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비극으로 이어진 인도의 '완전 봉쇄' 조치

비공식 노동자들은 인도 대도시 경제의 버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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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비공식 노동자들은 인도 대도시 경제의 버팀목이다
    • 기자, 수티크 비스와스
    • 기자, BBC 인도 특파원

구탐 랄 미나가 내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석공으로 일하던 구자라트에서 자신의 집이 있는 북쪽 라자스탄의 마을로 갓 돌아온 상태였다.

폭염 속에서 미나는 샌들을 신고 쇄석이 깔린 도로를 걸었다. 그는 물과 비스킷을 먹으며 버텼다고 한다. 구자라트에서 미나는 하루에 최대 400루피(약 6500원)를 벌었고 대부분의 수입을 집에 보냈다. 인도 정부가 코로나19의 전파를 막기 위해 지난 24일 21일간의 봉쇄령을 내리자 일자리가 사라졌다. 모든 교통수단이 폐쇄되자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었어요. 달리 무슨 방도가 있었겠습니까? 돈도 없었고 먹을 것도 거의 없었어요." 미나는 내게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이는 단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도 전체에서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봉쇄된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걸어서 이동하고 있다.

동영상 설명, 인도의 봉쇄 조치로 대규모 이주가 발생하면서 안타까운 상황들이 이어졌다

이 비공식적 노동자들은 대도시 경제의 버팀목이었다. 이들은 도시에서 집을 짓고 요리를 하고,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배달을 하고, 이발ㆍ미용을 하고, 자동차를 만들고, 변기를 뚫고, 신문을 배달했다. 1억 명가량으로 추산되는 이들은 고향의 가난을 탈출해 도시로 왔고, 보다 나은 삶을 꿈꾸며 도시의 빈민가에서 조악한 환경에서 산다.

지난주 발효된 봉쇄령은 이들을 하루 새 난민으로 만들었다. 일하던 곳이 폐쇄됐고 임금을 주던 사람들이 사라졌다.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이들은 한데 모여 하루 24시간 걷는 여정을 시작했다. 싸구려 인조가죽으로 된 가방이나 옷가방에 변변찮은 소지품(대부분 음식, 물, 옷이다)을 담고 다녔다. 젊은 남성들은 낡은 백팩을 메고 다녔다. 어린이가 걷기에 지치면 부모들이 어깨에 얹고 움직였다.

이들은 햇볕 아래서도 걸었고 달빛 아래서도 걸었다. 대부분은 이제 돈이 없으며 굶어 죽을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한 일간지는 "인도가 걸어서 집으로 향하고 있다"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이 엑소더스는 1947년의 분단 당시 난민들이 겪었던 위기를 연상케 했다. 인도가 파키스탄과 분단된 후 수백만의 난민들이 걸어서 동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과 서파키스탄으로 이주했다.

이주 노동자들은 고향에서 더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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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수십만 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들은 굶주림과 피로와 싸우며 어떻게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고향의 집으로 돌아가면 먹을 게 있고 가족의 보살핌이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전염병을 막기 위한 봉쇄가 이제 인도적 위기로 뒤바뀌고 있는 것이다.

봉쇄로 인한 난민들 중에는 90세의 여성 카조디도 있다. 그의 가족은 델리의 교외에 있는 거리 신호등 옆에서 싸구려 장난감을 팔았다.

카조디는 가족들과 함께 약 100km가량 떨어진 고향 라자스탄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족들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과자와 전통 손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살릭 아메드 기자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지팡이를 짚고서 3시간째 걷고 있었다. 걸어서 대도시를 빠져나오는 참담한 상황도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진 못했다. "교통편이 있었다면 표를 끊어서 고향으로 갔을 거라고 말하더군요." 아메드는 내게 말했다.

거리 위에 선 이들 중에는 아버지와 함께 700km의 도보 여정을 하고 있는 다섯 살배기 소년도 있었다. 건설 노동자인 아버지와 함께 델리에서 인도 중부에 있는 집까지 걷는 중이다. "해가 지면 멈춰서 잠을 잘 겁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바르카 두트 기자에게 말했다. 또 다른 여성은 남편과 두 살배기 딸과 걷고 있었다. 그의 가방에는 음식과 옷, 물이 들어있었다. "머무를 장소는 있었지만 음식을 살 돈은 없었어요." 그는 말했다.

동영상 설명, 인도가 코로나19로 봉쇄령을 내리자 수백만의 인도인들이 식량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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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의 라즈니쉬도 있다.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다가 250km를 걸어 고향으로 향하고 있는 청년이다. 그는 걸어서 고향까지 가는 데 나흘이 걸리리라고 여겼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릴 덮치기 전에 걷다가 죽게 될 거예요." 그는 두트 기자에게 말했다.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지난주 39세의 남성이 델리에서 마드야 프라데시까지 300km를 걷다 가슴 통증과 피로를 호소하며 사망했다. 구자라트의 병원에서 퇴원해 걸어서 집으로 향하던 한 62세 남성은 집 바깥에서 쓰러진 후 사망했다.

구자라트에서 라자스탄을 향해 이동하다 주 경계에서 차단 당한 4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깜깜한 고속도로에서 트럭에 치여 죽은 일도 있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지역 정부들은 교통편과 쉼터,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90세의 카조디 데비가 델리에서 고향까지 걸어가고 있다

사진 출처, SALIK AHMED/OUTL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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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을 고향으로 빨리 보내기 위한 노력은 또 다른 악몽으로 변해버렸다. 델리의 대형 버스 터미널에 버스가 등장하자 수십만 명이 몰려들었다.

아르빈드 케즈리왈 델리 주총리는 노동자들에게 도시를 떠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대규모의 군집 속에 있을 경우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주정부가 집의 임대료를 내줄 것이며 델리 내에 568개소의 식량 지급 센터를 열겠다고 밝혔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봉쇄 조치로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어려움을 초래한 데" 대해 사과했으나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강력한 조치가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이유가 무엇이든 모디 총리와 주정부들은 이러한 엑소더스를 예상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른 듯하다.

모디 총리는 외국의 인도 이주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매우 발빠르게 대응을 했다. 특별기를 통해 수백 명이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자국의 노동자들의 곤경에 대해서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위기 상황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만일 외국에 있는 인도의 학생, 관광객, 순례자들이 돌아가길 원한다면 대도시에 있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겠죠. 한쪽은 비행기를 보내 데려오면서 다른 쪽은 걸어서 집에 가도록 둘 순 없습니다." 인도의 언론인 쉐커 굽타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위기 상황에서 이런 대규모 이주는 과거에도 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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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이자 인도 이주의 역사에 대한 책을 쓴 바 있는 친마이 툰베는 도시가 가난한 이민자에게 경제적 안정감을 제공하지만 사회적 안정감은 그들의 고향에 있다고 말한다. 고향에서는 식량과 주거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사라지자 사회적 안정감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는 겁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위기 상황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대이동을 하는 경우는 역사에 그 전례가 많다. 2005년 뭄바이에서 홍수가 나자 많은 노동자들이 도시를 떠났다. 1918년 스페인 독감 때는 뭄바이(당시엔 봄베이)의 인구 절반가량(대부분 이주민들)이 도시를 떠났다.

1994년 인도 서부에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는 "구자라트의 산업 도시 수라트에서 수십만이 성경의 엑소더스를 방불케 하는 규모로 도피했다"고 역사가 프랭크 스노든은 회고한다.

1896년의 전염병 사태 때도 봄베이의 인구 절반이 도시를 버리고 도망쳤다. 당시 영국 식민지배자들이 실시한 가혹한 조치는 "정밀 수술 도구보다는 해머에 가까웠다"고 스노든 박사는 썼다. 그 조치로 봄베이는 전염병을 넘기지만 "도망친 거주자들은 전염병을 갖고 있었고 그리하여 전염병을 더 확산시켰다"고 한다.

100년도 더 지난 오늘날 인도는 똑같은 공포에 휩싸였다. 수십만의 이주민들은 결국은 걸어서든 만원 버스를 통해서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십중팔구는 연로한 부모들이 있는 고향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의 9개 주 내 56개구 출신이 남성 이주 노동자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귀향하고 나면 이곳들이 또 다른 진앙지가 될 수 있다.

노동자들의 대거 이주가 전염병을 전국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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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의 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인 파르타 무코파디야이는 특히 민감한 이들 56개구에 대해 귀향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바이러스 검사를 실시하고 감염된 이들을 현지 시설에 격리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인도는 벅차지만 예상 가능한 난관을 맞닥뜨리고 있다. 봉쇄를 강제함과 동시에 집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스노든 박사는 봉쇄 전략의 경제적ㆍ생활적 결과가 세심하게 관리되는지, 그리고 국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지가 이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매우 심각한 난관과 사회적 불안, 저항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요." 인도는 이미 봉쇄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을 위해 26조원 규모의 구제책을 발표했다.

앞으로 며칠이 각 주 정부가 노동자들을 고향으로 이동시키거나 도시 안에서 식량과 돈을 제공하며 지킬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지을 것이다. "사람들은 봉쇄로 인한 각종 상황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잊고 있어요. 수백만 명이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 말입니다." 타크샤실라 연구소의 니틴 파이는 말한다.

"여기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