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무죄 파문... '위력에 의한 간음'이 인정되려면?

사진 출처, News1
비서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53) 전 충남지사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핵심은 안 전 지사가 '위력'을 이용해 비서 김지은(33)씨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성폭력이 갑을관계에서 '갑'에 의해 이뤄지고, 한국에서 올 초 시작된 '미투' 운동으로 이루어진 폭로 대부분이 업계에서 '제왕적 권위'를 지닌 인물에 대한 폭로임을 감안하면 특히 주목되는 대목이다.
재판부는 왜 안희정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봤는가? 그렇다면 폭행, 협박은 없었던 경우 가해자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과 지위 등의 위력에 의한 성폭행이 인정되는 판례는 어떤 경우인가?

사진 출처, Alex Wong/Getty Images
'위력 있으나, 행사하지 않았다'
14일 안 전 지사에 무죄를 선고하며, 재판부는 안 전지사의 '위력'은 인정했다. 하지만 김지은씨의 자유의사를 억압해왔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아래는 선고문 중 해당 내용 요약.

- 피고인이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명되고 있는 지위 및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의 임면 등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점을 본다면 이는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죄에서 위력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다만, 증거조사 결과에 따를 때, 피고인이 도청 내에서나 피해자에 대해서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에 기초한 위력을 일반적으로 항시 행사해 왔다거나 이를 남용하는 등 이른바 '위력의 존재감' 자체로 피해자나 기타 주변 직원 등의 자유의사를 억압해왔다고 볼만한 증거는 부족하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한 인사는 재판부가 피해자의 경험, 상황, 사회적 위치, 인간관계 등의 정보와의 공감력이 떨어져서 '위력 행사'가 인정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업무상 위력의 경우, 관계설정 자체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사실상 폭행, 협박이 거의 없다. 친족간 성폭력도 마찬가지다"고 BBC 코리아에 말했다.
김정범 변호사는 가해자와 피고인이 업무상의 갑을관계에 있었다는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형식적으로 지휘감독 관계에서 성관계가 이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두 사람의 평소 관계가 어떠했는지가 사건의 핵심"이라고 김 변호사는 자신의 블로그에 썼다.
아울러 "단순한 상하 관계가 아니라 밀접하게 대화가 가능한 관계였다거나, 다른 직원들에 비해서 각별하게 챙기는 관계였던 경우, 업무시간 이외에도 자주 만나는 관계였던 경우 등을 달리 봐야 하는 이유다"고 설명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노영희 변호사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인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즉, 위력 때문에 성관계가 있었음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과 관계가 중요하다. (재판부)는 인과 관계가 없었다고 본 것이다"며 "위력을 가지고도 있었고, 그 위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지만, 성관계를 함에 있어서 위력을 행사했다고 하는 인과 관계가 입증이 안 됐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위력 행사 인정된 판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피해자가 미성년자나 장애인일 때 적극 인정됐지만, 정상적인 성인 여성의 경우에는 아주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이 됐다. 선고문도 이런 점을 명시했다. 아래는 선고문 중 해당 내용 요약.

우리나라의 성폭력범죄 처벌의 체계는, ① 폭행, 협박을 사용하여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경우 처벌하는 규정, ② 미성년자 등 성적 자기결정권이 성숙하지 않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폭행, 협박에 이르지 않더라도 위력, 위계 등의 행사로 인한 성적 침해행위를 처벌하는 규정, ③ 업무상 위력 등을 행사한 성적 침해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를 처벌하고 있다.

정상적인 성인 여성의 경우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인정된 경우는 드물지만 있다.
<광주지방법원2008가합48> 판결의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잦은 질책과 꾸지람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그를 두려워하고 위축된 상태였음을 증명해 '위력 행사'가 인정된 사례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선물을 준 경우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인정된 이전 판결이 있다.

사진 출처, 뉴스1
<전주지방법원2015고단1032> 판결의 경우, 피해자가 "수고 많으시네요"와 같은 메시지나 하트 이모티콘을 가해자에게 보냈지만, 재판부는 이를 사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상용구로 봤다. <목포지방법원2016고법77> 의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선물을 줬지만 근무의 연장선으로 봤고, <부산지방법원2015고단1780> 의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의 생일파티에 참석했지만 재판부는 피해자가 판단력이 없고 현실에 순응했다고 전제했다.
안희정 사건의 재판부는 김지은씨가 안 전 지사에 존경을 표하는 것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수행비서직을 수행하는 내내 업무관련자와 피고인뿐만 아니라, 굳이 가식의 태도를 취할 필요도 없이 친하게 지내는 지인과의 상시적인 대화에서도 지속적으로 피고인을 지지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며 피해자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위력 행사가 입증되려면?
홍성수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이번 사건의 경우 "구체적인 사실관계들이 '위력'을 형성했는지 여부가 관건이기 때문에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지점들이 많다"며 재판정에서 판사가 낭독한 10쪽 남짓한 선고문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판결문 전문은 100쪽이 넘는다고 알려진다.)
"'위력 입증이 어렵다'는 정도는 일반론으로 얘기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위력이 행사된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사진 출처, 뉴스1
백성문 변호사는 CBS에 피해자가 여러 명이고 피고인이 피해자들한테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취지의 압박들을 계속해 왔다면 위력 행사 입증이 더 쉽다고 했다. 아울러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고 신빙성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둘의 종합적인 관계와 성관계 전후의 피해자 태도도 중요하다.
김정범 변호사는 "평소 공적, 사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가해자의 업무지시 스타일이나 피해자의 감독자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 제 3자에게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보였는지, 피고인으로부터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시기 전후의 피해자 태도 등 종합적인 사정"을 고려한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자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외부기관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0505-515-5050)
국가인권위원회(국번 없이 1331)
한국성폭력상담소(02-338-5801)
여성긴급전화(국번 없이 1336)
대한법률구조공단(국번 없이 132)
한국여성의전화(02-2263-6465)
한국여성민우회(02-335-18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