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둘 카디르 칸: 파키스탄 핵폭탄의 아버지, 85세로 사망

압둘 카디르 칸

사진 출처, Reuters

사진 설명, 압둘 카디르 칸은 2009년까지 가택 연금됐다

'파키스탄 핵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치료 중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칸 박사는 파키스탄을 이슬람 최초의 핵무장 국가로 만들어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받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북한과 이란을 포함한 국가들에 핵 기밀을 전수한 것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임란 칸 총리는 10일 "파키스탄이 국가적 아이콘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트위터에 "칸 박사는 파키스탄을 핵보유국으로 만드는 일에 중대한 공헌을 했고, 덕분에 그는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라고 적었다.

AQ 칸으로도 불리는 그는 이슬라마바드 근처 카후타에 파키스탄 최초의 핵 농축 공장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8년 파키스탄은 첫 번째 핵실험을 진행했다.

인도의 유사한 실험 직후, 칸 박사의 연구로 파키스탄은 세계 7번째 핵 보유국으로 자리매김했고, 이는 국가적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2004년 이란, 리비아, 북한에 불법적으로 핵 기술을 공유한 혐의로 체포됐다.

칸 박사가 핵 기밀을 다른 나라에 전수했다는 폭로는 파키스탄을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그는 TV 연설에서 깊은 유감과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칸 박사는 당시 파키스탄 대통령이었던 페르베즈 무샤라프에 의해 사면됐지만 2009년까지 가택 연금됐다.

그의 행동은 서방의 많은 서방국들을 화나게 했고, 서방은 그를 "역대 최악의 핵 확산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파키스탄에서 국가 안보 강화의 역할을 한 자부심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아리프 알비 파키스탄 대통령은 "그는 우리의 핵 억지력 개발을 도왔다"며 "국가는 결코 그의 공로를 잊지 않을 것"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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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코레라 안보 특파원 분석

분석

고든 코레라 안보 특파원

AQ 칸은 서구의 정보원들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묘사될 수 있지만, 고국에서는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이러한 사실은 칸 뿐만 아니라 세계가 핵무기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AQ 칸은 다른 어떤 개인보다 핵무기 기술의 확산을 도운 큰 책임이 있다. 그는 자국의 핵 프로그램을 도왔지만 이란, 북한, 리비아를 포함한 다른 국가들에게 그 노하우를 전파했다. 그 동기가 돈이나 이념, 또는 파키스탄 지도부의 명령에 의한 것인지는 항상 모호했다.

서방 국가의 경우 핵무기 확산을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고,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해외정보국(MI6)은 칸의 네트워크를 와해시키는 일을 했다.

하지만 파키스탄 내에서 그는 존경받는 인물로, 인도에 대한 자국의 방어망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줬다.

나아가 그와 다른 사람들은 왜 서방 국가들이 다른 국가들에는 핵 보유를 거부하면서, 안보를 위한 자신들의 핵무기 보유는 허용돼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