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왕실을 추모하는 방식

영국 왕실과 관련된 많은 사안이 그러하듯, 군주를 추모하는 슬픔의 시간에도 뿌리 깊은 전통과 관습이 함께한다.

9월 8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후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됐다.

애도 기간은 장례 후 7일 동안 이어진다. 영국 최장기 재위 군주의 서거를 기리는 몇몇 전통에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 중 대부분이 이제는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조기 게양

공식적으로 애도 기간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 방법 중 하나는, 정부 기관과 왕실 관련 건물에 조기를 게양하는 것이다.

영어권 국가에서 사용하는 '하프마스트(half-mast)'라는 용어를 보면 깃대의 절반 높이에 게양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3분의 2 위치에 걸린다.

조기 게양의 역사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낮게 걸린 깃발 위에 "보이지 않는 죽음의 깃발"이 걸릴 상징적 공간을 비워두는 것이다.

이 관습은 선상에서 선장이나 고위급 선원의 죽음을 애도하며 시작됐다. 남은 선원이 선박의 깃발을 낮게 걸어 영면을 표현한 것이다.

사실, 군주의 존재를 상징하는 영국 왕실기 '로열스탠다드'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후 장남인 찰스 왕세자가 자동으로 국왕이 된 것처럼, 왕가는 계속되므로 왕실기도 조기 게양하지 않는다.

대신, 여왕의 국장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영국의 국기가 낮게 게양된다.

조기를 게양하지 않은 유일한 예외는 즉위위원회가 찰스 3세 국왕의 즉위를 공식 선포한 9월 10일(현지 시간)뿐이었다.

즉위를 기념하는 뜻에서 몇 시간 동안 국기가 정상 게양됐고, 이후 조기 게양 상태로 돌아갔다.

예포 발사

또 다른 왕실 추모 전통은 예포 발사다. 영국군 역사 전문가에 의하면, 이 관습은 15세기 외국 항구를 찾은 전함이 무장을 풀고 평화롭게 접근 중임을 알리려는 의도로 텅 빈 바다에 총포를 발사하던 것에서 시작됐다.

1730년 영국 해군은 이미 일부 행사에서 예포를 발사했지만, 왕실 및 국가의 다른 수장이 의무적으로 진행하던 것은 1808년부터다.

발사 장소와 사안에 따라 횟수를 조정하는 복잡한 규정이 있는데, 1827년 영국 병참부는 런던로열파크나 런던타워에서 발사하는 경우, 41발의 예포 발사가 올바른 '왕의 예포(로열살루트)' 방식이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위치와 사안에 따라 62발로 늘어나기도 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를 애도하고 찰스 3세 즉위를 기념하는 예포 발사가 시작됐다.

서거 다음날 9월 9일(현지 시간)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진행된 로열살루트는 향년 96세를 반영해 96발을 발사했다.

타종

영국 성공회 교회, 예배당, 대성당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다음날 종을 울렸다.

아주 드물게, 종 안의 추 양쪽에 패드를 덧대 완전히 잠긴 종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는데, 군주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후에는 새로운 왕을 축하하며 평소와 같은 종소리를 울렸다. 영국에서 이 관습은 적어도 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사 베다 베네라빌리스가 '휘트비의 힐다(Hilda of Whitby)'의 당시 죽음을 두고 적은 바 있다.

왕실 고유의 전통 중 하나는 윈저성에서 세바스토폴 종을 울리는 것이다.

영국은 1856년 크림 전쟁 당시 러시아 세바스토폴의 십이사도 교회에서 이 종을 빼앗아 왕궁으로 가져왔다.

서거 다음날 여왕의 생애를 기리며 96번 울렸는데, 왕실 고위 구성원에게만 허락된 전통이다. 이전에 마지막으로 울린 것은 2002년 여왕 모친의 작고 당시다.

버킹엄궁의 안내 액자

버킹엄궁은 출생·사망과 같은 주요 왕실 소식을 대중에게 알릴 때, 짙은색 작은 나무 액자에 종이를 끼워 전한다.

탄생을 알릴 때는 철책 안 궁전 앞뜰의 화려한 금빛 이젤 위에 액자를 올리지만, 작고를 알릴 때는 보통 철책 바깥에 고정한다. 1952년 조지 6세, 1936년 조지 5세 서거 당시에도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