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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률 0.002%... 북한의 코로나19 사태 '미스터리'
- 기자, 진 맥켄지, 이호수, 리얼리티체크팀
- 기자, BBC 뉴스
북한이 사상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지 3주가 지났다. 북한 당국은 코로나19 발병 사태를 잘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많은 세부 사항이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BBC는 북한 주민들과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 공개 자원 등을 통해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
북한 내부의 목소리
서울에 사는 김황선 씨는 전화벨이 울렸을 때 집 부엌에 홀로 앉아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중국 브로커로부터의 전화였다. 마침내 전화선 넘어 가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10년 전 혼자 북한을 탈출한 김 씨의 자녀, 손자, 85세 고령의 어머니는 모두 북한에 남아있다. 김 씨는 이들 모두를 데려오겠다는 꿈은 이미 접었다고 했다.
브로커를 통한 은밀한 전화만이 김 씨가 두고 온 가족들과 주고받는 유일한 소통 수단이다. 누군가 엿들을 경우를 대비해 너무 많은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대부분 전화 통화는 5분을 넘지 않게 짧게 끝낸다.
김 씨가 가족들과 전화하기 이틀 전 북한 당국이 처음으로 코로나19 감염 사례를 인정했다. 전례가 없던 자료 공개이니만큼 코로나19가 북한에서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김 씨는 "가족들이 말하길 매우 많은 사람이 열이 나 아프다고 했다"면서 "상황이 정말 나쁘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사람이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날 때마다 약을 달라고 요청한다고 한다. 열을 내릴 무언가를 찾고 있지만, 뭐라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전했다.
김 씨는 감히 몇 명이 죽었는지 묻지 못했다. 만약 이들이 코로나19 사망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누군가 우연히 듣는다면, 이는 북한 당국에 대한 비판으로 보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되면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기에 두렵다고 했다.
북한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인구의 약 15%가 "유열(발열)" 증상을 보였다. 북한에서는 코로나19 감염을 확실히 진단할 장비가 부족하기에 이 같은 표현을 쓴다.
한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 내 약품 부족을 인정하면서 군 비축분을 풀라고 지시했다.
김 씨는 북한 병원과 약국에 의약품이 떨어진 지 수년째라고 말했다. 의사가 처방전을 써줘도 필요한 약을 구하는 건 환자의 몫이다. 집에서 약을 파는 사람을 찾거나 동네 시장에서 구해야 한다.
김 씨는 "북한에선 수술받기 위해 마취제가 필요하다면, 시장에 가서 마취제를 구해 병원으로 들고 가야 한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시장에서조차 의약품을 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 씨의 가족에 따르면 "정부가 사람들에게 (의약품) 대신 솔잎을 끓여 마시라고했다"고 한다. 또한 북한 관영 매체는 증상 완화를 위해 소금물로 입안을 헹구라고 조언했다.
2001년부터 유니세프(UNICEF) 북한 보건 사업 조사관으로 일해온 나기 샤픽 박사는 이를 두고 "의약품이 없으면 일어나는 일"이라면서 "전통 의학을 찾게 된다"고 설명했다. 샤픽 박사가 북한에 남아있었던 2019년에도 이미 의약품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샤픽 박사는 "의약품이 있긴 했지만, 정말 극도로 소량뿐"이라고 회상했다.
북한은 거의 모든 의약품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지난 2년간의 국경 폐쇄로 공급이 끊긴 상태다.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한 단체인 '리버티 인 노스 코리아'의 박석일 국장은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을 돕고 있다. 아직 북한에 가족이 있는 탈북자들의 말에 따르면 의약품 수요가 폭증했다고 한다.
박 국장은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의약품도 모두 동나면서 의약품 가격이 하늘 높이 치솟고 있다"고 전했다.
국가 봉쇄령
한편 북한 당국은 첫 감염 사례를 발표한 날 국가 봉쇄령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식량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 굶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일부 인력은 집에서 나와 출근하거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가 남북한 접경지역을 촬영한 사진을 보면 봉쇄령이 발표된 지 며칠 후에도 농민들이 논밭에 나와 일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수도 평양을 포함해 감염률이 높은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집 밖 출입이 금지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의 이상용 편집국장은 북한 내 여러 소식통을 두고 있다. 이 국장은 북·중 접경지인 혜산에서는 지난달 주민들이 10일간 집 밖 출입이 금지됐었다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외출 금지령이 해제됐을 때 12명이 넘는 주민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집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고 한다.
지금까지 북한이 공식적으로 밝힌 코로나19 사망자는 70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코로나19 치명률은 0.002%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그러나 미국의 북한 전문 분석 플랫폼인 '38노스'의 마틴 윌리엄스는 "백신 접종자가 전혀 없는, 의료 시스템이 열악한 나라에서 이러한 치명률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윌리엄스는 신규 발열자 수가 점점 증가하는 가운데 사망자 수가 정점을 기록했다는 점이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는 신규 확진자 수 정점 2~3주 뒤에 사망자 수가 최고치로 높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북한이 발표한) 이 수치는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왜 그런지는 알지 못합니다."
윌리엄스는 정권 차원의 수치 오류일 수도 있고 처벌이 두려운 지역 보건 관계자가 실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망했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사회의 지원
지난 한 주간 신규 발열 건수가 감소했다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북한 관영 신문의 한 사설은 당국이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하고 통제했다"는 주장을 내놨다.
유니세프는 현지 직원들이 격리 조치에서 풀려난 후 평양 사무실 활동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마이크 라이언 세계보건기구(WHO) 긴급대응팀장은 지난 1일 브리핑에서 상황이 "호전되는 것이 아니라 악화되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라이언 팀장은 북한의 불허로 WHO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어 "전 세계에 제대로 된 분석을 제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몇 차례 백신 등을 지원하겠다고 제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이웃 국가인 중국에 조용히 의지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 해관총서의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올 4월 대북 수출은 올 전월에 비해 2배 늘었다.
비록 지난 2년간의 국경 폐쇄 이후 북한의 수입량은 올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였으나, 최근 몇 달간 의료 물자 수입이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중국 해관총서는 북한이 4월 중국으로부터 "산소 호흡기" 1000대를 사들였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여기서 "산소 호흡기"란 크기가 작은 산소 치료 장치 등을 가리킬 수도 있다.
또한 북한은 1~4월 사이 마스크 900만 개 이상을 수입했다. 마찬가지로 지난 2년간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마스크를 사들인 일은 없었다. 아울러 의약품과 백신 수입도 증가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달 17일 원조 물자를 들여오기 위해 중국에 화물기 3대를 보냈다고 한다.
위성사진을 통해 같은 달 24일 북한 국영 항공사인 고려항공 소속 화물기 3대가 평양의 순안국제공항에 있는 모습이 확인됐다. 며칠 전 중국 선양 타오셴 국제공항에서 목격된 비행기 3대와 모양이 같은 화물기였다.
이와는 별개로 BBC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평양 남쪽 남포항을 통해 의료 물자가 대량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입수한 5월 15일 자 위성사진을 보면 항구 지역에 정박한 선박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선박들이 어디에서 온 것이며 무엇을 싣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대부분 항해 추적기를 꺼놓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김 씨는 첫 전화 통화 이후 북한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가족들과 통화하기 훨씬 더 어려워졌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통화 연결 신호가 자주 끊기며 연결이 돼도 자주 끊긴다고 했다. 김 씨의 친구들도 같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김 씨는 전화 통화 이후 85세인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걱정으로 몹시 지쳐있었다. 어제는 동네에 있는 산에 올라 어머니를 위해 기도했다고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외부 세계가 그렇듯 북한의 상황에 대해 김 씨가 알 수 있는 건 없으며, 도와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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