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파키스탄 대통령, 79세의 나이로 사망

동영상 설명, 쿠테타로 정권을 잡았던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대통령이 망명 생활 끝에 두바이에서 숨졌다
    • 기자, 알리스 데이비스
    • 기자, BBC News

199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으나 2008년 물러난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전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시간) 망명한 아랍에미리트의 병원에서 숨졌다. 향년 79세.

파키스탄 군 당국은 2001년~2008년 집권했던 무샤라프 전 대통령이 숙환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무샤라프 전 대통령은 국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9·11테러 이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한 인물로, 생전 수많은 암살 시도에 시달렸으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서방세계 간 갈등의 최전선에 있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2008년 총선에서 패배하자 6개월 만에 출국했다.

2013년 다시 파키스탄에 돌아와 대선 출마를 시도했으나, 이내 체포돼 출마가 금지됐다.

이후 반역죄로 기소돼 결석 재판을 통해 사형판결을 받았으나, 한 달 만에 현지 법원은 해당 사형판결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렇게 2016년 질병 치료를 위해 두바이로 향한 뒤 그곳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갔다.

현지 언론 ‘지오 뉴스’는 무샤라프 전 대통령의 가족은 신청서 제출 후 고인의 시신을 파키스탄으로 데려올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파키스탄 군은 성명을 통해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며 “알라가 고인의 영혼을 축복하고 유족에게 힘을 북돋아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아리프 알비 현 대통령은 “떠나간 영혼의 영원한 안식과 유가족이 슬픔을 잘 이겨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밝혔으며, 셰바즈 샤리프 현 총리 또한 파키스탄 고위 군 관계자들과 마찬가지로 애도를 표했다.

논란으로 얼룩진 집권 기간

무샤라프 전 대통령에 대해선 여러 극단적인 평가가 엇갈린다.

일각에선 나라의 경제적 운명을 바꾼 지도자로도 인정받는 인물이지만,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에게 적절한 경호 조치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혐의 등 총선 패배 후 수많은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부토 전 총리는 파키스탄의 여성 정치인으로 2007년 탈레반에 암살당했는데, 이에 파키스탄을 넘어 전 세계가 경악했다.

게다가 무샤라프 전 대통령은 2019년 열린 결석 재판에서 반역죄로 인한 사형 선고를 받으며 결국 불명예스럽게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사형 판결은 무효로 선언됐으나, 무샤라프는 끝내 파키스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한편 무샤라프의 전 보좌관이자 현재 임란 칸 전 총리가 이끄는 ‘파키스탄 정의 운동’당의 간부로 활동하는 파와드 차드허리는 이러한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무샤라프와 무샤라프가 파키스탄에 끼친 영향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로이터 통신의 인용 보도에 따르면 차드허리는 무샤라프에 대해 “군사 독재자로 불리지만, 그의 재임 시절 파키스탄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됐다 … 무샤라프는 매우 어려운 시기에 파키스탄을 이끌었으며, 국민들은 그의 재임 시절이 파키스탄 역사상 최고였던 시기 중 하나로 믿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싱크탱크 ‘타바드랩’의 모샤라프 자이디 최고경영자(CEO)는 무샤라프가 집권 기간 중 “파키스탄의 파괴”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웃국 인도에서도 무샤라프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파키스탄 군이 비밀리에 영토 분쟁 지역인 카르길 내 인도 쪽 구역의 고지 점령을 지시했던 1999년 5월 카르길 분쟁 당시 무샤라프가 파키스탄 군의 수장이었기에 많은 인도인이 그를 적으로 봤다.

그러나 샤쉬 타루어 인도 출신 전 유엔(UN) 외교관은 무샤라프가 대통령 재임 기간 그 죄를 만회했다고 분석했다. “한때는 인도의 불굴의 적이었으나, 2002년~2007년 (재임 시절) 평화를 위해 진정한 힘이 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타루어는 무샤라프의 재임 시절 UN에서 매년 그를 만났는데, “똑똑하고 호감이 가며, 전략적인 사고가 돋보이는 인물”이었다고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