠죠. 하지만 이건 북한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민주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중퇴하고 곧바로 정치외교학 공부를 시작했죠."

지금은 영국을 무대로 다양한 활동을 해나가고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두고 온 땅 북한이 있다. 그가 정치를 공부하고 선거에 뛰어들어 민주주의를 몸소 경험하고 있는 것도 언젠가 북한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북한 분들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파요. 왜 우리가 이렇게 분단이 되어야 하고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떨어져 살아야 하는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운명 같은 일이었지만 왜 되돌릴 수 없느냐 하는 거죠. 저는 제 세대 안에 한반도의 통일을 보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하지만 그러한 변화를 가져오려면 북한에 열심히 문을 두드려야 해요."
영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가치는 '가족'이었다. 그는 건강한 가족에서 건강한 커뮤니티가 나오고, 또 건강한 커뮤니티가 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다.
"북한 같은 독재 국가들에서는 아버지가 죄를 지으면 자식까지 따라 들어가면서 가족이 풍비박산나요. 국가가 가족을 지켜주는 게 아니라 가족의 권리와 자유를 박탈하는 거죠. 저는 가족 없이 자랐기 때문에 제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고 컸어요. 그런 점에서 영국은 내가 누군지, 나의 정체성이 뭔지, 내가 왜 태어났는지를 알게 해 준 곳이에요."
수많은 죽음의 문턱을 넘어 낯선 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한 두 사람은 이번 지방선거 출마가 남을 돕기 위한 일이라는 걸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그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지역을 대변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웃들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심부름꾼으로 일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