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진학을 미끼로…손가락 잘려가며 일해'... 근로정신대 할머니의 삶

사진 출처,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언니나 나나 속아서 가게 된 것도 억울한데, 고된 노역을 했지만 그에 대한 대가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둘 다 무슨 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일본에 다녀온 사실을 숨긴 채 살아야 했다." (고 김정주 할머니 자서전 '마르지 않는 눈물' 中)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는 미쓰비시중공업(이하 미쓰비시)의 자산 현금화 강제집행 결정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시위가 열렸다.
이 법적 분쟁의 역사는 2012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금덕·김성주 할머니 등 원고 5명은 광주지방법원에 미쓰비시를 상대로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2018년 11월, 한국 대법원은 원고의 손을 들어주며 미쓰비시에 배상을 촉구했지만, 아직까지도 실제 배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사이 소송을 제기한 5명 중 양금덕 할머니와 김성주 할머니를 제외한 3명이 세상을 떠났다. 양금덕 할머니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여러 시위 및 활동에 참가했지만, 건강 악화로 이날 대법원 시위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법적 분쟁이 길어질 동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조선여자근로정신대'(이하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은 어떤 일을 겪은 걸까.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옛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펴낸 김성주·김정주 할머니와 양금덕 할머니의 자서전은 당시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중학교 가게 해줄게'
한국에서 근로정신대에 동원된 상당수는 국민학교를 갓 졸업한 12~14세였다.
김성주 할머니는 15살 때 국민학교 시절 일본인 선생님의 권유로 일본에 가게 됐다. '일본에 가면 중학교, 고등학교도 보내주고 좋은 회사에 취직도 시켜준다'는 말이 솔깃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일을 돕던 중이었다.
양금덕 할머니도 중학교에 보내주겠다는 일본인 교장의 말에 속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국민학교 때 매년 반장을 할 정도로 똑똑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보호장비도 없이…군수공장서 매일 9시간 노동
김성주 할머니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 도토쿠 공장에 파견돼 전투기 제작에 사용되는 듀랄루민 판을 자르는 작업을 맡았다. 근무 시간은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점심시간을 빼고 9시간이었다.
할머니는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하면 작업반장이 뭐라고 해서 참아야 했고, 옆 사람과 대화하거나 동료를 사귈 겨를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왼쪽 집게손가락이 절단기에 잘리는 사고를 겪었다. 병원을 찾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또 지진 때문에 공장 건물이 붕괴되면서 다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전라남도에서 함께 온 친구 여섯 명이 사망한 큰 사고였다.
양금덕 할머니도 김성주 할머니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며 신나와 알코올로 비행기에 녹이 슨 부분을 닦아내고 페인트칠하는 작업을 했다. 아무런 보호구도 없었기 때문에 약품이 눈으로 들어가는 일도 많았다. 할머니는 지금까지도 눈 한쪽과 코 한쪽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사진 출처,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해방 후 한국 왔지만…견디기 힘든 '손가락질'
근로정신대로 일한 사람 중 상당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모진 손가락질을 견뎌야 했다.
김성주 할머니의 남편은 결혼 후 할머니가 근로정신대로 일본에 갔다 온 사실을 알고는 정숙하지 못하다며 화를 냈다. 할머니는 징병에 끌려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공장에서 일했을 뿐이라고 얘기했지만 남편은 믿지 않았다.
동생인 김정주 할머니도 언니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일본으로 갔다가 후지코시강재공업 공장에서 쇠 깎는 일을 하다가 돌아왔는데, 같은 이유로 남편에게 핍박받다가 결국 이혼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위안부'로 일하지 않았다고 해명해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양금덕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도 일본에 취업을 미끼로 한 사기에 속거나 심지어 납치당해 강제로 끌려갔다"이라며 "하지만 사람들은 강제로 끌려갔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안타깝게 여기거나 위로하기는커녕 마치 전염병에 걸린 사람 대하듯이 피하고, 오히려 경멸했다"고 회상했다.
손에 떨어진 건 단돈 '99엔'
결국,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은 중학교 진학은커녕 월급도 받지 못했다. 사과도 없었다.
할머니들은 1990년대부터 일본에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지만 줄줄이 패소했다.
일본 정부는 양금덕 할머니를 비롯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이 후생연금(국민연금) 탈퇴 수당을 요구하자, 2009년 12월 당시 물가를 적용한 99엔(약 960원)을 일괄 지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