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레인 맥스웰은 어떻게 빌 클린턴을 엡스타인에게로 끌어들였나

맥스웰, 빌 클린턴, 얼굴이 가려진 여성이 호화로운 대리석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모습

사진 출처, Reuters

    • 기자, 카일라 엡스타인
    • Reporting from, 뉴욕
  • 읽는 시간: 10 분

사진 속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밤중에 길레인 맥스웰과 수영을 즐기고 있다. 맥스웰은 영국의 사교계 인사로, 현재 성매매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다.

또 다른 사진 속 클린턴은 '롤링 스톤스'의 홍콩 콘서트 백스테이지에서 제프리 엡스타인과 함께 웃고 있다. 숨진 엡스타인은 금융인 출신으로 전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성범죄자가 된 인물이다.

날짜가 표시되지 않은 3번째 사진에는 클린턴이 누군가와 함께 온수 욕조에 누워 있다. 이 인물의 얼굴은 신원 보호를 위해 가려져 있다.

클린턴과 엡스타인의 관계는 수년간 잘 알려진 사안이었으며, 클린턴 측은 퇴임 이후 자선 활동을 하다 그를 알게 됐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최근 미 법무부가 공개한 사진과 이메일은 두 사람의 관계가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주는 단서가 되며, 맥스웰이 두 사람 간 관계를 위해 물밑에서 어떤 활동을 벌였는지 보여준다.

최근 공개된 이러한 자료들은 오는 27일(현지시간) 공화당이 주도하는 미 의회 위원회에서 민주당 소속이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을 상대로 진행할 강도 높은 심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일로 클린턴은 엡스타인과의 관계로 인해 검증대에 오르는 가장 최근의 거물급 인사가 될 것이다.

엡스타인 파일에서 공개된 빌 클린턴 사진: 엡스타인이 소장하고 있던 클린턴 풍자화, 엡스타인과 클린턴이 함께 웃고 있는 사진, 마이클 잭슨과 함께 있는 클린턴 사진, 얼굴이 가려진 젊은 여성이 클린턴이 앉은 의자의 팔걸이에 앉아 있는 사진

사진 출처, Reuters

해당 문서들은 클린턴이 어떤 위법 행위에 연루됐다는 점을 보여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나선 엡스타인의 피해자들 역시 클린턴을 부적절한 행위로 고발한 바 없으며, 그가 엡스타인의 범죄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도 없다.

클린턴 측 대변인은 해당 사진들은 수십 년 전 촬영된 것으로, 클린턴은 엡스타인의 범죄가 알려지기 전 이미 그와의 관계를 끊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공개된 자료는 클린턴이 자선 사업에 매진하는 전직 대통령으로 변신한 2000년대 초, 그의 세계와 엡스타인의 세계가 어떻게 충돌하게 됐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당시 클린턴은 '클린턴 재단' 및 세계 문제 해결에 헌신하는 리더들의 모임인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CGI)'에 기부할 부유한 후원자들을 찾고 있었다.

당시 엡스타인은 자산관리자이자 세계 곳곳을 다니는 금융가로, 여자친구 맥스웰과 함께 영국 버킹엄 궁전에서 미국 팜비치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부호들과 교류하며 영향력 있는 인맥을 쌓아가고 있었다.

BBC가 검토한 이메일에서 빌 클린턴과 엡스타인이 직접 주고받은 메시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맥스웰이 클린턴의 수석 참모였던 더그 밴드와 주고받은 수많은 메시지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다.

맥스웰과 밴드의 사진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더그 밴드(오른쪽)는 길레인 맥스웰(왼쪽)을 자신의 "사회적 중매인"이라고 불렀다

맥스웰과 밴드가 2002~2004년 주고받은 이메일에는 각종 추파와 성적인 암시가 담겨 있어 상당히 친밀한 관계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밴드는 맥스웰을 자신의 "사회적 중매인"이자 "애인"이라고 불렀으며, 맥스웰은 밴드의 사회적, 육체적 능력과 매력을 치켜세웠다.

이들이 주고받은 광범위한 연락은 클린턴과 엡스타인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또 두 사람을 위해 일하는 이들이 그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얼마나 애썼는지 보여준다. 다만 밴드가 어떤 위법 행위에 연루됐다고 볼만한 정황은 없다.

문서에 따르면 맥스웰과 밴드는 CGI 관련 회의를 위한 사전 준비를 진행했으며, 엡스타인의 전용기를 이용한 클린턴의 비행 일정도 조율했다. 비행 기록에 따르면 클린턴은 해당 전용기를 최소 24회 이용했다.

클린턴 대변인은 클린턴이 "재단 업무와 관련된 경유지" 등을 오가는 데 해당 전용기를 이용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공개된 비행 기록, 문서, 주고받은 이메일 등은 엡스타인이 2006년 기소되기 훨씬 전부터, 2008년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혐의로 유죄를 인정하기 전부터 이미 그와 연락을 끊었다는 클린턴의 주장과 부합한다.

당시 뉴욕 주 상원의원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은 자신은 남편이 엡스타인과 함께 한 여행에 동행한 적 없으며, 그를 만난 기억도 없다고 주장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비서실장인 앙헬 우레나는 BBC에 보낸 성명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엡스타인의 범죄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으며, 숨길 것도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엡스타인 관련 문서 속 그 어떠한 이메일도 클린턴이 직접 보낸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우레나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엡스타인과 함께한 여행과 관련해 우리는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면서 "사실은 사실이고, 진실은 진실이며, 사실과 진실 모두 우리 편"이라고 전했다.

바쁘게 이곳저곳을 다니는 여행

2002년 9월 21일, 클린턴 전 대통령은 엡스타인의 전용기에 탑승해 여러 유명인들과 함께 아프리카를 순방했다. 비행 기록에 따르면 바쁘게 이곳저곳을 다니는 일정이었다.

이 여행은 클린턴과 엡스타인 간 관계와 마찬가지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클린턴은 대변인을 통해 '뉴욕 매거진'에 엡스타인을 "매우 성공한 금융인이자 헌신적인 자선가"라고 소개하며, 자신은 "최근 민주화, 빈곤층 지원, 시민 서비스, HIV/에이즈 퇴치 등을 위해 최근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 그의 통찰력과 관대함에 특히 감사했다"고 전했다.

다만 해당 매거진은 "클린턴이 엡스타인에게 끌린 이유는 꽤 단순하다. 그에게는 전용기가 있기 때문"이라며 두 사람의 관계를 이해관계에 따른 지지로 묘사했다.

BBC가 입수한, 지난달 의회에 제출된 선서 진술서에 따르면 빌 클린턴은 "엡스타인은 재단의 자선 방문 일정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나와 직원들, 비밀경호국 요원들까지 모두 탑승할 수 있는 대형 항공기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신과 직원들은 "재단 업무에 필요한 방문 일정과 콘퍼런스 참석을 위해" 비행기에 탑승한 것이며, 엡스타인의 섬은 단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비행 기록에 따르면, 2002년 2월부터 2003년 11월까지 거의 2년 동안 클린턴은 엡스타인의 전용기를 타고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러시아, 자택과 가까운 마이애미와 뉴욕 등을 돌아다녔다. 당시 클린턴 측은 재단 활동을 위한 자금을 모금 중이었는데,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메모에 따르면 그 금액은 최대 1억달러(약 1400억원)에 달한다.

해당 여행 중 촬영돼 최근 공개된 사진 속 클린턴은 직원들과 함께 걸으며 미소 짓고 있으며, 현지 관료들과 악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의원들의 호기심과 의문을 불러일으킨 사진들도 있다. 날짜가 표시되지 않은 사진 한 장에는 클린턴이 맥스웰과 함께 수영하고 있으며, 또 다른 사진에는 얼굴이 검게 가려진 인물 옆에서 온수 욕조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그리고 이전에는 젊은 여성이 팔걸이에 걸터앉은 채 클린턴 옆에 있는 사진이 공개된 바 있다.

온수 욕조에서 얼굴이 검은 사각형으로 가려진 사람 옆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클린턴

사진 출처, Reuters

맥스웰은 지난 2025년 법무부 진술에서 자신이 엡스타인과 클린턴 간 관계의 핵심 연결고리라고 주장했다.

1990년대 초, 엡스타인은 수백 명이 모인 백악관 행사에 참석해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함께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맥스웰은 토드 블랑쉬 법무부 차관에게 "엡스타인이 백악관에 간 것은 맞지만, 그때 만난 것은 아니"라며, "그들은 나 때문에 만나게 됐다"고 주장했다.

현재 성매매 혐의로 복역 중인 맥스웰 측 변호인은 BBC의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맥스웰은 이달 하원 위원회에 증인으로 소환됐을 때도 헌법상 진술거부권을 들며 거부했다.

맥스웰은 엡스타인과 연인이던 시절 미성년 소녀 4명을 성착취 목적으로 모집하고 성매매시킨 혐의로 지난 2021년 유죄판결을 받았다.

엡스타인은 성매매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던 중인 2019년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2008년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여성과 소녀 수십 명을 매매했다는 혐의를 받았음에도 비교적 가벼운 처벌이라는 지적이 뒤따랐던 형량 합의에 따라 1년간 복역했다.

지난해 맥스웰은 블랑쉬 법무부 차관에게 자신이 없었다면 빌 클린턴은 엡스타인의 전용기에 탑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엡스타인에게 전용기를 내어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나였다"는 것이다.

"저 또한 멋진 일의 일부가 되고, 또 개인적으로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한 남성과 시간을 보낼 기회를 얻을 수 있어 영광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는 다른 뜻이 아니라 전직 대통령으로서 특별하다는 의미입니다."

'중매인' 역할을 한 맥스웰

빌 클린턴의 2번째 임기 기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좌한 참모가 바로 밴드였다. 밴드는 클린턴이 엡스타인, 맥스웰과 함께 한 주요 해외 순방의 비행 기록에 나란히 이름이 자주 언급된다.

밴드는 클린턴의 대통령 퇴임 이후의 삶을 구상한 "핵심 설계자"라고 자청하며, 대표적인 사업인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의 "창설과 성장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후 밴드는 컨설팅 회사를 공동 설립했으며, 이 회사의 가치는 지난해 기준 23억달러로 평가됐다.

밴드는 1995년 클린턴의 1번째 임기 당시 백악관 인턴으로 입사하며 '클린턴 세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백악관 법률고문실에서 근무하며 승진을 거듭했고, 이후 대통령 집무실로 소속을 옮겨 대통령 부보좌관을 맡았다.

캐주얼한 폴로 셔츠와 재킷 차림의 클린턴이 맥스웰, 엡스타인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위에는 ‘빌 클린턴’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출처, Reuters

사진 설명,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서명을 남긴 사진. 클린턴 옆에 맥스웰과 엡스타인이 함께 선 모습이다

그는 2000년 클린턴이 퇴임한 후에도 수석참모로서 곁에 남았고, 클린턴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제트기를 타고 바삐 돌아다니는 원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2002년과 2003년, 밴드는 클린턴, 맥스웰과 함께 런던, 모로코, 홍콩, 일본, 브루나이, 노르웨이, 시베리아, 중국 등을 방문했다.

최근 공개된 이메일을 통해 맥스웰과 밴드가 서로에게 추파를 던지는 관계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메일에서 그는 맥스웰을 "부-부(booboo)", "베이비케이크"라고 불렀다.

맥스웰은 밴드를 "대단한 정력가"라고 부르며, 자신은 그에게 "반했고", 그가 "말처럼 건장하다"고 적었다.

최근 공개된 이메일들에 따르면, 밴드는 맥스웰을 자신의 "사회적 중매쟁이"이자 "뚜쟁이(pimp)"라고 불렀다.

이어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내 애인"이라고도 적었다.

BBC는 공개 문서에 기재된 밴드의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로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답변은 없었다. 밴드는 엡스타인과 관련해 그 어떠한 범죄나 위법행위로 기소된 바 없다.

이달 초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맥스웰과의 교류는 자신이 미혼이던 20대 시절의 일이라고 밝히며, 맥스웰을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두 사람 사이에 육체적인 관계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최근 공개된 이들의 메시지에는 은근한 암시와 함께 일정 관련 논의도 섞여 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동 계획을 공유했고, 자신들이 엡스타인이나 클린턴과 함께 뉴욕에 머무를 시점도 조율했다.

비행 기록에 따르면 런던은 이들이 자주 방문한 장소였다. 2002년 9월 아프리카 여행 중에도 런던을 찾았다. 최근 공개된, 날짜가 적혀 있지 않은 '클린턴 런던/아프리카'라는 이름의 앨범에는 클린턴이 런던 소재 처칠 박물관을 방문한 사진이 담겨 있다.

엡스타인과의 여행 몇 주 후, 밴드는 맥스웰에게 "클린턴이 저녁 식사에 대한 감사 인사를 보낼 수 있도록 앤드루의 주소를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맥스웰은 "버킹엄궁 SW1 런던 앤드루 왕자 전하 앞"이라는 답장을 보냈다.

검은색 재킷을 입고 길거리에 서서 테이크아웃 커피 여러 개를 들고 있는 밴드와 노란색 스웨트셔츠를 입고 갈색 테이크아웃 봉지와 커피를 들고 있는 클린턴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밴드(오른쪽)는 클린턴 대통령의 재임 기간과 퇴임 후 그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 사진은 2001년 클린턴의 퇴임 첫날 함께한 모습이다

엡스타인 파일 속 이메일 자료를 통해 밴드가 CGI 활동에 도움이 될 만한 인사들에게 닿고자 맥스웰에게 도움을 요청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밴드는 맥스웰에게 리처드 아티아스를 비롯한 인사들과의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부탁했다. 모로코 출신의 아티아스는 다보스에서 세계 유력 인사들을 연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유명 행사 기획자로, 이후에는 CGI를 위해서도 비슷한 역할을 했다.

이에 맥스웰은 밴드에게 "월요일에 아티아스와 이야기해보고,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답했다.

2004년 2월에 맥스웰은 "그는 다보스(포럼)에 오랫동안 관여해 왔기에 아마도 당신이 접촉해야 할 핵심 인물이자 어쩌면 적임자일 것"이라며 "그와의 협력을 통해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우선 아티와스와 만나본 후 말하겠다"고 적었다.

아티아스는 BBC에 당시 밴드와 만났다고 인정했다. 그는 다보스에서 클린턴과 처음 대화를 나눴으며, 클린턴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해 글로벌 차원의 변화를 끌어낼 기회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자신은 그 비전을 CGI에서 실현하고자 밴드와 협력했다고도 덧붙였다.

지난해 맥스웰은 법무부에 자신이 이 과정에 "핵심 인사들이 참여하도록 도왔다"면서, 자신은 "조정자"로서 이 일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진술했다. 아티아스는 맥스웰을 "촉매제"라고 표현했다.

아티아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맥스웰은 연락 창구였다. 그리고 분명히, 클린턴의 오른팔이었던 더그 밴드와 나를 연결해줬다"고 했다.

2005년 9월 16일, 빌 클린턴은 뉴욕에서 열린 첫 CGI 무대에 섰다. 다보스에 대한 미국식 대안이자 "세계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회의 장으로 기획된 행사였으며, 클린턴에게는 백악관을 떠난 이후로도 글로벌 핵심 인사로서 자리를 공고히 할 기회였다.

클린턴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미 국무장관 등 영항력 있는 여러 인물들로 구성된 패널 토론의 사회자로 나섰다.

'그를 알지 못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빌 클린턴은 2024년 회고록에서 "엡스타인이 어딘가 이상하다고는 항상 생각했으나,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눈치채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했으나, 나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며, 2005년 그가 처음 체포됐을 당시에는 이미 그와의 교류를 끊은 상태였다."

클린턴 측 우레나 부비서실장은 밴드와 맥스웰 및 엡스타인 간 관계, 그것이 클린턴의 대표적인 사업인 '글로벌 이니셔니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BBC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그들의 관계는 각자가 알아서 설명할 문제"라고만 언급했다.

또한 온수 욕조 속에 있는 사진, 맥스웰과 수영하는 사진, 팔걸이에 여성이 앉아 있는 사진 등, 엡스타인 파일 속 클린턴이 등장하는 사진들에 관한 질문에도 답변하지 않았다.

한편 2015년경 관계가 틀어지며 '클린턴 세계'에서 추방된 밴드는 2020년 '베니티 페어'와의 인터뷰에서 2002년 아프리카 방문 이후 자신은 클린턴이 엡스타인과 멀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밴드는 당시 엡스타인의 범죄에 대해 알지 못했으나, 무언가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아 상사에게 그와의 단교를 권했다.

한편 빌 클린턴은 자신의 회고록 '시민: 백악관 이후 나의 삶'에서 깊은 후회를 드러냈다.

"결론적으로, 비록 그 덕에 내 재단 활동과 관련한 방문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으나, 엡스타인의 전용기를 이용한 선택은 그 이후 수년간 이어진 의혹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는 없었다"는 그는 "그를 알지 못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적었다.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엡스타인과 클린턴

사진 출처, Reu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