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 시간당 2.9만원 '세계최고' 최저임금 도입한 이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꼽히는 제네바의 무려 급식소 앞에 긴 줄이 생겼다
사진 설명,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꼽히는 제네바의 무려 급식소 앞에 긴 줄이 생겼다

스위스 제네바의 최저임금이 이번 달부터 시간당 약 2만9000원으로 올라간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 9월, 두 달간 진행한 국민투표에서 ‘최저임금 시간당 23프랑(약 2만9000원)도입' 안건이 통과됐다. 하루 8시간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일당으로 184프랑(약 23만3000원)을 받게 된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약 4000프랑(약 500만원)이다.

제네바는 매우 부유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유엔의 유럽 본부를 비롯해 유명 대형 은행의 본사와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이곳에 있다. 그런데 제네바 주민들은 왜 지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액수의 최저임금을 도입하기로 했을까?

서비스업 종사자의 삶

제네바가 부유한 도시인 것은 사실이나, 모두가 은행이나 국제기관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도 호텔과 미용실, 음식점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저소득 근로자들이 있다. 지난 3월 스위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봉쇄 정책을 펼쳤을 때, 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봤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최고 부자 도시로 알려진 제네바의 무료 급식소에 긴 줄이 늘어섰고, 이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6월 푸드뱅크 앞에서 줄 서있는 사람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지난 6월 푸드뱅크 앞에서 줄 서있는 사람들

사실 무료급식소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있었다. 봉쇄 정책이 끝난 지 몇 달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제네바 곳곳에 무료급식소가 있다.

스위스의 자선단체 ‘콜리 드 쿠어’는 도심에 있는 푸드 뱅크에서 매주 수천 개의 식료품 상자를 나눠준다. 사람이 몰려 매번 대기 시간이 길다. 이 중 어린아이가 있는 엄마도 많다.

최저 임금이 시간당 23프랑이면 너무 높은 거 아닌가?

물론 큰돈이다. 하지만 제네바에 산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콜리 드 쿠어'의 공동대표인 찰리 에르난데스는 "제네바에서 단칸방 월세가 약 1000프랑(123만원)"이라며 "한 달에 식비로 500프랑(62만원)을 잡고, 보험으로 550(68만원)프랑을 잡으면, 돈 관리를 굉장히 잘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거기다 자녀가 있다면, 월 4000프랑으로 버거울 것이라고 말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도 스위스의 물가는 버겁다
사진 설명,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도 스위스의 물가는 버겁다

이번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사람들의 삶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푸드뱅크 도움을 받았다는 잉그리드는 "매달 말이면 돈이 다 떨어졌다"면서 "식료품을 지원받는 주에는 그 기간 음식 걱정을 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네바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며 푸드뱅크에서 자원봉사하는 로라도 제네바의 물가가 너무 높다고 말한다. 26살인 그는 제네바에서 독립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제 월급으로 독립한다면 정말 작은 원룸밖에는 찾을 수 없거든요. 그래서 아직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있어요."

Minimum wage in Europe. Monthly salary in euro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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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이 올라가면 돈은 누가 대나?

시간당 23프랑 이하를 제공하고 있는 사업체라면, 직원들의 시급을 인상해야 한다.

제네바 상공회의소의 빈센트 수빌리아 연구원은 코로나19 때문에 수익이 많이 감소한 상황에서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호텔과 외식 업계는 이미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큰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며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이 업계의 미래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제네바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스테파노 파나리는 스위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인상된 최저임금을 책임질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주방장인 내 월급도 5000에서 6000프랑 사이"라면서, "홀 담당에게 이와 비슷한 월급을 주면서 어떻게 사업을 이어갈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사람들이 월 4000프랑을 받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그 돈을 줄 수가 없어요. 전 이미 하루에 12시간을 일하고 있어요. 제가 뭘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스위스의 미래

제네바의 최저임금 인상은 국민투표로 통과됐다. 인구 48만 명인 제네바주는 지난 9월 27일 최저임금 인상 안건을 찬성 58.16%(8만1371명), 반대 41.84%(5만8549명)로 통과시켰다. 같은 날, 남성의 2주 유급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안건도 통과됐다.

외식 업계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사진 설명, 외식 업계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찰리 에르난데스는 특히나 요즘처럼 어려울 때 스위스 같은 부유한 나라에서 이 같은 흐름이 만들어졌다는 건 좋은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스위스에는 국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열려있다. 하지만 에르난데스는 생각보다 많은 법안이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인상은 “사람들이 직접 투표해서 만든 결과”라고 강조했다.

이달 말 스위스에서는 국가가 기업의 책임을 묻는 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이 법안에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기업이라면 공급망에 따라 전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 운영하더라도 스위스의 인권과 환경 보호 기준에 따라 법적, 재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민이 이에 찬성한다면, 스위스는 앞으로 제네바 내 최저임금 인상보다 더 큰 비용을 감당해야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