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탈북민' 아니고 '북향민'입니다'...통일부, 반대 여론에도 왜 강행할까

    • 기자, 한상미
    • 기자, BBC 코리아

탈북자, 북한이탈주민, 새터민, 탈북민 등은 모두 북한에서 온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들이다. 그런데 한국 통일부가 지난해 하반기 '대체 용어'를 들고 나왔다. 바로 '북향민'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월 2일 통일부 시무식에서 "탈북민이라는 이름 대신 향후 공식 용어로 '북향민'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고향을 북에 두고 온 사람이라는 뜻을 담은 '북향민'이 그나마 차별과 배제를 떠난 "중립적 호칭이 될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하지만 탈북 사회에서는 꽤나 반발이 심해보인다. 모욕적이라는 원성까지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1일 강원도 고성 'DMZ 평화의 길'을 찾은 정 장관은 "DMZ 내부 구간을 다시 열겠다"고 밝혔다. 이 내부 코스는 안보 상황을 이유로 지난 2024년 4월 개방이 중단됐다. 이러한 깜짝 발언에 대해 유엔군 사령부는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정 장관은 다음 날인 22일에는 "평화를 만드는 가장 확실한 길은 남북 간 교류"라며 "대륙으로 가는 모든 도로, 철도를 다시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금강산-개성, 원산-갈마, 백두산 삼지연으로 가는 길도 열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는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강행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북측의 동의 역시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가 해제되어야 가능하다.

북한 식품 반입 문제도 얽혀 있다. 북한 식품의 경우 지난 2016년 한국에서 제정된 '수입식품 안전관리 특별법' 등에 따른 서류(제조공장 허가증, 현지 공장 실사 동의서 등)를 갖추기 어려워 사실상 한국으로의 반입이 불가하다.

하지만 통일부가 일찌감치 민간에 승인부터 해줬고 그렇게 지난해 9월 북한 남포항에서 출발해 중국 대련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북한산 들쭉술과 고려된장술 등 총 3500병은 여전히 인천세관 창고에 묶여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동영 체제의 일방통행식 정책", "한국판 속도전"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탈북민들은 정작 싫다는 '북향민'

정동영 장관이 '탈북민' 명칭 변경을 시도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과거 노무현 정권이던 2005년 첫 통일부 장관 당시에도 '탈북민' 대신 '새터민'으로 용어 변경을 추진한 바 있다. '새로운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탈북민 단체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자신들은 단순히 거주지를 옮긴 '이주민'이 아니라 독재 정권이 싫어 목숨 걸고 탈출한, 자유를 찾아온 '망명자'라는 이유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시 용어를 만드는 과정에서 당사자인 탈북민들의 의견 수렴이 부족했고, 또 한국 정부가 위에서 아래로 강요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탈출'이라는 단어가 북한을 자극할까 봐 한국 정부가 일부러 가치 중립적인 단어로 바꾸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런데 20년 만에 같은 장관 체제 하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탈북민들도 그 부분을 지적했다.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의 김형수 북방연구회 대표는 BBC에 '탈북민'에는 확실하게 '북한 독재가 싫어서 탈출했다'는 정체성이 담겨 있지만 '북향민'은 '단순히 북쪽이 고향인 사람'을 의미한다"며 "그래서 탈북 사회에서 '북향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 더 크다"고 했다.

그는 "'탈북민'의 '탈'자에 부정적 뉘앙스가 담겨 있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 "그럼에도 여기에는 자유를 갈망해서 주도적으로 한국에 왔다는 의미가 내포됐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20년 전 '새터민' 논란이 불거졌을 때에도 그 단어에 '북한을 반대한다'는 의미가 전혀 없어서 반대했던 것인데 또 똑같이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국방종합대학 출신 박충권 의원(국민의힘)도 "탈북민은 북한 체제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존재이자, 김정은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라며 "'북향민'은 북쪽에 고향을 둔 사람이라는 뜻일 뿐, 자유와 인권의 상징인 탈북민의 정체성을 담아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명칭 변경이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정치적 도구'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북향민을 꺼내든 것 자체가 김정은 정권에게 호감을 사기 위한 의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 민주화, 북한 인권을 위한 탈북민들의 노력을 희석시키고, 단지 먹고 살기 위해 남한에 온 사람들로 폄훼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며 "우리 탈북민들은 김정은 정권과 싸우는 사람들이지, 북한에 대한 향수만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저들이 김정은하고 대화를 좀 해보려고 무리하게 정책을 펴는 와중에 제일 만만한 것이 우리 탈북자라서 저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언제 우리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았다고, 북한 인권은 외면하고 관심도 없었으면서 왜 갑자기 명칭에 신경쓰는지, 이 시점에 저러는 것을 보면 당연히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그때 한 번 그랬으면 됐지, 이제 와서 또 저러는 것을 보면 우리 입장에서는 그저 '김정은 정권을 옹호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 뿐"이라고 강 대표는 덧붙였다.

그리고 지난 20일 통일부의 탈북민 명칭 변경 조치를 막아달라는 탈북민들의 진정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됐다.

'북향민 명칭 강요 반대 탈북민 모임'은 성명을 통해 "'북향민'이라는 호칭 사용은 다수 탈북민에게 사실상 새로운 명칭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이는 탈북민 개인이 스스로 선택해 온 정체성과 존엄을 침해할 소지가 있고 탈북민 사회의 불필요한 분열까지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탈북민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선택한 사람들의 권리와 정체성"이라면서 "탈북민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는 존중돼야 하고 어떤 명칭도 타인의 정체성을 지우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확대 해석 '불필요'

반면 해당 사안들을 보다 합리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영희 동국대 북한연구소 객원연구원은 "탈북 사회 내에도 많은 이들이 있고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며 "가장 관건은 정치적 해석"이라고 했다. 이 같은 조치들은 결국 한국 정부가 평화로 가기 위한 메시지일 뿐, 너무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제시했음에도 '남북 간 신뢰 구축이 평화로 가는 길'이라는 이재명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춰서 정동영 장관도 저러는 것 아니겠나. 그런다고 북한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도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DMZ 평화의 길을 재개방하고 누가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이제는 '남남'이기 때문에 북한이 먼저 도발을 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며 "이왕 평화를 내세웠으니 남쪽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쯤 되자, 탈북민 명칭 문제가 한국 내 사회통합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탈북민도 헌법이 보장하는 엄연한 한국 국민인데, 이것이 차별이나 정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 국가정보원 대북분석관을 지낸 곽길섭 국민대 겸임교수는 "특정 용어로 억지로 단일화하거나 쟁점화시키지 않아야 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또한 명칭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탈북민 또는 북향민 표현을 상황에 맞게 병행 사용하는 것 역시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곽 교수는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은 한반도 위기관리,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자주국방과 선제적 대북양보를 핵심 키워드로 하고 있다"면서 "자칫 김정은 정권에게 주민 탄압과 핵능력 고도화의 시간을 주고 한국 사회에는 '남남갈등'이 증대되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한계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실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출신 김건 의원(국민의힘)은 지난 23일 정동영 장관의 연이은 '대북 유화책'이 "'남남갈등'을 심화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뿐"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어 "정 장관이 취임 이후 정부 내 조율, 사회적 합의 과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독불장군식' 정책 추진을 반복해왔다"며 이러한 방식은 국정을 책임진 각료의 자세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앞서 한국 통일부가 지난해 9월 26일부터 10월 5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탈북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명칭 변경이 불필요하다"고 답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