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에 태어난 우크라이나 삼둥이

사진 출처, Hanna Berezynets
우크라이나의 한나와 안드리 베레지네츠 부부는 삼둥이를 가질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기뻤다. 하지만 출산 예정일에 전쟁이 발발했고 삼둥이는 주변에 떨어지는 러시아의 포탄 소리 속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한나가 처음 초음파 검사를 받았을 때, 작은 점이 보였다. 부부가 오래도록 기다리던 아기였다. 하지만 그들의 다음 진료에서 쌍둥이를 가졌음을 알게 됐고 세 번째 방문에서 실제로 삼둥이를 임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네 번째 진료를 받는 것이 두려웠어요." 한나는 농담처럼 말했다. 하지만 부부는 행복했다. "우리는 정말 아이를 원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한꺼번에 세 명을 주셨어요." 그녀는 '우크라이나캐스트' 팟캐스트에 이같이 밝혔다.
한나는 2022년 2월 23일 체르니히우의 산부인과 병원에 가서 다음 날 아침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
러시아의 침공에 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믿지 않았다. 그러다 2월 24일 새벽에 군인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생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전쟁이 시작되었고 그가 어디로 보내질 지 모르겠다는 연락이었다. 그는 체르니히우를 떠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부부는 바로 떠날 수 없었다. 그녀의 수술은 오전 9시에 예정되어 있었고, 병원 직원들은 세 명의 삼둥이를 세상에 첫번째로 낳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진 출처, Hanna Berezynets
한나는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딘가 멀리, 들판이나 숲에서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삶 안에서는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안드리는 오전 6시에 병원에 도착했다. 옷과 다른 물품으로 가득 찬 여행가방을 들고 있었고, 아내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는 우리 아이들을 세상에 데려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어요." 한나는 말했다.
아기들은 몇 분 간격으로 태어났다. 에밀리아는 9시 36분, 올리비아는 9시 37분에, 멜라니아는 9시 38분에 태어났어요. "그들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리고 10분 뒤인 9시 48분에, 우크라이나 국경 경비청은 공식적으로 러시아 군용 차량이 체르니히우 지역에 들어왔다고 발표했다.
폭탄 대피소
처르니히우는 벨라루스와 접한 우크라이나 북부에 위치해 있었고, 러시아군이 침공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곧 포격을 받았다. 러시아는 이 도시를 점령하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출산 후 그날 저녁, 수술 회복 중이고 침대에서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상태였던 한나에게 그녀의 아기들과 함께 대피소로 내려가라고 했다. "너무 당황했어요. 어떻게 가야 할지 이해가 안 됐으니까요." 한나는 말했다.
대피소에 도착하기 위해 그녀는 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그곳 온도는 섭씨로 거의 0도에 가까웠다. 간호사들이 아기들을 따뜻한 담요로 싸주고 그녀를 위해 아기들을 데려다 주었다.

사진 출처, Hanna Berezynets
대피소에는 약 100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병원 직원들은 거기서 20명의 아기를 낳았다고 향후 우크라이나 언론에 말했다.
한나의 딸들은 건강했지만, 조산이었다. 보통이면 인큐베이터에 넣어야 했지만, 대피소에는 그런 기기가 없었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번갈아가며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아기들을 옷 속에 감싸주었다.
"여자 아이들은 너무 무방비 상태였어요. 그들 곁에 누워 있으면서 어떻게 도와줄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한나가 목소리가 떨리며 말했다. 그들은 아주 작았다. 에밀리아와 멜라니아는 딱 1.6kg, 1.4kg이었지만, 올리비아는 더 작았다. 그녀는 1.1kg이었고, 살아남으려면 중환자실로 가야 했다.
한나와 안드리는 그녀를 홀로 보내기 힘들다고 생각해서 대피소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가족 전체가 병원 1층으로 옮겼다.
올리비아는 대략 2주간 중환자실에 있었다. "우리는 다른 두 딸과 함께 병원 복도에 머물러 있었고, 대규모 폭발이 있을 때만 지하실로 내려갔어요." 한나가 설명했다.
어느 순간, 한나는 에밀리아와 멜라니아와 함께 복도에 앉아 있을 때 거대한 번쩍임과 그 후 어둠과 연기를 보게 됐다.
"나는 아이들을 잡고 일어섰는데, 내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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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안드리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그들은 급히 중환자실로 가서 올리비아가 다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그들은 깨진 창문, 날아간 문, 파괴된 벽들을 지나쳤지만 다행히도 올리비아의 방에는 손상이 없었고 아이는 안전했다.
"기다리렴, 내가 너희를 방어하고 있단다"
마침내, 3월 20일 가족은 병원을 떠나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키예프로 대피할 수 있었다.
보통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러시아군을 피해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그들은 이후 몇 달을 슬로바키아에서 보냈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모든 시간 동안, 한나는 아버지인 아나톨리가 손녀들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는 우크라이나 군에서 싸우고 있었고, 그의 메시지는 큰 힘이 됐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말했어요. '기다려, 내가 너희를 방어하고 있어. 우리가 러시아인들을 물리칠거야.'" 그녀가 이렇게 회상했다.

사진 출처, Hanna Berezynets
러시아군이 2022년 4월에 처르니히우 지역에서 철수한 후, 아나톨리는 우크라이나 동부로 파견됐다.
가족은 그가 손녀들의 첫 생일이 되면 집에 올 거라고 희망했지만, 결국 그는 오지 못했다. 2023년 1월 11일 그는 도네츠크의 테르니 마을 인근 전선에서 사망했다. 그의 나이 51세였다.
"전쟁이 끝나고 그가 전장에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나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우리 가족이 함께 있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가 없어요."
부부는 아기들의 첫 해를 "무서운 영화"에 비교했지만, 그들은 삼둥이들 덕분에 "세 배나 더 많은 사랑과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Hanna Berezyne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