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들에게 정의를 찾아주고자 무덤을 파헤치는 사람들

펠리자도 버르고의 묘비

사진 출처, BBC/TIM MANSEL

사진 설명, 펠리자도 버르고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 선포한 ‘마약과의 전쟁’에서 사망한 수천 명 중 한 명이다
    • 기자, 린다 프레슬리
    • 기자, BBC News
    • Reporting from, 마닐라

필리핀 수도 마닐라 북부 묘지에서 플라비 빌라누에바 신부를 만날 수 있었다. 주머니엔 성수가 담긴 플라스틱병을 넣고, 한 손엔 성경을 든 채 플라비 신부는 아들의 무덤에서 슬퍼하는 한 어머니와 함께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망치로 단단히 봉인됐던 무덤이 열리고, 그 안에 잠들어 있던 시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2019년 8월 18일, 27세의 나이로 총살된 펠리자도 버르고이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버르고의 유해를 검은색 시신 운반용 가방에 넣었다. 지퍼를 닫기 전, 플라비 신부는 이미 뼈만 남은 유해가 모두 옮겨졌는지, 남겨진 건 없는지 다시 한번 무덤 안을 확인했다. 아주 작은 뼛조각이라도 그날의 총격에 대한 비밀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에린다는 아들의 유해가 무언가 말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과 같은 유가족 수천 명이 정의를 되찾을 수 있길 바란다. 필리핀의 무자비한 ‘마약과의 전쟁’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선두엔 플라비 신부와 법의학 병리학자 라켈 포춘 박사가 있다. 이들은 힘을 모아 언젠가 이 죽음들에 대한 사법 수사가 시작됐을 때 사용될 수 있는 증거를 수집한다.

현재 이들의 죽음에 대해선 거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필리핀 정부는 2016년 마약 관련 살인에 대해 우려를 표한 ‘국제형사재판소(ICC)’ 조사관들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플라비 신부나 포춘 박사를 단념시키진 못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찾은 증거가 언젠가 ICC에서 이용되길 바란다.

2021년 7월부터 희생자 90여 명의 유해를 부검해온 포춘 박사는 사망 진단서엔 “자연사”했으나 총알 자국이 선명한 희생자들, 사망 원인과는 관련 없는 내용이 “복사 붙여넣기” 식으로 적혀진 보고서 등 여러 의문점을 발견했다.

중간선

필리핀 당국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선거에서 승리한 2016년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한 이후 경찰과 “알려지지 않은 공격자”로부터 총살된 이들이 6252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인권 단체들은 그 수가 실제로는 수만 명에 달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현지 경찰은 이러한 희생자들은 마약 거물 혹은 거래자들이며, 총탄이 오가는 과정에서 “자기방어” 차원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유가족들이 자신의 아들, 형제, 남편은 그저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던 죄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은 국제 사회의 엄청난 비난을 받으며 논란이 됐으나, 필리핀 내부에선 지지하는 이들이 있었다. 필리핀엔 마약 사용자가 수백만 명에 달하며, 현지에선 ‘샤부’라고 부르는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중독이 많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시위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2022년 물러난 두테르테 전 대통령에게 마약 관련 살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후임자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현 필리핀 대통령은 2022년 취임하며 마약 문제에 대해 덜 폭력적이며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겠다고 약속했다.

호세 도미닉 클라바노 법무부 차관보는 “우리는 마약 사용자 한 명 한 명을 추적하는 대신 밀매 범죄자들을 대규모로 잡아들였다. 왜냐하면 대통령은 이게 (공중) 보건과 중독의 문제로 바라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필리핀대학의 ‘다하스 프로젝트’는 현 대통령의 집권 첫해 마약 관련 죽음은 342건에 이른다면서, 이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집권 마지막 해보다 40건 더 많은 수치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살해된 이들의 약 40%가 소규모 사용자 혹은 거래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클라바노 차관부는 “현 정부는 (소규모 사용자 및 거래자 살해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경찰의 학대 사실은 인정했다.

한편 다시 묘지로 돌아와서, 플라비 신부는 시신 2구를 추가로 더 꺼냈다.

버르고와 마찬가지로 2019년 총에 맞아 사망한 남성 2명의 유해다. 슬픔을 가누지 못한 유가족 한 명은 결국 다리가 풀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플라비 신부는 낮은 목소리로 “매우 충격적”이라면서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기에 고통스럽다. 마음이 무겁고 화가 난다”고 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 행정부는 마약 거래자, 마약 거물, 이들을 비호하는 이들을 뒤쫓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대부분 남성인 이 희생자들은 그저 가난한 지역 출신 주민들이라고 말한다.

플라비 신부

사진 출처, BBC/TIM MANSEL

사진 설명, ‘마약과의 전쟁’에서 사망한 이들의 유가족을 위로하는 플라비 신부

많은 희생자들이 대여료를 내고 사용하는 묘지에 묻혀있다. 만약 유가족들이 대여비를 제때 내지 못한다면 유해는 공동묘지에 버려지게 된다.

플라비 신부는 교구민들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그래서 마약과의 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의 일환으로 플라비 신부는 제대로 된 발굴 및 화장 의식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축복 속에서 가족들에게 유골을 돌려주는 의식도 진행하고 있다.

시신 3구를 실은 운구차는 거리의 어린아이들과 닭들을 피해 거대한 묘지를 빠져나갔다.

이 시신 3구는 먼저 들려야 할 곳이 있다.

중간선

포춘 박사는 시신을 인도받고자 필리핀 종합병원의 영안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인구가 약 1억 명인 필리핀엔 법의학 병리학자가 단 2명이다. 포춘 박사가 바로 그 중 한 명이다.

포춘 박사가 플라비 신부를 만난 건 마약과의 전쟁으로 인한 살해가 시작됐을 때였다.

포춘 박사는 “플라비 신부가 시신을 발굴하겠다는 계획을 들려줬다. 그래서 나도 끼어들어 시신을 내게 보여달라 했다. 그때 이후로 플라비 신부는 시신을 이곳으로 보낸다”고 말했다.

“제가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은 총알 자국입니다. 총알은 피해자와 총, 총격범을 연결할 증거이거든요.”

포춘 박사

사진 출처, BBC/TIM MANSEL

사진 설명, 필리핀의 ‘죽은 자들을 위한 의사’인 라켈 포춘 박사

포춘 박사는 지금까지 시신에서 회수한 모든 총알을 따로 보관하고 있다. 만약 필리핀 법정에서 해당 사건들이 다뤄지지 않을 경우, 포춘 박사는 ICC가 나서 자신이 꼼꼼하게 보관하고 기록한 보고서 및 총알들을 살펴봐 주기를 바란다.

“저는 언젠가 우리가 정의를 실현할 수 있길 바랍니다.”

영안실의 더 안쪽에 마련된 곳에서 포춘 박사는 최근 플라비 신부가 넘겨주고 간 청년의 유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가방의 지퍼가 열리고 이리저리 뒤섞인 뼈가 드러났다. 일부 뼈엔 아직 부드러운 조직이 붙어있었다. 포춘 박사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포춘 박사는 검은색 긴 머리카락을 치우며 “벌써 두개골에 골절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총알 자국처럼 보이네요. 이 청년의 머리 오른쪽에 총알구멍이 나 있는 듯합니다.”

이후 포춘 박사는 시신 가방에서 흰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로 보이는 듯한 옷도 꺼냈다.

“가족들이 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 가족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잘 보내주고자 정장을 입힙니다. 살아있을 땐 입지도 않았던 옷이죠.”

“보시다시피 치아 상태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즉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제일 가난한 이들이 죽임당했다는 거죠. 이들이 한 때 살아 있는 사람이었으며,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포춘 박사는 망자의 개인적 물품은 유가족들에게 돌려주고자 한다. 그리고 때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 나온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두테르테 대선 운동을 지지하는 플라스틱 팔찌가 2차례 나온 적 있습니다. 그중 한 남성의 남겨진 아내의 말에 따르면 두테르테 지지자였던 남편은 자신이 이런 걸 착용하면 안전하리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포춘 박사의 부검 장면

사진 출처, BBC/TIM MANSEL

사진 설명, 포춘 박사는 법의학이 진실을 밝혀낸다고 말했다

이후 포춘 박사는 다리, 팔, 갈비뼈, 두개골 등을 들어 올려 커다란 은쟁반 위에 두었다. 영안실 직원들이 이 뼈를 세척한 뒤 더 자세한 조사를 위해 해부학적 위치에 맞게 나무 테이블 위에 눕혀 둘 예정이다.

포춘 박사가 법 개정을 위해 로비 활동을 벌이고 있으나, 필리핀에선 폭력이 동원된 살인 사건이라 할지라도 부검이 무조건 실시되는 건 아니다.

“법의학은 진실을 밝혀내는 학문입니다. 그리고 아마 그게 문제겠죠. 많은 필리핀인들은 진실이 밝혀지길 원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사건을 담당하는 건 경찰이다.

“경찰이 범죄 현장을 수사하고, 시신을 검사하고, 범죄 수사 실험실도 사용합니다. 그러니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경찰이 죽이고 경찰이 수사하는 꼴입니다.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도 혐의를 벗는 거죠.”

2018년까지 경찰청장이었던 로널드 델라 로사 장군을 포함한 두테르테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마약 용의자들이 체포 시 저항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로사 장군은 마약과의 전쟁이 필리핀 국내 마약 의존자 수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한편 포춘 박사의 업무량은 살인적이다. 필리핀대 의과대학 교수이자 병리학과 학과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버르고 등 이번에 새로 발굴된 시신 3구에 대한 부검 및 보고서 작성까지는 몇 주가 걸릴 것이다.

한편 청년 버르고는 2019년 8월 저녁, 심부름을 하러 집을 나섰다 총에 맞아 사망했다. 어머니 에린다는 아들이 피투성이로 누워있는 모습에 밖으로 달려 나갔다.

어느 목격자는 에린다에게 총격범이 친숙한 얼굴이었다면서, 경찰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펠리자도 버르고 생전 모습

사진 출처, BBC/TIM MANSEL

사진 설명, 2019년 8월 마닐라 소재 집 근처에서 총에 맞아 숨진 펠리자도 버르고

“그 증인에게 물었죠. 증언해줄 수 있냐고요. 물론 그 증인은 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사람들은 잘못된 걸 봐도 외면합니다. 함께 얽히고 싶지 않아 합니다.”

버르고는 마닐라에서도 최악의 슬럼가로 알려진 파롤라 톤도 지역 주민이었다. 항구 근처인 이곳은 콘크리트 골목과 임시 가옥으로 이뤄진, 마치 미로 같은 곳이다.

버르고는 마약에 손을 댔다. 그러나 에린다는 아들이 최근엔 정신 차리기 시작했다면서 최근 트럭 회사에 일자리도 얻었다고 말했다.

에린다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은 인생을 바로잡고자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들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은 이들에게 자신을 증명할 기회”라고 말했다.

에린다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토로했다.

한편 클라바노 차관부는 “경찰이 현장에 혼자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경찰 학대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개혁이 진행 중이며, 이에 따라 검사들이 앞으로 범죄 현장을 방문하는 등 경찰과 더욱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저희는 경찰을 견제하고 균형을 찾겠습니다.”

그러나 클라바노 차관부는 “ICC는 만약 필리핀 내 사법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만 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작동하는 사법 시스템이 있다”면서 ICC가 필리핀에 올 이유는 없다고 봤다.

그러나 ICC는 필리핀 당국이 수사 및 형사 기소를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는 한편, 자체 조사도 계속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중간선

경찰관이 실제 체포된 사례는 아주 드물다.

지난해 8월 메트로 마닐라(마닐라 수도권) 나보타스 지역 인근에서 17세 어부였던 저로드 ‘젬보이’ 발타자르가 대낮에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경찰관 6명이 구금돼 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경찰은 자신들이 쫓던 살인 용의자로 착각해 어선을 청소하고 있는 젬보이를 향해 총을 쐈다. 그렇게 젬보이는 물에 빠졌으나, 경찰들은 그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몇 시간 후 젬보이의 시신을 수습한 건 그의 삼촌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플라비 신부는 젬보이의 시신을 장례식장에서 포춘 박사의 영안실로 옮겼다.

포춘 박사는 젬보이의 머리에 총알 자국이 있으나, 이는 직접적인 사인이 아니었다면서 만약 경찰이 총격 직후 젬보이를 물 밖으로 꺼냈다면 “생존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즉 머리에 총을 맞고 물에 빠진 뒤 익사했다는 뜻”이라는 포춘 박사는 “우린 이를 살인으로 분류한다”고 덧붙였다.

유골함 앞에 마약 전쟁 희생자들의 명단을 놓고 있는 플라비 신부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마약과의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기념 유골함 앞에서 이들의 이름이 적힌 긴 명단을 펼치고 있는 플라비 신부의 모습

이후 포춘 박사에겐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우선 해당 총격 사건을 담당하는 나보타스 지역 경찰이 오더니, 주 검찰까지 찾아왔다. 이들 모두 부검 보고서를 원했다.

포춘 박사는 “지긋지긋하다. 나는 괴롭힘당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실 필리핀에서 공인 암살은 전례 없는 사건이 아니다. 이에 포춘 박사는 X(구 ‘트위터’)를 통해 팔로워 17만 명에게 검찰과 경찰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리며 자신을 보호하고자 이 사실을 공개한다고 적었다.

한편 플라비 신부는 여전히 넴보이 사건 이후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감시당하고 있다고 하며 이에 플라비 신부가 모금한 기금으로 운영되는 어느 비밀 장소에 살고 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기회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포춘 박사는 “모드 이들이 ICC의 개입을 바라고 있다”면서 자신은 준비됐다고 말했다.

플라비 신부 또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마약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에게 언젠가 정의를 되돌려줄 수 있다고 낙관했다.

“한 번에 한 가족씩, 한 번에 한 영혼씩 정의를 되찾아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