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이자 책 애호가인 와히다 아미리는 법학을 전공한 저항운동가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권력을 장악했을 때, 더이상 도서관에서 일할 수 없게 된 그녀는 카불의 거리로 나갔다. 그녀가 참여한 시위에는 많은 여성들이 함께 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일할 권리와 교육받을 권리를 지지해달라"고 국제 사회에 호소했다.
탈레반이 시위를 금지한 이후, 아미리는 여성들을 모아 독서와 토론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그녀가 일하던 도서관은 2017년부터 운영됐다. 그녀는 책이 없다면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이라며 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세상은 우리를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이 파괴되면서, 우리는 시위를 통해 희망을 되살리고 정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책을 읽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로힐라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중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을 배제하면서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됐다. 과학과 영어를 좋아한다는 그녀는 매일 아침 등교를 하는 그녀의 남자 형제들처럼 학교에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로힐라에 따르면, 학교를 갈 수 없게 된 또래 여자 친구들 중에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녀는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도 배움을 계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녀의 꿈은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가서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이제 세상과 단절되었고, 공부를 하겠다는 제 꿈은 헛된 꿈이 된것 같습니다. 국제사회가 우리를 잊지 않고, 우리의 수년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헤라는 지금도 산부인과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 의료 서비스가 중단된 지역을 돌아다니며 긴급 치료를 제공하고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을 만나야 한다.
그녀는 이전에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도왔지만, 탈레반의 권력 장악 이후 그 일은 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희망이 줄어들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20년 전의 그들이 아니며, 어느 정도는 자신의 권리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다만 고민이 있다면 여자 아이들이 영원히 학교가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전직 국회의원이자 산부인과 의사인 로샤낙 와닥은 25년 이상 여성들을 위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심지어 그녀의 고향 마이단 와닥을 탈레반이 처음 장악했던 당시에도, 그녀는 유일한 여성 의사로 일을 했었다.
2001년 탈레반이 몰락한 후, 그녀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녀의 고향은 15년 동안 탈레반의 지배를 받았고, 다른 시골 지역처럼 나토군과의 치열한 전투를 경험했다.
그녀는 BBC에 탈레반의 정권 이양과 종전이 '꿈'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패한 사람들을 권력에서 몰아내는 이 날을 기다렸다"고 했다. 최근 그녀는 여학생이 다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탈레반과 맞서고 있다.
*나의 유일한 바람은 아프가니스탄이 정부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지난 40년간 국가를 망친 그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여성 인권 운동가인 호다 카모시는 생리에 대한 개방적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내 학교에서 "월경은 금기가 아니다"라는 인식 개선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란으로 온 아프가니스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어머니는 보수적인 친척들에 굴하지 않고 그녀를 교육시켰다.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인 카무쉬는 2015년 라디오 진행자가 됐다. 당시 그녀는 여성에 대해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알리는 한편, 마을 여성들을 위해 읽기와 쓰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녀는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이후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된 여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어두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2021년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빼앗은 사람들의 채찍과 총탄에 맞서 권리를 주장했던 해입니다. 저는 올해를 희망의 해로 부르고자 합니다.
이민 및 민법 전문가인 레하나 포팔은 현재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고국에 남겨진 아프가니스탄 통역사와 번역가, 관계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포팔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변호사로 개업한 최초의 아프가니스탄 여성이다. 그녀는 5살 때 난민 신분으로 영국에 와서 국제 정치와 법률을 공부했고 지금은 인권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2019년 그녀는 올해의 여성 변호사(Barrister of the Year at the Inspirational Women in Law Awards)로 선정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과 소녀들이 두려움 없이 교육과 일과 삶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경찰이 된 지 3년 후, 모메나 이브라히미는 선배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 그녀는 당시 아프가니스탄 경찰 사회에 있는 다른 학대 정황들을 포함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기로 결심했다.
이후로 그녀는 협박에 굴하지 않고 자신 및 또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싸워왔다. 그녀는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믿었고 비록 목숨을 잃더라도 그 사람이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BBC에 말했다.
이브라히미는 지난 8월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뒤 수천 명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과 함께 영국으로 대피했다.
*몇 년 동안 투쟁하고, 공부하고, 경력을 쌓았던 모든 여성들이 일터로 복귀하여 국민의 의지에 반해 권력을 행사하는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합니다.
바시라 페이검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일하는 것이 몹시 어려운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난 8년 동안 성 평등과 성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활동해왔다.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젠더와 성 인지에 관한 워크숍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학대를 당한 성소수자 커뮤니티 구성원들에게 조언과 의학적 치료를 위한 재정을 제공했다. 그들은 또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성소수자들이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활동도 해왔다.
현재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그녀는 아프가니스탄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한 인식 개선을 지원하고, 그들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종교와 젠더, 성적 성향을 따질 필요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노력을 기울여 사고 체계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라다 악바르의 시각 예술 작품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억압을 다룬다. 그녀는 사회 내 여성의 존재를 드러내고 여성을 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을 사용해 왔다
그녀는 2019년부터 매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슈퍼우먼(Abarzanan)' 전시회를 열어 자국 역사에서 여성이 보여준 중추적 역할을 기념하고 있다. 최근까지 그녀는 카불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여성 역사 박물관 개소를 추진중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이 여성의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가치를 무시하는 사회 제도와 법을 꼬집는데 기여한다고 믿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국민들은 수십 년 동안 극단주의자들 및 세계 지도자들로부터 학대와 침해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우리는 진보적인 국가 건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시금 자유롭고 번영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6년간의 미국 망명 생활 후, 마부바 세라즈는 2003년 모국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그녀는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위한 여러 단체들을 공동 설립하고 이끌어 왔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운동의 초석이 된 "아프가니스탄 여성 네트워크"도 그중 하나다.
그녀는 가정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아이들의 건강과 교육을 위해 싸우고, 부패에 맞서는 데 삶을 바쳐왔다. 그리고 2021년 8월 탈레반이 정권을 잡았을 때도 그녀는 국민들과 함께 하며 국내외 언론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목소리를 용기 있게 전했다.
타임지는 그녀를 '2021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했다.
*평화는 조국을 위한 저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나의 자매들과 딸들의 눈에 서리는 공포를 보고 싶지 않아요. 계속 이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알리야 카지미는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기 전까지 인권과 교육에 헌신해왔다. 그녀는 적십자에서 3년간 자원봉사로 일했고, 여성들을 위해 제과제빵 사업을 시작했으며, 2020년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대학에서 가르쳤고, 교수가 되는 것을 꿈꿨다.
2021년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갔고, 현재는 박사과정 공부를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BBC에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 특히 의상과 관련되 자유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로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저의 유일한 바람은 평화입니다. 평화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살리마 마자리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3명의 여성 지자체장 중 한명이다. 올해 그녀는 탈레반과 최전선에서 싸우는 친정부 민병대의 지도자로서 주목을 받았다.
난민이었던 마자리는 이란에서 학위를 받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왔다. 2018년에는 발흐주 샤킨트 지역의 자치단체장이 되었고, 100여 명의 탈레반 반군의 항복을 협상으로 이끌어냈다. 그녀가 이끌었던 지역은 2021년 탈레반에 거세게 저항했고, 카불 함락 전까지 점령되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였다.
그녀는 한때 탈레반에 생포된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이후 미국으로 탈출했다.
*저는 여성, 하자라족, 시아파, 페르시아어를 쓰는 사람이라는 저의 정체성이 조국에서 범죄가 되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교사인 실라 엔산도스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여성과 소녀들이 교육받을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다. 그녀는 종교학 학위를 가지고 있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그녀는 정치와 시민사회 영역에서 여성의 역할을 늘리는 데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아프가니스탄 언론에 출연해 여성의 일할 권리와 배울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 엔산도스트는 여성에 대한 억압에 항의하기 위해, 수의처럼 보이는 하얀색 천을 두르고 카불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했다.
교사로 일하면서도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여러 여성 단체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해왔다.
*저는 여성들이 정치, 사회, 경제 문제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싶어요. 그리고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가 보장되고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불평등은 근절되기를 소망합니다.
휠체어 농구 국가대표팀 주장이자 장애 여성 인권 운동가로 유명한 닐로파르 바야트는 탈레반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했다. 그녀와 휠체어 선수였던 남편 라미쉬는 둘 다 국제적십자사 직원이었다.
그녀가 2살이었을 때 로켓탄이 그녀의 가족을 덮쳤다. 이 사고로 그녀의 남동생이 죽고 그녀는 척추를 다쳤다. 바야트는 카불 한복판에 있는 야외 경기장에서 자신의 첫 번째 경기를 펼쳤고, 이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스포츠 역사의 전환점이 됐다. 그녀는 고국을 떠나는 난민들의 목소리가 되었고,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위한 협회를 설립했다.
바야트의 소망은 다시 농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끝나서, 우리가 전쟁의 대가를 1초라도 더 치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국민들 얼굴에서 진짜 미소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랄의 가족은 그녀가 여성 인권 운동에 참여하거나 시민 사회 단체의 일원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가 여성으로서 집을 나가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2004년부터 마랄은 지역 여성들을 모아 그들의 권리를 깨닫게 하고, 일을 통해 경제적 독립을 얻도록 돕고 있다.
그녀는 또한 농촌 지역의 가정 폭력 피해 여성들과 함께 하며, 피난처를 제공하고 사회적 정의 회복을 돕고 있다.
*저는 우리가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했던 모든 것을 되새기며 싸움을 지속할 용기를 되찾았습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래는 평화와 인류애를 바라는 이들의 몫입니다.
쇼구파 사피는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오케스트라인 조흐라(Zohra)의 지휘자다. 그녀는 13~ 20세 나이의 음악가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데, 단원 중에는 가난한 가정 출신이거나 고아도 있다.
페르시아 음악 여신의 이름을 딴 조흐라는 2014년부터 국내외 무대에서 아프가니스탄 전통음악과 서양 고전음악을 연주해 오고 있다.
탈레반은 사피가 한때 이용하던 아프가니스탄 국립 음악원을 폐쇄했다. 악기도 챙기지 못하고 도하로 탈출한 그녀와 몇몇 동료들은 다시 연주를 함께 할 수 있기를 갈망하고 있다.
*희망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저는 제 지휘봉이 아프가니스탄에 희망과 빛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뛰어난 음악가인 '라즈마'는 보통 남성들이 주로 연주하는 악기를 연주한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과 예술을 전공한 그녀는 아프가니스탄 음악가들은 물론 국제적으로 저명한 예술가들과 공연했다.
그녀는 음악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새로운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에 따르면, 올해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는 "가장 어두운 한 해"였다. 더 이상 다른 사람과 연주를 할 수 없게 된 뮤지션으로서, 올해는 더욱 더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탈레반이 통치한 1996~2001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음악이 금지됐다. 라즈마는 그때의 역사가 되풀이될까 걱정하고 있다.
*음악과 노래가 없는 사회를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이 슬퍼집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잠재된 목소리가 궐기의 외침으로 변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사 및 편집: 발레리아 페라소, 아멜리아 버틀리, 라라 오웬, 조지나 피어스, 가운 카무쉬, 하니야 알리, 마크 쉬아; BBC 올해의 여성 100인 에디터: 클레어 윌리엄스; 프로덕션: 폴 사전즈, 필리파 조이, 아나 루시아 곤잘레스; 개발: 아우 위댜닝쉬 이드자자, 알렉산더 이바노프; 디자인: 데비 로이쥬, 조 바털모; 일러스트: 질라 다스말치
사진 출처: Fadil Berisha, Gerwin Polu/Talamua Media, Gregg DeGuire/Getty Images, Netflix, Manny Jefferson, University College London (UCL), Zuno Photography, Brian Mwando, S.H. Raihan, CAMGEW, Ferhat Elik, Chloé Desnoyers, Reuters, Boudewijn Bollmann, Imran Karim Khattak/RedOn Films, Patrick Dowse, Kate Warren, Sherridon Poyer, Fondo Semillas, Magnificent Lenses Limited, Darcy Hemley, Ray Ryan Photography Tuam, Carla Policella/Ministry of Women, Gender and Diversity (Argentina), Matías Salazar, Acumen Pictures, Mercia Windwaai, Carlos Orsi/Questão de Ciência, Yuriy Ogarkov, Setiz/@setiz, Made Antarawan, Peter Hurley, Jason Bell, University of Sheffield Hallam, Caroline Mardok, Emad Mankusa, David M. Benett/Getty, East West Institute Flickr Gallery, Rashed Lovaan, Abdullah Rafiq, RFH, Jenny Lewis, Ram Parkash Studio, Oslo Freedom Forum, Kiana Hayeri/Malala Fund, Fatima Hasani, Nasrin Raofi, Mohammad Anwar Danishyar, Sophie Sheinwald, Payez Jahanbeen, James Bat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