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고진 사망 후 1년 … 러시아 바그너 용병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지난 6월 1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무덤가에 모인 바그너 지지자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지난 6월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동상 제막식을 맞아 바그너 그룹 지지자들이 그의 무덤에 모였다
    • 기자, 일리야 바라바노프 & 아나스타샤 로타레바
    • 기자, BBC 러시아어 서비스

러시아의 민간 용병 단체 바그너의 지도자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사망한 지 1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바그너 용병들 및 우크라이나, 시리아,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이들이 맺은 계약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BBC 러시아어 서비스는 전직 바그너 용병들 및 바그너 그룹에 대해 잘 아는 이들로부터 러시아 당국에 맞서 짧게나마 벌였던 반란 및 비행기 추락 사고로 인한 프리고진의 사망 이후 벌어진 상황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해 9월, 건장한 체격의 푸른 눈을 지닌 한 청년이 튀르키예 이스탄불 국제공항의 체크인 카운터에 들어섰다.

아랍 지역 전통 머리 스카프인 케피예와 후드티 차림의 그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리비아 및 다른 아프리카 국가로 가려던 참이었다.

이 청년은 프리고진이 설립하고 이끌었던, 음지에서 광범위하게 활동했던 '바그너 그룹' 소속 용병 출신이다.

바그너는 수십억달러 가치의 기업 및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시리아, 말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 리비아 등지에서 활동했던 민간군사기업(PMC)으로, 바그너 용병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지난해 1월, 영국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에 주둔 중인 바그너 용병이 최대 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그러나 BBC 러시아어 서비스가 입수한 명단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내 작은 마을인 바흐무트를 두고 벌어진 전투에서 약 2만 명에 가까운(대부분 수감자 출신이었다) 바그너 용병들이 숨졌다.

그리고 그해 5월, 프리고진은 탄약 부족을 이유로 러시아 국방부를 비난하며 남은 용병들을 철수시켰다.

지난해 5월 20일,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서 우크라이나 바흐무트 전투에 대해 연설하는 프리고진의 모습

사진 출처, CONCORD / REUTERS

사진 설명, 우크라이나 바흐무트를 두고 벌어진 전투에는 바그너 용병 수천 명이 뛰어들었다

하지만 케피예 차림의 이 남성은 별 탈 없이 탈출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1달 뒤, 그는 텔레그램을 통해 '정의를 위한 행진'에 동참해달라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그렇게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항해 러시아 남부 도시 로스토프-온-돈을 점령하는 등 반란으로 국제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바그너 용병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로스토프-온-돈을 도시를 떠나며 차량 밖으로 사진 포즈를 취하는 프리고진이 그가 본 마지막 모습이 됐다.

당초 바그너 그룹은 모스크바까지 행진하겠다고 위협했으나, 이러한 계획은 이내 취소됐다. 푸틴 대통령에 따르면 바그너 용병들이 러시아 정규군으로 흡수되거나, 프리고진과 함께 벨라루스로 떠난다는 조건의 협상이 체결됐다고 한다.

케피예 차림의 이 남성은 바그너 그룹에서 자신의 커리어는 이때를 기점으로 끝이 났다고 회상했다. “계약이 끊기기 시작하고, 벨라루스 등으로 일부 용병들이 떠나면서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지속됐다. 그러면서 여기서 나도 이제는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온-돈에서 차량 밖으로 웃고 있는 프리고진의 모습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지난해 6월 바그너 용병들이 점령한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온-돈에서 떠나며 웃고 있는 프리고진의 모습

그리고 2달 후인 지난해 8월 23일, 전용기가 모스크바 북쪽에서 추락하며 프리고진은 몇몇 다른 바그너 그룹 인사들과 함께 유명을 달리했다.

크렘린궁 측은 그 어떠한 부정행위도 없었다고 주장하나, 케피예 차림의 이 남성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를 믿지 않는다.

“그들이 그 남자(프리고진)을 죽였을 때, 러시아에는 내게 남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남성이 자신 앞에 놓인 선택지를 평가하는 동안, 바그너 그룹의 자산과 활동은 점점 더 러시아 정규군과 정부의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됐다.

이 남성에겐 유효한 여권은 물론 저축해둔 약간의 돈과 전투 경험이 있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과거 전투를 치러 본 곳이기도 한 시리아로 가기로 했다.

BBC 러시아어 서비스는 두 소식통으로부터 시리아 내 바그너 용병들이 러시아군과의 계약을 제안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이 남성 또한 욕설을 내뱉으며 당시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국방부에 흡수되던지 혹은 나라를 떠나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와 계약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거의 2달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나 여전히 현금으로 월급을 받았다. 그러다 그가 아프리카로 건너가 일거리를 구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지난해 8월 공개된 영상 속 군복 차림의 프리고진

사진 출처, WAGNER TELEGRAM ACCOUNT / GETTY

사진 설명, 사망 직전 확인되지 않은 장소에서 촬영된 영상에서 프리고진은 바그너 그룹이 아프리카를 “더 자유롭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 유누스베크 예브쿠로프 러시아 국방부 차관도 북아프리카로 향했다.

예브쿠로프 차관은 ‘러시아 연방군 정보총국(GRU)’ 고위 인사들을 이끌고 리비아, 부르키나파소,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말리 등 과거 바그너 그룹이 활동했던 국가들을 방문했으며, 이후에는 니제르도 찾았다.

영국 소재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예브쿠로프 차관은 이들 국가에서 “(바그너가 했던) 이전의 약속들은” 여전히 지켜질 것이지만, 이젠 “러시아 국방부와 직접 거래하게 될 것”이라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해당 보고서는 아프리카에 남은 전직 바그너 용병들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천연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대가로 이슬람주의 및 반군 세력에 맞서려는 현지 정권에 군사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말리, 니제르, 부르키나파소에서는 모두 최근 몇 년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으며, 오랫동안 이어진 프랑스와의 관계를 거부하고 러시아와 유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리튬, 금, 우라늄과 같은 광물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지난해 말부터는 러시아 국방부의 ‘아프리카 군(African Corps)’ 모집 공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올해 1월 유누스베크 예브쿠로프 러시아 국방부 차관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유누스베크 예브쿠로프 러시아 국방부 차관은 지난해 여러 아프리카 국가를 방문했다

한편 케피예 차림의 이 남성은 이후 BBC에 자신이 생각했던 아프리카 국가에 잘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는 용병 일은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직업이며, 용병으로서 우크라이나나 벨라루스보다는 아프리카에서 더 전망이 좋다고 생각해 향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함께 바그너에 속했던 이들 대부분은 러시아 군에 흡수됐거나, 새로 창설된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과거 프리고진과 관련 있던 한 소식통은 BBC에 그의 아들인 파벨이 여전히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러시아 당국은 러시아의 국익과 충돌하지 않는 선을 조건으로 후계자인 파벨이 아프리카에서 아버지가 하던 일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20대 후반인 파벨이 러시아 국방부가 아닌 국가 근위대인 ‘로스그바르디야’의 후원을 받아 잔류한 바그너 용병단을 이끌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RUSI는 이로 인해 “GRU와 로스그바르디야 간 사이에 지휘권 다툼이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영국 국방부도 지난 2월 바그너의 공세 부대 3개가 실제로 로스그바르디야로 편입됐으며, 이들이 우크라이나와 아프리카에 배치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파벨의 역할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 없으며, 파벨 또한 BBC의 의견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니제르 니아메에 모인 시위대. 바그너 그룹의 로고가 그려진 검은 깃발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지난해 9월 니제르 니아메에서는 프랑스 군의 철수를 요구하며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당시 바그너 그룹의 로고가 그려진 검은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한편 바그너 용병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으며, 현재 이들을 누가 고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으나, 바그너 그룹의 공식 텔레그램 채널에는 여전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임무를 펼칠 이들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게시돼 있다.

러시아 당국의 입장에서는 바그너 그룹은 여전히 국제 사회의 제재와 개입을 피하면서도 자신들이 이루고 싶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다.

한편 전직 바그너 용병 중에는 여전히 러시아 국방부를 의심하거나, 이들에 저항하는 이들도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GRU는 바그너 그룹을 모델로 용병 그룹 네트워크를 구축해 ‘레두트(Redut)’라는 이름의 통합 PMC를 창설했다.

지난해 10월 ‘라디오 프리 유럽’은 미디어 조사 결과, 20개 이상의 단체가 레두트의 깃발 아래 용병을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레두트가 GRU가 운영하는 “위장 PMC”라는 결론을 내렸다.

BBC 또한 공식적으로 기업들이 등록된 명단에서 레두트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여러 소식통으로부터 레두트가 GRU 및 국방부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레두트나 크렘린궁 측에 이에 관해 물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지난해 6월 24일 로스토프-온-돈 길거리에 나타난 탱크. 시민들이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바그너 용병들은 로스토프-온-돈을 장악했으나, 협상 타결 후 도시를 떠났다

BBC는 ‘메드베디(‘곰’이라는 뜻)’라고도 불리는 ‘제81 특수작전 여단에’ 입대한 전직 바그너 용병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프랑스어 오픈 소스 정보 연구원이자 서아프리카 안보 전문가이기도 한 노마드 사헬리엥에 따르면 메드베디는 레두트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이들은 자기 스스로는 특수작전 여단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PMC에 더 가깝다”고 한다.

지난해 8월, 러시아의 SNS 플랫폼인 ‘프콘탁테’의 친군사 관련 계정엔 여러 메드베디 모집 광고가 올라왔다. “우리는 조종사, 기술자, AN-2(복엽 수송기), MI-8(헬기), MI-24(공격 헬리콥터) 정비사가 필요하다”는 전형적인 광고문이다.

“한 달에 22만루블(약 320만원)부터 시작하는 괜찮은 월급 및 각종 혜택이 뒤따릅니다. 계약 기간은 6개월로, 22세부터 50세까지 지원 가능합니다. 크림반도 심페로폴로 오세요. 군사 의복과 훈련도 제공합니다.”

해당 광고에는 크림반도로 오라고 적혀있지만, 사헬리엥은 해당 단체의 본부는 부르키나파소의 수도 와가두구에 자리하고 있으며, 월급 2500~4000달러(악 330만~530만원) 수준으로 용병들에게 3개월짜리 임무를 맡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BBC는 용병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부르키나파소 등 아프리카에 남기로 결정한 전직 바그너 용병들이 많은 것으로 파악했다.

지난해 8월 24일 포착된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크렘린궁은 프리고진 등 바그너 그룹 관계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비행기 추락 사고에 그 어떠한 부정행위도 없었다며 부인한다

한편 전직 바그너 용병들이 향하는 또 다른 장소로는 러시아 남부에 자리한 체첸을 꼽을 수 있다.

러시아의 국영 언론인 ‘타스’에 따르면 지난 4월 체첸 지도자 람잔 카디로프는 전직 바그너 용병 3000명이 체첸의 ‘아흐마트 특수 부대’에 합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바그너의 유명 인사로 ‘라티보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알렉산더 쿠즈네초프는 카디로프와 함께 등장한 영상에서 과거 함께 바그너에 일한 용병들을 향해 “모든 게 바그너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다. 서류 작업 등도 없다. 우리의 사업 방식은 그대로 유지되며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BBC는 이들이 말한 3000명 중 실제 체첸으로 건너온 이들이 몇 명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한편 당초 바그너 용병들에게 제시된 벨라루스행 제안과 관련해선, 벨라루스 내 군사 활동을 모니터링하는 오픈 소스 연구 기관인 ‘벨라루스키 하준’에 따르면 현재 100명 미만의 인원이 실제로 벨라루스로 가서 알렉산더 루카셴코 대통령의 군대를 훈련시키고 있다고 한다.

바그너 그룹 용병들의 사진으로 덮인 벽 앞을 지나가는 어린 소녀의 모습

사진 출처, Reuters

사진 설명, 한 바그너 용병의 딸이 7월 말리에서 숨진 용병들을 추모하고자 모스크바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

지난달 28일, 말리에서 분리 독립을 외치는 투아레그족과 이슬람주의 전사들이 러시아 용병 및 말리 군을 기습했다는 보도와 함께 바그너 용병들이 말리에 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 있다.

바그너의 공식 텔레그램 채널은 지휘관 1명 등 일부 용병들이 숨졌다면서 이례적으로 상세한 정보를 공개했으나, 정확한 사망자 수는 밝히지 않았다.

러시아 내 친 군사적 성향의 텔레그램 채널들은 전직 바그너 용병 수십 명이 숨졌을 것으로 보도했으며, 이는 현재까지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바그너 그룹의 최대 인명 손실이라고 한다.

해당 용병들은 ‘아프리카 군’의 소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프리카 군’ 및 러시아 국방부 모두 공식적으로 이에 대해 언급한 바 없다.

한편 그 이후부터는 케피예 차림의 남성으로부터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 남성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SNS 페이지에는 추모의 촛불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