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 합법화의 그늘, 중국인 이주 노동자

- 기자, 제시카 루센호프, 자오잉 펑
- 기자, BBC 뉴스, 뉴멕시코&오클라호마

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중국인 이민자 수백 명이 있었다. 이들은 합법적인 농사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뉴멕시코의 나바호족 미국 원주민 보호구역, 나바호국가(Navajo Nation)의 한 외딴 도시로 옮겨갔다. 그리고 이 선택은 이들이 지역 원주민 사회와 척을 지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기이한 이야기는 미국 대마초 시장의 호황이 동양계 이주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반면교사 사례다.
시아(가명)는 '꽃 손질'이라는 일자리에 대해 처음 듣고 장미를 떠올렸다.
정확히 어떤 일자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룸메이트가 '숙식 포함 일당 200달러'라며 소개해 준 열흘짜리 일감이었다.
시아는 중국 남부 지역에 다 큰 자녀들을 남겨두고 온 상황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실직해 자녀들에게 돈을 부쳐 줄 수 없게 되자 그는 미국 로스엔젤레스 샌 가브리엘 밸리에 있는 하숙집에 기거하고 있었다. 동양계 이민자 밀집 지역에선 흔한 거주 형태였다.
그런 시아에게 '꽃 손질' 일은 좋은 임시방편 같았다.
10월 초 시아와 다른 여성 5명은 파밍턴 외곽까지 열한 시간을 달렸다. 아름답지만 인구는 적은 뉴멕시코 북부 고지대 사막에 위치한 작은 도시였다. 그들이 도착하자 새로운 상사는 도로변에 자리한 밝은 분홍색 모텔, 트래블 인에 여장을 풀게 했다.



1층에 나란히 자리한 방에서 시아와 동료들은 간밤에 대여 승합차로 배달된 식물 더미 주위에 의자를 놓고 앉아 '꽃'을 잘라냈다.
확실히 장미는 아니었다. 시아는 부채꼴 잎이 달린 식물을 보고 은빛 쑥을 떠올렸다. 중국인들이 모기를 막기 위해 태우는 식물이다. 이 식물의 향은 너무 강해 모텔 주변으로 구름처럼 냄새가 진동했다.
그러나 당시 시아는 만족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유쾌한 중년 여성이었던 시아는 2015년 미국에 도착한 이래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가정 간병인, 돌봄 노동자, 안마사···. 이번 일은 훨씬 덜 외로웠다.
그는 "행복했다. 일터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다"고 중국어로 회상했다.
"꽃을 자르는 일이 더 나았어요."
일을 시작한 지 사흘,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시아는 저녁 식사를 알리러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문 앞엔 배지가 달린 제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중국어를 구사하는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그는 인부들에게 어떤 종류의 '꽃'을 자르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한 명씩, 고개를 저었다.
"저는 무섭지 않았어요.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제게 수갑을 채웠을 때,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경찰이 인부들을 차에 태워 유치장으로 호송하는 길, 누군가 농담을 건넸다.
"이봐요, 우리는 거의 환갑인데 수갑을 차고 경찰차에 탄 건 처음이야!"
법 집행 기관이나 국선 변호사와의 의사소통을 도와줄 통역사도 없었다. 시아는 며칠 동안 침대에 앉아 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했다.
그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감옥에서 중노동을 하고 결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아들을 떠올렸어요. 제가 미국에서 죽어도 아들은 모를 것 같았어요."



시아와 동료들의 사진이 현지 언론에 도배됐다. 이들은 규제 물질인 마리화나를 밀수하거나 배포하려는 모의 등 여러 개 중범죄 혐의로 기소됐다.

그해 여름, 시아가 알지 못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분홍색 모텔에서 차를 타고 약 30분 거리에 있는 나바호국가, 그곳의 작은 마을 쉽록(Shiprock)에서 대규모 마리화나 농업이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시아 같은 동양계 이주 노동자 수백 명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코로나 사태로 일자리를 잃자 농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돈도 벌려 했다.
이 같은 상황은 최근 미국 대마초 산업에 대한 중국계 미국인들의 공격적 투자와 관련돼 있다.
투자자들은 중국 이민자 사회에서 대마가 여전히 사회적 금기임에도 수백만 달러를 대마에 쏟아부으며 문 닫은 식당, 스파, 관광 사업 등에서의 손실을 메우려 했다.



대마초에 관심이 있는 유일한 소수 집단은 아니지만 미국 시골에서 동양인 노동자들은 눈에 띄었다.
부도덕한 기업가들이 대마초 산업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법률을 이용해 세운 농장은 나바호족 주민들과 격렬한 싸움을 벌이는 무대가 됐다.
나바호족 주민 한 명은 이렇게 회상했다.
"코로나 사태로 일자리를 잃자 모두가 대마로 향했어요. 그 뒤 갑자기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등을 돌렸어요."

나바호국가에 있는 비 레드페더의 소유지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숨 막히게 아름답고 황량했다.
남서쪽엔 '체 바이타(Tsé Bitʼaʼí)'가 성당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높이 480m짜리 거대한 바위로 쉽록 첨탑이라고도 불린다.
올해 쉰아홉 살, 세무사이자 은세공업자인 작은 체구의 레드페더는 이곳에서 30년을 살았다.
그는 지평선 너머를 내다보며 말했다. "평온하네요."



상황이 달라진 건 6월 초였다. 거대한 트럭 한 대가 레드페더의 땅 앞 좁은 도로로 거칠게 밀고 들어왔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차에서 나와 들판에 장비를 내리기 시작했다.
나바호국가는 부족 관료제에 기반해 신개발이 엄격히 통제되는 지역이었다. 레드페더는 그런 곳에서 대규모 새 농가가 자신도 모르는 새 길 건너편에서 지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바호국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미국 내에서도 상황이 가장 안 좋은 지역 중 하나였다. 구역 안팎으로의 이동은 엄격하게 통제돼야 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기록하기로 했다.
"그 사람들은 제게 '당신 여기서 뭐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원주민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전 곧장 되물었죠. '그러는 당신들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당신들은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 산후앙강(San Juan River) 농장 이사회 회장 디네 베날리가 차를 몰고 왔다. 그는 레드페더에게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물었다.
"전 '당신, 그리고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죠. 그는 화가 난 모습이었어요."
베날리는 원주민 정부의 전직 토목 기술 공무원이자 부족 거물 정치인의 장남이었다. 보호구역에 상업용 헴프와 마리화나(대마는 환각 증세를 일으키는 물질인 THC 함량에 따라 헴프와 마리화나로 나뉜다) 재배를 도입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뉴멕시코주는 2007년 의료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했다. 그러나 주법은 연방 및 부족법이 적용되는 나바호국가에선 효력이 없었다.
2017년, 베날리는 나바호국가에서 의료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로비에 매달렸다.
그는 자신의 이 같은 노력이 췌장암으로 사망한 어머니를 기리는 운동이라고 했다.


사진 출처, Twitter

현지 언론 나바호 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부족 의회에서 "어머니는 사망 직전 넉 달간 고통받았다"며 "어머니에게 더 나은 삶을 줄 약이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안은 투표 전 철회됐다.
2014년과 2018년 각각 농업 관련 법안이 통과되며 산업용 헴프 재배가 합법화됐다. 베날리는 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마리화나와 마찬가지로 헴프도 대마초의 일종이지만 향정신성 물질인 THC가 거의 들어있지 않다.
그러나 대마 재배 전 주에선 THC 농도 검사 방법을 포함한 생산 규제 체계를 먼저 만들어야 했다. 베날리는 이 같은 체계를 만들어 대마 섬유와 CBD 오일 제품을 생산해 수입을 창출하자고 나바호국가 지도부를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의회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같은 해, 의료용 마리화나 법안 통과도 계속 지연됐다. 베날리는 농장 이사회에 출마했다. 보호구역 내 농업 허가에 대해 제한된 권한을 가진 단체였다.
베날리는 이 새로운 직책을 통해 자신의 헴프 시범 프로젝트를 승인할 권한을 갖게 됐다고 믿었다.
그는 BBC의 이번 취재와 관련해 인터뷰나 성명서 제공을 거부한다는 뜻을 변호사를 통해 전해 왔다. 다만 앞서 그는 자신의 법 위반 혐의를 강력히 부인한 바 있다.


사진 출처, Navajo Nation Police Department

"우리 나바호족에겐 땅과 물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공적으로 일을 해 나가기 위해선 독립체가 필요합니다."
2019년 베날리가 한 기자에게 전한 이야기다. 당시 그는 자신의 땅에 이미 40만㎡ 너비의 대마 농장을 꾸렸다고 자랑하듯 말하기도 했다.
이 무렵 한 친구가 베넬리에게 어빙 린을 소개했다.
혈기왕성한 일흔 살 린은 수십 년 전 대만에서 이주해 캘리포니아 부동산으로 큰 돈을 벌었다. 또 아직 은퇴엔 관심이 없었다. 마리화나 투자에 열정이 있었지만 아내 때문에 자제하던 차였다. 린의 아내는 마리화나 판매로 돈을 벌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신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세미나를 운영했다. 대마초 재배에 관심을 두는 동양계 미국인 사업가들이 주 대상이었다.



린은 "우리 중국인들이 진입하기 좋은 분야"라며 "조만간 대마초가 중국의 주요 사업 중 하나가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베날리가 '나바호국가는 주권국이자 자신들의 결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회상했다.
린은 중국인들에게 토지를 임대하려는 나바호족 지주들을 세미나 참석자들과 이어주기 시작했다. 이는 수백만 달러의 투자로 이어졌다. 초보 농부들은 노동력을 찾아 가족과 친구들 인맥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수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향했어요. 아주 짧은 기간에 매일 사람들이 집을 보러 가고, 땅을 찾았죠. 6개월 만에 1000명이 이주했어요."



레드페더의 문 앞에 그 결과가 펼쳐졌다. 튼튼한 플라스틱 덮개를 씌운 강철 프레임의 저렴한 온실 '후프 하우스' 25채가 하룻밤 사이 완성됐다.
나바호의 전통 옥수수 품종을 재배하던 땅엔 이제 수백 개의 온실이 수평선까지 줄 맞춰 늘어서 있다.



"옥수수는 신성한 식물입니다. 헴프나 마리화나는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레드페더는 농가에 대한 심층 취재를 진행한 첫 언론 매체, 서치라이트 뉴멕시코에 이같이 말했다.
레드페더는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쉽록 내 대마 농장의 확장 상황을 기록했다.
동영상엔 땅을 다지는 중장비, 이동식 주택을 옮기는 트럭, 땅에 설치된 정화조 등이 담겼다. 이는 일반적으로 승인을 받는 데만 몇 년이 걸리는 대규모 재개발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쉽록엔 마리화나 냄새가 진동했다.
나바호 경찰도 베날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경찰은 베날리의 농장에서 재배하는 '헴프'가 실제로는 마리화나일 거라 의심했다.
나바호 카운티 필립 프란시스코 경찰청장에 따르면, 그의 농장을 폐쇄하려면 작물의 THC 수치가 0.3%보다 높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자체 마약 실험실이 없는 나바호 경찰은 표본을 외부 기관에 보냈다.
경찰이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코로나19가 나바호국가를 덮쳤다.
프란시스코 청장은 "전염병이 시작된 후 비슷한 농장이 빠르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7만㎢가 넘는 지역에 순찰관은 180명에 불과했다.
그는 "베날리가 이를 악용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는 원주민 보호구역에서의 법 집행이 얼마나 복잡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베날리는 대마 재배에 대한 원주민법을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해 농장을 시작했다.
한편, 쉽록에 등장한 많은 노동자는 원주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경찰은 그들을 기소할 권한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산후앙 카운티 보안관과 파밍턴시 경찰도 보호구역이나 원주민 근로자에 대한 관할권이 없었다.
다음 단계는 인디언사무국(Bureau of Indian Affairs)이나 FBI 같은 연방정부 조직들을 끌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인력은 제한돼 있었고, 대응 속도는 느렸다.
농장은 여름 내내 확장했다. 총 36개의 대마 농장이 생겨났다.
프란시스코 청장은 "22년 경력에 그런 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 코앞에서 벌어지는 이 대규모 사업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나바호 경찰은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곳에서 한 인부로부터 토지 소유자가 농사를 짓도록 허락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바호족 지주 33명이 베날리나 중국 투자자 같은 이들에게 토지를 임대하는 계약에 서명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주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이 나바호족 사람들도 코로나 사태로 소득의 상당 부분이 끊겼다. 그런 상황에서 이 외부인 투자자들은 이들에게 현금을 지불했다.
농장주들은 베날리의 농장위원회가 발행한 공식 '임시 대마초 재배' 허가서를 받았다.
한 지주는 BBC에 "우리는 합법적이라고 생각해 대마 재배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어느 날 아침, 레드페더의 어머니는 현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때, 근처 대마 농장의 일꾼으로 보이는 사람이 그에게 AK-47 소총처럼 보이는 무기를 들고 위협하는 손짓을 했다.
레드페더에겐 '결정타'가 된 순간이었다.
"화가 났어요. 정말, 정말로 화가 났어요."
레드페더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소총을 샀다.



그는 소셜 미디어의 힘을 활용해 대마 농장에 대한 시위를 조직했다. 시위대는 스스로를 '케야(Kéyah)', 즉 땅의 보호자라고 불렀다.
첫 번째 시위에서 약 100명의 쉽록 주민들은 '농장에 중국인은 필요하지 않다' '대마는 나바호의 방식이 아니다' 등이 적힌 푯말을 들고 마을을 통과하는 도로를 막아 섰다.
한 소년이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아시아의 침략은 없다!"
한 주민은 나바호 타임스에 "이것은 결코 인종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바호 타임스는 이 문제를 초기부터 취재해 기사를 썼다.
"그들은 땅, 물, 사람을 시작으로 지역 사회의 모든 자원을 사용합니다. 이건 옳지 않습니다."
이 시위는 대마 재배에 반대하는 나바호족 주민들과 대마 농장에 땅을 임대한 나바호족 주민 사이 대립으로 이어졌다.
유독 거셌던 한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길 건너편 농장주를 향해 "당신은 배신자"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사진 출처, Bea Redfeather

또 다른 동영상에서 레드페더는 코와 입을 두개골 얼굴이 그려진 마스크로 가리고 전투 조끼를 입은 키가 크고 건장한 청년과 대면했다.
"너희 아버지 그 약사 선생님 아니니?" 레드 페더는 농장으로 가는 길을 막고 그를 향해 소리쳤다.
스물다섯 살 청년 브랜든 빌리는 이런 종류의 갈등에 특별히 신경쓰지 않았다.
베날리의 보안 책임자인 빌리는 농장에 들어온 침입자를 쫓는 흥분을 즐겼다. 그에게 더 중요한 건, 일자리가 부족한 시기에 꾸준한 일감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진 출처, Bea Redfeather

빌리는 "베날리는 일할 의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고용했다"고 했다.
"적지만 수입 때문에 일했어요. 제겐 직업이었죠."
농장 노동자에 대한 위협이 더 빈번해지자 빌리는 동양계 노동자들과 함께 이동식 주택으로 이사했다.
그는 번역 앱을 사용해 그들과 소통했고 함께 요리도 했다. 중국인은 나바호족 노동자를 위해 매운 국수를 만들고 돼지 머리를 구웠다. 나바호족은 보답으로 튀긴 빵, 양고기 스튜, 옥수수죽을 내놨다.
빌리는 먼 훗날 새로 사귄 중국 친구의 고향을 방문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저는 그들을 '형제자매'라고 불렀어요."
그러나 그의 직업은 가족들에게 곧 문제가 됐다. 당초 빌리의 아버지는 대마 농장에 취업한 아들을 지지했다.
하지만 여론이 농장을 반대하자 더 이상 아들 편을 들 수 없게 됐다.
빌리가 농장 일은 그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만 둘 수 없다고 말하자, 결국 아버지는 아들과 연을 끊었다.



쌀쌀한 11월 아침이었다. 빌리는 막 커피 한 잔을 내려 트레일러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큰 소리를 들었다.
그는 뒤를 돌아봤다. 경찰차가 숙소 앞 작은 비포장 언덕에 추돌하는 장면이 보였다. 그리고, 차에서 내린 경찰들이 빌리에게 AR-15 소총을 겨눴다.
경찰은 빌리에게 수갑을 채운 뒤 경찰차 뒷좌석에 밀어 넣었다.


사진 출처, Navajo Nation Police Department

이 같은 극적인 장면들은 쉽록 전역의 농장에서 펼쳐졌다. 몇 주간 계획을 짠 끝에 대규모 태스크포스(TF)가 꾸려졌다. 나바호 경찰과 주 경찰 인력 수십 명을 비롯해 FBI, 마약단속국, 국토안보부 및 환경보호국 요원 등이 동원됐다.
이른바 '나바호 골드 작전팀'이 사흘에 걸쳐 농장을 급습해 농작물을 압수했다.
이들은 모두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빠르게 증명했다. 농장엔 헴프가 아닌 마리화나가 가득했다.
요원들은 스물한 개 농장과 개인 주택 두 곳에서 마리화나 2700kg을 압수했다. 한 온실에선 판매용으로 개별 포장된 마리화나 450kg이 발견됐다.



빌리와 수십 명의 농장 노동자들은 쉽록 고등학교 체육관으로 이송됐다. 교장으로부터 졸업장을 받았던 방에서 빌리는 FBI 요원의 추궁을 받았다. '베날리의 사업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라'고 했다.
트래블 인에 머물던 노동자들과는 달리 여기선 아무도 체포되지 않았다. 대신 노동자들은 FBI가 파견한 통역가와 뉴멕시코주 인신매매 방지팀의 린 산체스를 만났다.
집과 직장이 모두 범죄 현장이 된 노동자들을 돕는 게 산체스의 업무다.
산체스는 "그들은 매우 겁에 질려있었다"고 말했다.
"한 노인이 기억나요. 65세쯤 됐거나 더 많았을 거예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죠."
인신매매 방지팀과 '라이프 링크'라는 조직은 수십 명의 농장 근로자에게 교통비와 보상금을 제공했다.
일부는 사라져버렸다. 프란시스코 청장은 농장 급습 다음 날, 동양계 노동자들이 히치하이킹과 노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산체스는 위생 시설이 없는 농장에서 진료도 받지 못한 채 야외나 나무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노동자들에게서 분명한 '인신매매 징후'를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이 얼마나 비참했는지와는 무관하게 인신매매 여부를 따지는 건 법적으로도, 노동자 스스로를 위해서도 복잡한 일이다.
"음지에서 인신매매는 모든 걸 착취합니다. (하지만) 이게 노동자가 이런 상황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인신매매 반대 단체 뉴프레임워크(New Frameworks)의 설립자 에린 올브라이트의 이야기다.
그는 "이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덧붙였다.


사진 출처, Navajo Police Department

산체스에 따르면 일부 노동자들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의 도움을 거부했다.
한 36세 노동자는 쉽록의 많은 중국인 노동자를 취재한 홍콩 디지털 잡지 인티움 미디어에 "상호 동의에 의한 것이었다"며 "아무도 나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산체스와 그의 단체는 국선 변호인으로부터 트래블 인에 머물던 노동자 17명이 여전히 파밍턴 어딘가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아와 동료 5명은 저렴한 모텔방을 나눠 쓰고 있었다. 판사는 이들을 석방하며 뉴멕시코를 떠나지 말라고 주문했다.
이들은 열흘간 방에 갇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채 쌀죽으로 끼니를 때웠다.
이 시점에서 검사는 이들이 마약 조직의 일원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는 여성들에 대한 공소를 취소했다.
산체스의 인신매매 방지팀은 시아와 동료들이 캘리포니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중국에 있는 자녀들이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이유를 물어오자 시아는 거짓말을 했다.
"휴대전화가 고장났었다고 말했어요. 아이들이 진실을 알면 걱정할 테니까요."
그는 "돌아보면 악몽 같다"고 덧붙였다.
하숙집으로 돌아온 시아는 몇 주 동안 쉴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일자리는 없었고 로스엔젤레스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다시 급증했다.
그는 친구들로부터 일부 노동자들이 직접 쉽록의 농장에서 오클라호마의 농장으로 갔다는 정보를 들었다.
오클라호마는 이른바 '마리화나 골드러시(과거 미국의 금광 발견지로 사람들이 몰려든 현상을 일컫는 말)'의 떠오르는 개척지였다. 친구는 시아에게 안마소에서 일자리를 구한 뒤 다시 농장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시아는 "모든 일은 힘들다. 나는 여전히 인내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시아는 물건을 챙겨 미지의 세계로 차를 몰았다.




오클라호마시티의 동양인 구역은 번화한 4차선 도로 양편에 약 10개 블록 길이로 뻗어 있다. 중국 식료품점, 버블티 가게와 식당이 있고, 그 중심엔 지난해 말 문을 연 오클라호마 푸젠성(복건성) 중국인 협회가 자리잡고 있다.
오성홍기와 성조기가 걸린 방에서, 마작을 하는 남성 두 명을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방은 담배 연기, 마작 패가 부딪치는 소리, 웃음과 욕설로 가득 찼다.



티셔츠, 청바지, 운동화 차림의 남성들은 3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했다. 대부분 마리화나 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오클라호마로 이주한 식당 업주들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어빙 린에 따르면 중국인 투자자 최소 12명이 뉴멕시코 농장에서 노동자들과 그나마 건질 만한 것들을 이고지고 오클라호마로 왔다.
린은 "당신들이 뉴멕시코에서 나를 막는다? 그럼 나는 즉시 오클라호마로 간다"고 했다. "그래서 뭐? 다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운이 좋지 않았다. 한 캘리포니아 투자자는 자신이 저축과 담보로 삼은 집을 모두 잃었다고 BBC에 말했다.
일부 운 좋은 투자자들이 푸젠성 중국인 협회에 있었다. 뉴멕시코에서의 경험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취재진이 질문을 건네자 몇 명은 정중하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대마초가 뭐죠?" 누군가 건방진 미소를 띄며 물었다. "다들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긴 모직 코트를 입은 세련된 외모의 남자(한쪽 귀에 에어팟을 끼고 있었다)가 협회에 도착했다. 그는 자신을 마이클이라고 소개하며 쉽록에 투자하진 않았지만 그곳의 파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탁자에서 담배를 피우는 세 남성을 가리키며 '그곳에서 투자금을 잃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시도해 봐요." 그는 북경어로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저 사람들이 뉴멕시코에 관해 이야기 할 것 같지는 않네요."
이후 전화 통화에서 마이클은 쉽록의 투자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법을 위반하고 재정적 손실을 본 것에 대해 당황스러워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많은 중국인은 여전히 마리화나를 위험한 마약으로 간주하고 있어 남성들이 이에 대해 이야기하길 원치 않을 거라 했다.
50대인 마이클은 코로나 사태 초기 경제 불황을 예상하고 미 동부에 위치한 침술원 3곳을 매각했다.
지난해 6월 그는 푸젠성 친구 몇 명을 설득해 돈을 들고 오클라호마로 넘어왔다.
그는 마리화나를 한 번도 피워 본 적이 없지만 현재 농장과 농업 장비 상점을 포함해 여러 합법적 대마초 관련 사업장을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마이클은 그가 고용한 노동자 대부분이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푸젠성 식당 종업원 출신이라고 했다.
이들은 카우보이 역사와 확고한 공화당 지지로 더 잘 알려진 주들, 이른바 '바이블 벨트'의 고리 부분에 착륙한 셈이었다.
마이클은 자신이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2018년 의료용 마리화나가 합법화된 이래, 보수적이기로 유명했던 오클라호마주는 '불간섭 규제' 정책으로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마리화나 시장이 됐다.
오클라호마에서 대마초 면허 취득 비용은 수만 달러를 내야 하는 다른 주와 달리 2500달러에 불과하다. 주에서 발급할 수 있는 면허 수량에도 제한이 없다.
오클라호마시티의 변호사 매트 스테이시는 그 결과 오클라호마가 소위 '그린 골드러시'의 중심에 섰다고 봤다. 그에겐 약 300명의 중국 고객이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죠."

오클라호마에서 마리화나 사업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초기 비용은 상대적으로 낮다.
하지만 대마초 사업은 본질적으로 자본과 노동집약적이다. 그리고 미국의 중국 이민자 사회는 이 두 자원을 대규모로 소유하고 있다.
노동력 모집은 종종 입소문, 중국 채팅앱인 위챗의 대마초 그룹, 아니면 푸젠성 협회 같은 동향 사교 모임을 통해 이뤄진다.
또 미국 전역의 차이나타운엔 중국인이 운영하는 사업체와 저임금 이주 노동자를 연결하는 직업소개소가 있다.
동양인 인구가 약 2%에 불과한 오클라마호에서 신규 이민자들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제인과 빅 그리섬은 2018년 오클라호마 최초로 재배 면허를 획득했다. 이들은 오클라호마시티 외곽에서 작고 세련된 제조실을 운영했다.
지난해 8월, 한 무리의 중국인 남성들이 3만2000㎡의 땅을 사들이고 길 건너편에 거대한 농장 단지를 짓자 부부는 깜짝 놀랐다.
"오클라호마는 다양한 인종이 사는 곳은 아니었거든요."
제인이 설명했다. "그렇게 많은 중국인이 우리가 있는 시골까지 왔다는 게 정말 기이했죠."
제인 부부는 각각 '66쿠키' 'OK 부머' '스파이시 베리'라는 이름을 붙인 컨테이너 3개에서 '수제 마리화나'를 재배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규모 신규 재배자들로 인해 시장에 제품이 과다 공급되거나 주 경계를 넘어 불법 판매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클라호마에서 재배된 마리화나는 주 내에서 소비돼야 한다.



빅은 "이곳은 무법지대"라고 지적했다.
"골드러시일수도, 오클라호마의 저주일수도요. 어느 것인진 모르겠네요."
중국계 미국인 대마초 농장주 애런(가명)은 실명이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기꺼이 방문객에게 문을 열어줬다.
샌들과 운동복 차림으로 줄담배를 피우던 애런은 자신의 '대마초 제국'을 자랑스러워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마리화나 재배 경험이 전무했던 이 남성은 놀라운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농장엔 대마로 가득 찬 창고형 건물이 여러 채 있었다. 식물원처럼 보이지만 조립라인이 있는 공장이었다.
중국인 노동자 10여 명이 덤불 사이 작은 벤치에 앉아 조심스럽게 어린 식물을 가지치기하고 있었다.



애런의 직원들은 사나운 개 두 마리가 마당을 지키는, 길 아래 사택에 머물렀다.
그날 오후 직원들은 부지 뒤 연못에서 잡은 생선으로 엄청난 양의 생선 수프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애런도 푸젠성 출신이다. 푸젠성에서 불법 이민이 만연했던 수십 년 전, 10대 때 미국으로 밀항했다.
처음 몇 년은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메인주과 오하이오주를 비롯해 전국 곳곳 식당에서 일하며 중노동과 열악한 생활 환경을 견뎠다.
그는 배낭에 모든 소지품을 넣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전혀 알지 못한 채, 이상하고 새로운 도시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절망을 여전히 생생히 기억했다.
"제 유일한 선택은 고난을 견디고 불평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애런이 중국어로 말했다. "직장을 잃으면 갈 곳이 없었으니까요."
그는 길거리에서 영어를 배웠고, 영주권을 얻었고, 플로리다에서 식당업으로 종잣돈을 모았다.
그는 한때 서른 개 넘는 식당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요즘 애런은 시아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근로자들을 고용한다.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고, 생존을 위해 노동 집약적인 일을 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와 비교해 노동자들의 상황이 훨씬 나아졌다고 말했다.
중국에 있는 가족과 연락할 수 있는 휴대전화, 전보다 확고해진 미국의 아시아계 이민자 네트워크가 고용주와의 관계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전 직원들을 제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대해요."
애런이 큼지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중국인들은 적응력이 뛰어나요.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방법을 찾죠."
그렇다고 최근 이주한 오클라호마에서의 생활이 쉬웠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이클은 오클라호마 경찰이 자신을 세 번이나 불러 세웠다고 말했다.
"경찰은 다른 주 번호판을 달고 있는 차량에 동양인이 타고 있으면 일단 세우라고 명령해요. 그들은 제 차를 샅샅이 조사했죠."
연방법 및 주법에 따라 법 집행관은 범죄와 관련됐다는 의심이 있으면 현금을 압류할 수 있다.
마이클은 모든 것을 현금으로 처리하는 데 익숙한 이민자 사회에 이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그는 미국에서 산 30년 동안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를 소유한 적이 없다고 했다.
대마초 전문 변호사 매트 스테이시는 수만 달러의 현금 몰수 사건을 매주 여러 건씩 처리한다.
스테이시는 "누군가 합법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돈이 '실제로 그들의 돈'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증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관행이 자신의 동양계 이민자 고객들에겐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고객 중 상당수는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이다.
스테이시는 "이건 은행화되지 못한 산업"이라고 말했다. 마리화나는 아직 연방 차원에서 합법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마초 기업가의 은행 거래는 제한된다.
'뉴멕시코 사건' 이후 오클라호마 농장주들은 현지인들과 법 집행 기관이 농장을 합법적이라고 보지 않는 데 더욱 우려하고 있다.
갈등의 징후는 이미 나타났다.
지난 4월 말 오클라호마 마약국이 한 농장을 급습했다. 합법적인 의료용 마리화나 면허를 보유한 농장이었지만 대량의 제품을 암시장에 판매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경찰은 영어를 못 하는 대만과 중국 출신 소유주와 노동자 11명을 구금했다.
주 입법부는 면허 소지자에게 마리화나 사업으로 얻은 '외국에서의 재정적 이익'을 공개하게 하는 법안을 심사 중이다.



어빙 린은 대다수의 동양계 농장주가 오클라호마 법을 준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잘못한 게 없어요. 가족을 부양해야 하죠."

린이 여전히 오클라호마의 대마초 사업에서 밝은 미래를 보고 있는 사이 쉽록은 큰 혼란에 빠졌다.
농장은 텅 비었다. 버려진 이동 주택과 합판으로 만든 판잣집 안의 찬장, 서랍, 옷장의 내용물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법 집행 기관이 증거를 찾기 위해 뒤진 흔적이었을 것이다.
하수구와 썩은 음식 냄새가 났다. 옷장엔 옷이 걸려 있고, 싱크대 옆엔 칫솔이 있었다. 집 밖엔 빈 병과 중국 담뱃갑이 뒹굴었다.
레드페더는 "우리가 보는 건 플라스틱들 뿐"이라며 "쓰레기와 죽은 대마 식물 천지"라고 했다.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이죠."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레드페더는 산후앙강 농장 이사회 회장직 선거에 출마해 베날리를 누르고 당선됐다.
그는 나바호족 지주 33명의 농업 허가를 박탈한다는 공약을 지키고, 대규모 '청소'를 시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바호국가 법무부 장관도 지주들을 고소했다.
이들 중 17명은 함께 새로운 대마 농민 협회를 결성해 '베날리의 불법 작물 재배 의도를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단체를 대표하는 한 변호사는 고령의 나바호족 지주들에게 총을 겨누는 등 무리한 법 집행이 있었다며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베날리는 쉽록을 떠났다.
그는 음모, 가중 폭행 및 사법 절차 방해 혐의로 기소 위기에 직면했다.
마약단속국과 FBI의 조사가 계속 진행 중이며 쉽록에 몇 명의 이주 노동자가 있었는지, 농장주나 투자자를 기소할 것인지 여부는 아직 명확치 않다.
산체스에 따르면 트래블 인 직원들의 협력 덕분에 인신매매 조사엔 탄력이 붙었다.
브랜든 빌리는 나바호국가에서 '불편한 존재'가 됐다.
현재 그는 인근 마을의 보건소에서 심야 교대 근무를 한다. 낮엔 주차장에 세워둔 낡은 SUV 뒷좌석에서 눈을 붙인다.
쉽록 근처에 그의 본가가 있지만 가족의 안전을 위해 가까이 가지 않는다.



그는 "쉽록은 너무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저는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껴요."
중국 여행의 꿈도 사라졌다. 그는 자신이 좋아했던 일꾼들과 계속 연락하고 싶었지만, 하나둘씩 연락을 받지 않는다.
오클라호마에서 시아의 경험은 짧고 실망스러웠다. 그는 대마 꽃 절단 일을 얻지 못해 다시 안마사로 일했다.
농장에 있는 친구들은 그에게 '오지 말라'고 했다. "'눈보라'가 심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 로스엔젤레스로 돌아가기로 했다.
지난 3월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한 남성이 총을 쏴 8명을 살해했다. 그 중 6명이 동양인 여성이었다.
살인자는 시아가 수년간 일했던 곳과 비슷한 스파를 표적으로 삼았다. 피해자 중엔 시아처럼 일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한국인과 중국인 이민자들이 포함됐다.
미국 전역에 동양계 미국인, 특히 여성에 대한 증오 범죄와 폭력이 부쩍 늘어난 직후 벌어진 살인 사건이었다.
시아는 더 이상 스파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가뜩이나 부족한 일자리에서 선택지가 더욱 좁아졌다.
그는 가족에게 송금할 돈을 벌지 못하는 건 물론, 미국에 얼마나 오래 머무를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종종 중국인들이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죠. 너무 무서워요. 공포 속에 사는 것 같아요."
이 모든 일을 겪은 후에도 시아는 대마초 농장에서 부채꼴 잎 식물을 자르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했다.
캘리포니아로 돌아오고 몇 달이 지나 그는 등 뒤로 태양이 내리쬐는 농장에서 장시간 노동하는 일자리를 찾았다.
계절에 따라 산발적으로 생기는 자리였지만 시아는 일만 있으면 언제든지 농장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고통과 피로를 신경쓰지 않는다면, 농장에서의 하루는 빠르게 흘러요."

추가 취재 및 사진: 시얀 유 / 삽화: 케이티 호르비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