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잃었습니다'...12.29 여객기 참사로 혼자가 된 이들의 이야기

    • 기자, 문준아
    • 기자, BBC 코리아

박근우(22) 씨의 시간은 12월 29일에 멈춰있다. 그는 그날 어머니와의 메시지를 지우지 못한다.

"새가 날개에 껴서 착륙 못 하는 중. 유언해야 하나?"

모처럼 부부동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중, 박 씨의 어머니가 비행기 안에서 보낸 문자였다.

평소 유쾌한 성격이었던 어머니의 문자를 박 씨는 농담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몰랐다. 문자를 받고 불과 2분 후, 부모님이 타고 있던 제주항공 여객기는 폭발했다.

12.29 여객기 참사로 박 씨는 부모님을 잃었다. 외동아들인 그는 이제 혼자가 됐다.

무안 공항에서 집으로 들어온 첫날, 그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주저앉아 울었다.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고 일상을 나누던 공간이 낯설 만큼 적막해져 있었다.

"가장 큰 변화요? 이제 가족이 없어요. 저 혼자밖에 없다는 게, 그게 제일 많이 변했어요."

사고 이후 50일, 남겨진 유가족들의 삶

12.29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50일이 넘었다. 그동안 유가족들은 무안 공항에서 함께 설날을 보내고, 49재를 지내며 먼저 떠나보낸 가족들을 추모했다. 또 전국 지역별로 소모임을 통해 만나 서로를 챙겨주고, 유가족 총회를 열어 앞으로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박 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다들 믿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서로를 보며 힘을 얻고 있다"며 "유가족끼리 뭉치고 도와주면서 또 다른 하나의 가족이 됐다"고 전했다.

유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참사 이후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박한신 유가족협회 대표는 "현장에 그대로 이동하지 않고 머물러 계신 분, 생업에서 일을 하고 계신 분, 그리고 자신과 같이 유가족은 협의회 대표단에 참여해 향후 대응 계획을 논의하고 수립하는 분도 있다"며 유가족 근황을 전했다.

대학생인 박근우 씨는 부모님이 운영하던 사업의 폐업 절차를 알아보고, 행정 업무를 처리하며 남겨진 집안을 정리하고 있다. 3월 개강을 앞두고 있는 그는 수강신청을 마치고 학교 갈 준비도 하고 있다. 혼자 장을 보고, 유튜브 요리 영상을 보면서 서툴지만 직접 밥을 차려 먹으며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 가고 있다.

"이제 모든 결정을 제가 내려야죠. 물어볼 사람들이야 있지만 (부모님처럼) 제일 속을 터놓고 물어볼 분들이 안 계시잖아요. 그런 게 좀 걱정이고 부담이 돼요. 그래도 남들 다 하는 건데요. 저라고 못하겠어요. 해야죠."

한편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는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하며 지난달 27일 예비보고서를 공개했다. 사고 원인 규명은 1년에서 1년 6개월가량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전남경찰청은 지난 14일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를 소환 조사 했으며, 앞서 항공사 관계자, 한국공항공사, 국토교통부 관계자 등 약 20명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바 있다. 사고 원인이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아 현재까지 입건 조치된 사람은 없다.

'아직 무안공항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참사 이후, 일부 온라인에서는 유가족들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유가족들이 받는 지원금에 대해서 '세금으로 먹고산다', '돈을 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조롱이 이어졌다.

박 씨는 이에 대해 "설령 사고 보상금이 나온다 해도, 그게 우리 가족들의 목숨값인데 그 돈을 펑펑 쓰고 싶은 마음이나 들까요?"라며 반박했다.

그는 최근 유가족들에게 긴급생계비 300만 원이 지급됐다는 기사가 나간 후, 악성 댓글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해당 생계비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시민들이 모은 성금으로 마련된 것이며, 정부 예산이 투입된 지원금이 아니다.

박 씨는 "유가족들이 요구한 것이 아니라 긴급한 생활 지원을 위해 제공된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유가족들이 돈을 목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억울한 죽음이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 무안에 남아 있다고 했다.

"왜 무안에 나와 있는지 아십니까? 잊혀질까 봐 두렵습니다. 모든 게 유야무야되고, 흐지부지돼서, 내가 잃은 소중한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으로 남을까 봐… 그게 싫고 두려워서, 생업을 제쳐두고 이곳에 남아 있는 겁니다"

한편 박 씨는 가족을 잃은 깊은 슬픔 속에서도 지역 사회와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지원에 힘입어 조금씩 회복의 길을 걷고 있다며 "온 사방이 감사한 것 투성"이라고 전했다.

한겨울 추위 속에서 현장을 지킨 소방관과 경찰, 가족들에게 1대1로 붙어 지원한 공무원, 전국 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 등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참사의 상처는 여전히 깊지만, 그는 그 과정에서 받은 온기를 잊지 않겠다고 했다.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부모님을 온전히 모실 수 있었다며, 이는 앞으로 자신이 갚아 나가야 할 빚이라고 말했다.

혼자 남은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박근우 씨는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금전적 지원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고에서는 가족 단위로 여행을 떠났다가 함께 희생된 경우가 많아, 남겨진 이들 중에는 혼자가 된 사람들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저는 성인이니까 어떻게든 혼자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겠죠. 그런데 미성년 자녀가 남겨진 집, 중증 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는 경우, 나이 많은 어르신이 홀로 남겨진 경우도 있어요. 이런 분들은 혼자 힘으로 버티기가 어렵습니다."

그는 정부와 지자체가 긴급 생계비 지원을 넘어 실질적인 돌봄과 자립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아이들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도움이 필요한 유가족에게 심리 상담과 생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8일 전라남도는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을 위한 의료지원을 제공하며 심리상담 등을 포함한 포괄적인 의료 지원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의료지원은 지난 15일 공식적으로 종료됐지만, 전남도는 유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지원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