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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총격: '아베노믹스', '민족주의자'... 아베 전 총리의 삶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유세 중 총격을 받고 숨졌다.
마스조에 요이치 전 도쿄 도지사는 트위터를 통해 아베 총리가 심정지 상태라고 밝혔다.
1954년에 태어나 올해 한국 나이로 67세가 된 아베 전 총리는 유력 정치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으로 투옥됐다가 석방된 뒤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그는 도쿄도 세이케이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유학했다. 귀국 후 고베제강에 취업했지만 아버지가 외무장관에 취임한 뒤 아버지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3년에 처음으로 야마구치현 중의원에 당선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시절 관방장관까지 올랐으며, 2006년 53세의 나이로 태평양전쟁 이후 최연소 일본 총리에 당선됐다.
아베 전 총리의 삶을 돌아봤다.
아베신조는 누구?
아베 전 총리는 최연소 일본 총리이기도 했지만, 일본의 최장수 총리이기도 했다.
매파적인 정책과 '아베노믹스'라고도 불리는 대표적인 경제 정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다시 집권했을 당시 일본은 엔고 현상과 경기 침체로 오래된 경기 불황을 겪고 있었다. 2011년 쓰나미와 원전 사고 등으로 인적·물적 피해가 큰 상황에서 일본 국민들은 경제적 극복을 염원했다.
아베 총리는 여기에 금융완화·재정 확대·구조개혁을 골자로 하는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내세워 가시적인 성과를 내며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권좌에 오르다
'왕자'라는 별명답게 아베 전 총리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정치 귀족 가문 출신이다.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외무대신 출신이며,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총리를 지냈다.
올해 나이 67세의 아베 총리는 1993년 중의원에 처음 당선된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시절인 2005년 내각관방장관에 임명됐다.
그러다 '2006년 태평양전쟁 이후 최연소 일본 총리'라는 타이틀과 함께 총리직에 오르며 그의 성공 신화는 완성되는 듯했다.
그러나 약 5000만 건에 이르는 대규모 연금 납부 기록 누락 등 잇달아 사건이 터지면서 아베 전 총리의 내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7년 7월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크게 패했고, 결국 같은 해 9월 궤양성 대장암을 이유로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그러나 2012년 아베는 약물 치료로 크게 호전됐다면서 총선에 출마해 총리로 재취임했다.
이후 2014년, 2017년에도 총선에서 승리하며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됐다.
아베의 지지율은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자민당 내에서의 입지 덕에 큰 무리 없이 총리직을 연임할 수 있었다. 자민당은 총재 임기를 정한 당규를 3회 연임으로 개정하며 그를 지원했다.
논란 많은 민족주의자
한편 아베 전 총리는 매파적인 국방 및 외교 정책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오랫동안 일본의 전후 평화헌법을 개정을 통한 '전쟁 가능 국가'로의 변신을 꿈꿔왔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견해는 종종 중국과 한국 등 주변국과의 긴장감 고조로 이어졌다.
특히 지난 2013년 수도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주변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해당 신사는 제2차 세계 대전 전후로 일본의 군국주의와 관련 깊어 논란이 많다.
2015년에는 집단 자위권 행사를 추진했다. 자국이 공격받고 있을 때는 물론 밀접한 국가가 공격받을 때 무력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권리로, 이렇게 되면 일본은 해외에 군대를 동원할 수 있다.
이웃국은 물론 일본 여론에서도 반대 의견이 있었으나, 일본 의회는 이 논란 많은 법률을 승인했다.
그러나 일본의 자위대를 헌법에 공식적으로 명기하는 '헌법 개정'이란 아베 전 총리의 숙원은 아직 달성되지 않고 있으며, 일본 내 분열을 초래하는 주제로 여전히 남아있다.
경제 및 코로나19 대책
아베 전 총리는 '아베노믹스'라는 대표 경제 정책으로도 유명하다. 과감한 금융완화, 재정지출 확대, 성장전략 등을 핵심으로 하는 정책이다.
아베노믹스 실시 이후 첫 임기엔 경제가 성장했으나, 점차 성장이 둔화하면서 아베노믹스의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아베 전 총리의 이러한 경제 부흥에 대한 노력은 일본 경제가 2020년 봄 2015년 이후 처음으로 경기 침체에 빠지며 또다시 어려움에 부딪혔다.
이에 더해 코로나19 팬데믹에 잘 대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지지율은 더욱 하락했다.
일본 정부는 '아베노마스크'라고 불리는 천 마스크를 전국에 배포했지만, 코와 입을 겨우 가리는 작은 사이즈와 늦어지는 배포 일정으로 또 한 번 질타받았다.
또한 당시 일본 국내 관광 활성화를 위해 실시된 정책이 코로나19 재유행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건강 이상설과 사임
그러다 2020년 8월 초 일본 주간지 '플래시'가 아베 총리가 7월경 관저에서 각혈했다고 보도한 이후, 건강 이상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스가 요시히데 당시 관방장관이 해당 보도를 부인했으나, 아베 총리가 8월 17일 도쿄 게이오대학병원에 입원하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했다.
8월 28일 아베 총리가 사임을 선언하며 소문에 마침표를 찍었으나, 후계자 지명을 거부해 자민당 파벌 간 다툼이 일어났다.
결국 베테랑 정치인이자 오랫동안 장관직을 지낸 스가 요시히데가 차기 총리로 취임했다.
스가 총리 내각은 코로나19 팬데믹에 일본의 재건을 지휘해야 하는 동시에 자민당 파벌 통합이라는 과제를 안은 채 2020년 9월 출범했다.
'친미'와 평화헌법
아베 정부의 외교정책은 한마디로 '미국 중심'으로 표현할 수 있다. 원래 일본은 전통적으로 외교에서 미국을 우선시했지만, 아베 정권 때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아베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서로를 '도널드', '신조'라며 이름을 부를 정도로 '브로맨스'(bromance, 남자들 간의 돈독한 우정)를 공유하는 사이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 회동 자리에서는 라운딩 도중 직접 카트를 운전했고, 멜라니아 여사와 딸 이방카의 생일까지도 챙겼다. 일본 내부에조차 '굴욕외교', '아베는 여행 가이드' 등의 비판이 쏟아질 정도였다.
하지만 '전쟁 가능한 국가'의 전환을 꾀하는 아베에게 미국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했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자 패전국인 일본은 평화헌법인 헌법 9조에 따라 군대를 보유할 수 없다. 아베 총리는 이런 일본을 전쟁 가능국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헌법 9조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대결이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미국과 협력해 '미·일 vs 중국' 구도를 만들면 목표인 군사력 증강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중국과 북한 견제도 가능하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일본과의 관계를 이용해 경제적인 실리도 많이 챙겼다.
지난해 미일 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일본 내에서는 '퍼주기 논란'까지 일었을 정도였다. 일본은 미국에 관세를 대폭 낮춰주는 등 농축산물 시장의 문을 대폭 열어줬다. 하지만 막상 일본이 주장하던 일본산 자동차 관세 인하 방안은 협정에서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는 협상과 별개로 미국산 옥수수 250만t을 추가로 수입하겠다고 밝히면서 일본 언론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최악의 냉각기' 한일 관계
그렇다면 아베 총리 취임 이후로 한일 관계는 어떻게 전개됐을까.
그가 처음 2006년 총리직에 올랐을 때, 그는 중국을 비롯해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전직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경색된 관계를 풀어보겠다는 목적이었다.
취임 2주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베 총리는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 주석과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과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같은 해 나온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아베는 한국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한·일 양국은 지금 하루 1만 명 이상이 왕래하는 중요한 관계다. 일본은 오랜 기간 한국에서 문화를 흡수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류 붐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나는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낙관주의다."
하지만 이후 실제로 보인 행보는 보수강경책이었다.
총리직에 다시 오른 지 얼마 안된 시점인 2013년 4월,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가장 민감한 영역인 역사 인식 문제에 분노한 한국은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확대를 발표했다.
이때가 도쿄의 올림픽 유치가 결정되기 직전이어서 일본은 발표 시기에 불만을 제기했고, 양국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 듯했다.
그러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한일관계에 큰 파장을 가져오는 일이 생긴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에 합의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정부 간 협의 과정에 피해 당사자들이 배제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며 일본 정부의 출연금으로 설립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다. 양측의 대립은 거세졌고 그 뒤로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 비행과 한국해군 구축함의 레이더 갈등으로 이어졌다.
2018년에는 한국인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더불어 해당 기업(일본제철)의 한국 자산 압류 등의 조치 등이 거론됐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국가 간 신뢰 손상'을 이유로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강화했다.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국 목록(화이트리스트)에서도 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