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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첫 여성 국무장관 별세
체코 이민자 출신으로 미국 역사상 첫 여성 국무장관 자리에 오른 매드린 올브라이트가 지난 23일(현지시간) 향년 8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오랜 기간 미국 외교 정책 전문가로 활동하던 올브라이트는 빌 클린턴 2기 행정부 시절인 지난 1997년 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국무장관이 됐다.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던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코소보 인종청소 종식을 위한 노력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올브라이트의 유가족은 성명을 통해 전 장관이 암 투병 중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올브라이트는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엄마이자 할머니, 자매, 이모, 친구를 잃었다"라며 애도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부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올브라이트의 별세를 애도했다.
클린턴 부부는 "재임 시절 시대에 맞게 완벽하게 맡은 일을 해낸 리더는 사실 많지 않다"라면서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미국의 정책적 결정은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맡은 일을 의무이자 기회로 받아들인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옌스 스톨텐버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현 사무총장은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자유를 위한 힘"이었으며 "열정적인 NATO 옹호자"였다고 평가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또한 올브라이트는 "세계 평화를 위한 자유 사회의 중요성을 현장에서 누구보다 잘 알았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전 세계는 올브라이트의 가치관을 "그 어느 때보다도 고수해야 한다"라며 고인의 업적을 칭송했다.
올브라이트는 1937년 '마리 야나 코르벨로바'라는 이름으로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나치 독일의 점령 후 국외로 강제 추방당한 체코슬로바키아 외교관이었다.
올브라이트 가족은 1948년 미국으로 건너와, 같은 해 자신들은 공산주의 정권의 반대자로서 고국에 돌아갈 수 없게 됐다며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이후 1957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올브라이트는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 백악관에서 근무했으며, 이후 여러 부통령과 대통령 후보들의 외교 정책 고문으로 활약했다.
그러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1993년 취임하면서 올브라이트는 유엔 주재 미국 대사로 임명됐다. 외교관으로서 첫 직책이었다.
분석: 안토니 저커, BBC 북미 기자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생애는 전형적으로 '미국적'이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 온 이민자 출신이었지만, 결국 미국 역사상 첫 여성 국무장관 자리에 오르면서 역사를 새롭게 썼다. 당시 미국 행정부에서 가장 고위급 여성 인사였다.
외교관으로서 올브라이트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소련 붕괴 후의 국제 질서를 정립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는 '실용적 이상주의'라고 불렀던 외교 정책을 통해 미지의 지정학적 해역에서 방향을 잡아 나갔다. 이를 통해 이라크나 발칸 반도 등 때로 외교적 방식이 통하지 않으면 미군을 동원한 공격적인 외교 정책도 펼친 바 있다.
1999년도 NATO의 유고슬라비아 공습은 NATO의 미래가 매우 불확실한 시기에 소련 붕괴 이후 NATO의 역할을 규정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올브라이트는 NATO 확장의 옹호자로서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3국의 1999년 NATO에 가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 선택의 파급효과는 오늘날 더욱 절실히 느껴지고 있다.
이후 올브라이트는 후에 '올브라이트만 아니면 되는' 파벌이라고 이름 붙여진 백악관 내 일부 반발을 극복하고 1997년 국무장관 자리에 올랐다.
올브라이트가 가장 유명해진 시기이기도 했다. 국무장관이 된 그는 클린턴 행정부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이 코소보에서 벌이고 있던 '인종청소'에 개입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일부에서는 그 이후에 있었던 NATO의 유고슬라비아 공습을 '올브라이트의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당시 올브라이트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밀로셰비치가 꾸미는 일에 대해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은 것이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반인륜적 범죄를 가만히 지켜만 볼 순 없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코소보 사태에 NATO 연합군이 개입한 지 9년만인 지난 2008년 코소보는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비조사 오스마니-사드리우 현 코소보 대통령은 같은 날(23일) 코소보가 "귀중한 친구"를 잃었다고 애도하며, "코소보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올브라이트의 기여는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올브라이트는 발칸반도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2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 미국에서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 또한 23일 애도를 표하면서 올브라이트의 "선구적인 업적"에 경의를 표했다.
불과 한 달 전인 우크라이나 침공 하루 전날, 올브라이트는 미 뉴욕타임스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한 사설을 기고하면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올브라이트는 푸틴 대통령의 취임 직후인 2000년 그를 처음 만났다.
올브라이트는 사설에서 "우크라이나는 이웃국이 누구든 간에 자신들만의 주권을 가질 권리가 있다. 현대 사회에서 강대국들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푸틴 대통령도 마찬가지"라며 최근 서방 외교 정책을 뒷받침하는 메시지를 드러냈다.
"바로 이 점이 법치주의 세계와 그 어떠한 규칙도 없는 세계의 차이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