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적 미래: 자아와 사회에 대해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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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하는 뉴스를 보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전체주의적 권위주의가 장악한 미래다. 기후 위기, 전염병, 빈곤, 굶주림 등 갖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스트롱맨(철권통치자, 독재자)"과 거래하는 것. 대중은 스트롱맨에게 "신하"처럼 충성을 받치고, 그의 보호를 받는다. 보호의 대가는 각자의 권력과 선택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다른 미래상은 모든 사람이 "소비자"가 되고, 이 안에서 벗어나는 게 극히 힘든 상태다. 물론 사회 내 가장 부유한 이들은 예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머지는 일자리나 자원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인공 지능과 바이오, 농업 등에서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그 혜택은 가장 부유한 이들에게만 돌아간다. 이것이 실리콘밸리의 억만 장자들이 만든 미래다. 모든 것이 개인의 자유 의사에 입각해 거래되지만, 대 부분은 그 혜택에서 소외된다. 사회의 상층부가 극도로 많은 것을 가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와 다른 시나리오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시민적 미래"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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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두 사람은 지난 몇 년 동안 이 주제를 탐구해왔다. 그리고 '시민들'이라는 책을 통해 21세기의 희망적 미래상을 제시했다. 이 미래상에서 인간은 누군가의 신하도 소비자도 아니다. 시민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전체 집단보다 똑똑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이들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잘 활용한다면, 그 어떤 어려운 시기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시민이 된다는 것은 어떤 국적을 갖는다거나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상호의존적이고, 공동체를 통해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간다. 그래서 시민이 된다는 것은 어떤 지위를 확보한다는 뜻보다는 아니라, 함께 살아간다는 뜻이다. 시민은 주변을 살피고 자신이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이해하고 타인과 협력하며 사회에 참여한다.
이러한 미래를 위해선 새로운 관점으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란 무엇인가?
책을 쓰면서 우리는 시민의 의미에 들어맞는 여러 사례를 발견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고, 그 영역도 다양했다. 그리고 겉으로는 개별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공통된 주제로 연결되어 있었다.
거버넌스를 예로 들어보자. 프랑스 파리는 시의 정책을 알리기 위해 상설 '시민 회의'를 만들고, 연간 1억 유로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멕시코시티는 집단 지성을 활용해 법을 제정했고, 칠레는 국가 헌법을 제정하기 위해 시민 중심의 협약을 만들고 있다. 레이캬비크에선 게임 디자이너들이 시 운영에 수 배명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참여 민주주의 플랫폼을 구축했다.
그 중에서도 대만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팬데믹 속에서 대만은 "빠르게, 즐겁게, 공정하게"라는 대응 원칙을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공공 데이터를 개방하고, 시민들의 마스크 수급 추적 앱 개발을 장려했다. 또한 사람들을 신뢰해 "자발적인 자기 감시"로 이동을 줄이게 했고, 핫라인을 구축해 누구나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대만은 도시 봉쇄 없이, 치사율을 세계 최저 수준으로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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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적 미래는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나왔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은 "주주의 가치"뿐만 아니라 "이해 관계자의 가치"도 고려한다. 기업 활동과 관련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고려하는 것이다. '유니레버'의 전 CEO가 사회에 "순 긍정적인" 기여자가 되는 것을 기업의 목표로 삼은 것이 한 예다. 아울러 세계적인 기업 혹은 급성장중인 기업들이 대중이 참여하는 크라우드 소싱이나 크라우드 펀딩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었다. '제너럴 일렉트릭'이 기업의 주요 과제 중 일부를 대중의 집단 지성으로 풀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또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플랫폼 협동조합(여럿이 함께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관리되는 플랫폼)과 투자형 크라우드펀딩도 부지런히 진행중이다.
비영리 부문에도 시민적 미래가 싹트고 있다. 비영리 단체들이 시민이 주도하는 사회 운동을 만들어가는 있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왕립 조류보호협회와 세계자연기금이 '자연을 위한 인간의 계획'을 만들고 있다. 그린피스 USA는 애니 레너드 최고 경영자가 말한 "영웅들 중의 영웅"을 목표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있다. '레스토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해, 전세계 풀뿌리 자연 보존 프로젝트를 서로 연결하고 협력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지역사회 공동체 단체들도 기존의 원조 및 자선 모델 대신 새로운 해법을 시도하고 있다. 주민들이 지역 공동체 단체에 투자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 주주 제안'을 만든 영국이 그 예다. 잉글랜드 북부의 그림스비에서 '이스트 마쉬 유나이티드'라는 단체는 주주 제안 프로젝트를 통해 50만 파운드를 모았다. 그리고 이 자금으로 주택 10채를 구입하고 주택 개조 일자리를 창출해냈고 주택 임대 수익으로 공동체를 위한 다른 사업들도 진행하고 있다.
케네디 오데데는 이들 중에 단연 눈에 띈다. 그는 나이로비의 빈민 지역에서 거리 문화 스포츠 사업을 시작해, 이를 '공동체를 위한 빛나는 희망'이라는 단체로 키워냈다. 이 단체는 팬데믹 속에서 백만 명 이상의 빈민들이 서로를 돕는 매개체 역할을 했고, 다보스 세계 경제 포럼의 대안인 세계 공동체 포럼을 열고 있다.
이처럼 모든 곳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관점의 시민적 미래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관점으로 사회나 자아를 설명한다. 게다가 사회 조직들은 그런 관점이 유일한 것처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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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개인을 해석하는 관점이 실제 사회마저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우리가 처음이 아니다. 시스템 사고의 개척자인 도넬라 메도우는 25년 전 쓴 기념비적 에세이를 통해 사회의 사고방식이나 패러다임은 잘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러한 것들을 "현실의 본질에 대한 공유된 사회적 합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한 가장 깊은 형태의 신념"이라고 묘사했고, 이것이 "사회 체계의 원천"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공동체 구성원들이 세상을 보는 "주관적인 렌즈"를 통해 미국의 공동체를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가장 널리 퍼진 렌즈는 "소비자 관점의 이야기"다. 그 내용은 이렇다. 인간 개인의 역할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익 추구는 사회에 최상의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는 경쟁하고 그 안에서 선택을 한다. 각자의 선택은 그의 능력이나 정체성을 보여준다. 기업, 자선 단체, 정부 등 모든 조직과 기관은 소비자에게 이러한 선택지를 제공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이런 관점의 이야기는 앞서 말한 두 가지 암울한 미래 시나리오 중 두 번째에 해당한다. 그 끝은 부와 권력의 불평등,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다.
전체주의적 미래에선 인간을 신하로 본다. 이 "신하 관점의 이야기"에선 지도자가 모든 것을 가장 잘 안다. 그래서 우리가 갈 길을 밝혀주고 할 일을 정해주는 것은 지도자다. 지도자가 아닌 우리는 순진한 사람들이며, 중요한 사안에 대해 무지하다. 보통 눈앞에 놓인 과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그래서 각종 위기가 터져나오는 오늘날, 신하 관점의 이야기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이 안에서 정부와 사회 집단은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피라미드다. 그리고 그 꼭대기를 우월한 소수가 차지한다.
신하 관점의 이야기가 가진 결말은 이미 중국을 통해 확인됐다. 중국 정부는 중국 전역에 4억 대가 넘는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안면 인식 및 인공 지능까지 도입한 '스카이넷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이로 인해 상거래와 운전, 소셜 미디어 게시물, 비디오 게임 등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정부가 파악하게 됐다. 그리고 거대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인 '사회 신용 시스템'을 통해 보상과 처벌을 시행한다. 처벌로는 항공권 구매 거부, 인터넷 속도 감소, 애완동물 압수 등이 알려져 있다. 국립 공공 신용 정보 센터에 따르면, 2018년 말까지 중국에서 항공편 구매 거부 등의 처벌은 1750만 차례나 일어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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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상으로는 신하 관점의 이야기가 소비자 관점보다 먼저 등장했다. 과거 수세기 동안 지배적인 이야기였고, 적어도 1600년대부터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 대전 과정까지 인간과 사회를 설명하는 이야기였다. 소비자 관점의 이야기는 신하 관점의 이야기가 붕괴된 뒤 출현해, 지난 70년 동안 우리 사회와 인간을 설명해왔다.
소비자 관점은 신하 관점보다 자원과 부를 폭넓게 분배하고, 귀족제를 실력으로 대체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소비자 관점의 이야기도 내재된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중이다.
사회에 있는 불평등은 모든 이들에게 위협이 된다. 심지어 가장 부유한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도 소비자 관점의 이야기는 우리가 더 경쟁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태학적으로 무너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소비가 우리의 정체성과 지위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또한 사람들이 외로움과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데도, 인간은 누구나 혼자라고 말한다.
미래의 시민들
신하 관점의 이야기가 무너지고 소비자 관점의 이야기가 부상한 것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비자 이야기가 신하 이야기를 대체한 것처럼, 시민 관점의 이야기도 소비자 관점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으로 살아가는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현재 주어진 것을 유일한 선택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소비자들처럼 선택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냥 침묵해서도 안 된다. 시민이라면 그저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제안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믿음의 초석을 다져야 한다. 현재 위치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며 서로에게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사회에 개입해야 한다. 선구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버크민스터 풀러는 "현실을 바꾸려면 기존의 것을 쓸모 없게 만드는 새 모델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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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관점의 미래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유지되던 믿음에 균열이 생기면, 불안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미래가 불확실질 수록 기존의 것에 더 크게 집착할 수도 있다. 그게 익숙함의 효과다.
하지만 우리가 이 점을 인식한다면, 기존의 것을 무너뜨리고 보다 부드럽게 새로운 것으로 옮겨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은 분노가 되고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잃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우리 사회가 힘겨워지면, 사람들은 지도자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사회에선 반과학적 신념이나 음모론 같은 것들이 기승을 부린다. 그러면 지도자들도 대중을 믿지 못하고, 대중을 배제한 채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려는 헛된 시도를 하는 악순환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리더십을 정의하는 것이다. 시민적 미래를 건설하는 지도자들은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질문과 어려움을 대중과 공유한다. 그들은 대중이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이른바 "안전한 불확실성"을 키워내는 것이다. 그들은 함께 일함으로써 가장 좋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확신을 대중에게 심어준다. 철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아드리엔 마리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특별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필요합니다."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우리는 인간을 시민으로 생각하고, 시민적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 시민이란 주변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고, 지역 사회와 사회 집단과의 의미 있는 관계를 맺으며, 지금과 다르면서 더 나은 삶을 상상할 수 있고, 돌보고 책임지고, 다른 이들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사회의 지도자들 또한 대중을 시민으로 인식하고 그렇게 대우해야 한다.
우리가 시민적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면, 경제적 불안정과 생태계의 재난, 공중 보건의 위기, 정치적 양극화 등과 같은 다양한 어려움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함께 미래를 만들고,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