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의 불길이 지구를 집어삼킬지 모른다는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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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토마스 모이니한
- 기자, BBC 퓨처
핵 연구 초기, 일부 과학자들은 핵분열이 통제할 수 없는 연쇄반응으로 이어져 지구를 파괴할까봐 두려워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에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이 통제를 벗어난 연쇄반응을 일으켜 대기를 불태워 버릴까봐 걱정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간다. 1942년 에드워드 텔러가 처음으로 이러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주장이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수학적 계산을 통해 지구가 희생되는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릴 만큼 흥미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공포는 핵폭탄에 관한 진지한 연구보다 수십 년 앞서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핵분열은 공상 과학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시기에 등장한 것이다. 인공지능(AI)을 핵에 비유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새롭게 등장한 기술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이에 단순한 추측에서 시작한 우려가 심각한 공포로 변한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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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로마의 자연주의자 플리니우스는 지구에 가연성 물질이 얼마나 많은지를 고려한다면 지구가 불타버리지 않는 게 매일 일어나는 기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류는 오랫동안 물질은 불에 타더라도 그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는 안정적이고 견고하며 파괴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던 중 1900년대 초 마리 퀴리가 방사능을 세상에 공개하자, 이 생각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퀴리의 발견은 물질 내부에 거대한 에너지 저장고가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예기치 않게 드러냈다. 이를 분해하면, 방사성 원소들이 내부에 저장된 에너지의 빗장을 풀어주게 된다. 당시엔 모든 원자가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1905년 아프리카계 미국인 과학자 C H 터너는 이를 “기존의 믿음을 부숴버리는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땅속에 있는 광석처럼 평범한 물질도 밀봉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시사함으로써 과학자들에게 어떠한 생각을 심어줬다. 지구가 평화로운 거주지라기보다는, 다이너마이트 “창고”와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핵물리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프레더릭 소디는 1903년 초, 어설픈 과학자가 “적절한 기폭장치”를 찾아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저장고”에 불을 붙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글을 썼다. 소디가 독자들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쓴 에세이(소디는 독자의 감정이 고조되는 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했다)의 결론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지구가 불에 타 폭발할 수 있다는 주장의 기원은 계몽주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거대하면서 수많은 잔해가 가득한 틈을 설명하려 했었다. 하지만 행성을 파괴해 잔해를 남긴 힘의 정체는 규명되지 않았다. 그런데 1903년 소디가 추측한 방사능이 판도를 바꿔놓은 듯하다.
소디의 추측이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연구 파트너인 어니스트 러더퍼드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는 저명한 정기 간행물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알렸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러더퍼드는 “바보가 실험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우주를 폭파”할 수 있다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소디도 이내 누군가가 “지구를 파괴”할 수 있는 “버튼”에 손을 올리고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당시 핵물리학 수준은 대단히 초보적이었다. 역사가 겨우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초창기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러한 발언은 진지한 가설이라기보다는, 수사적 표현에 불과한 근거 없는 추측에 지나지 않았다. 흡사 소디와 러더퍼드가 자신들이 개척한 학문에 대한 관심과 경외심을 모으기 위해 과장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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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연구자들도 작은 우라늄 알갱이의 잠재력을 몇 톤의 TNT(강력폭약)와 비교하는 등 터무니없는 주장을 경쟁하듯 쏟아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가진 힘과 위험성을 프로메테우스 신화와 비슷하게 포장하고, 대중에게 경외심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려 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소디와 러더퍼드는 섬뜩하고 충격적인 이미지를 두려움 없이 사용했다.
핵분열이 지구 대기를 불태워 버릴 수 있다는 사상이 자체의 생명을 얻은 것은 그때부터다. 1903년 말, 학술지에는 연쇄 반응으로 “지구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버튼 누르기”에 관한 논문들이 올라왔다. 그리고 이는 과학 공동체와 언론을 통해 확산했고 눈덩이처럼 커졌다. 신문은 “화염에 휩싸여 거대한 불바다”가 되는 지구에 대해 보도했다.
1909년엔 아일랜드의 지질학자 존 졸리가 새로운 기름을 부었다. 밤하늘에 가끔씩 보이는 불타는 듯한 별들도 이와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러한 별을 두고 멀리 떨어진 행성인 것 같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원자 충돌로 인한 사고인 것 같다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우주에서 볼 수 있는 별의 폭발”은 외계 문명의 과학적 미숙으로 인한 “우주 대 폭발”의 결과일 수 있다는 가정이 만들어진 것이다.
시간이 흘렀고, 진지한 과학자들은 이러한 추측을 이어갔다. 1921년 화학자 월터 넌스트는 인류를 “프로메테우스가 횃불을 건네는 순간” 사라지게 될 화약 덩어리 위에 사는 생물 집단에 비유했다. 찰라탄 역시 이러한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1924년, 셰필드 대학의 한 엔지니어가 원자 해독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죽음의 광선’을 발명해 논문에 실린 적이 있을 정도로 자기 홍보에 능했다) 지역 언론은 그의 실험이 셰필드뿐만 아니라 전 우주를 “증발”시킬 수 있다고 자극적으로 보도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이 엔지니어에게 ‘더 이상 실험을 진행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중 한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아마도 당신이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였다면 인류의 멸망 가능성에 그렇게 열광하지 않았을 겁니다.”
핵무기가 점차 가시화되고 결국 비극적인 현실이 되자, 과거의 추측들은 이후 수십 년간 또 다른 어조를 띄게 됐다. 지구의 멸망이 “화성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농담을 하는 것은 매우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칼 융을 비롯한 여러 지식인은 초신성이 우주 먼 곳에서 원자 실험 실수로 생겼다는 이론을 계속 거론했다. 1946년 6월, 미국이 비키니 환초에서 전후 실험을 실시하기 전날, 사이언스 저널에 이 문제에 대한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기사는 “비과학자”만이 지구의 발화 가능성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것들에서 무엇을 끌어낼 수 있을까? 무엇보다 영화에서 텔러가 가졌던 공포와 맨해튼 프로젝트 동료들의 두려움이 우연히 생겨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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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누구도 비슷한 재앙을 상상하지 못했더라도, 사람들이 두려움에 빠졌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폭발”이라는 모티브가 문화적 의식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폭발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40년 전 소디의 한 마디에서 두려움이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당시 소디의 폭탄 발언은 진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충격 요법으로 자신의 새로운 연구 분야를 알리겠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엉뚱한 농담이었다.
물론 그가 폭탄 발언을 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폭탄 발언을 하지 않았거나 러더퍼드가 이를 증폭시키지 않았다면, 핵으로 지구가 불탈 수 있다는 두려움은 지금처럼 뿌리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설사 그랬더라도 오펜하이머의 관심을 끌 만한 탄력이나 주목도는 없었을 것이다.
인간이 가진 두려움이 항상 순수한 이성의 산물인 것은 아니다. 두려움은 특정한 주제가 담론의 헤게모니를 차지한 어떤 과거의 산물이기도 하다. 특히 어떤 주제는 그것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시작되기 전, 누적된 익숙함과 자기 강화를 통해 우리의 의식 속에 굳건히 자리 잡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두려움이 이렇게 이성과 거의 관련 없는 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가 과거에 거의 당대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는 이유로 그대로 받아들여, 이를 다시 후손에게 물려주면 그렇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기괴한 ‘AI 파멸 시나리오’에 대해 신중하게 따져봐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물론 성급하게 이 불안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결국 핵 공포 사례는 추측에 기반한 두려움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공상 과학 소설에서 구체적인 현실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밀리컨은 1929년 원자를 분해하여 얻을 수 있는 에너지는 “아마도 구석에 있는 땅콩이나 팝콘을 계속 먹기에 충분할 정도”이지만 “그게 전부”라고 썼다. 그러한 에너지는 결코 현실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이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화적 기호가 우리의 예측과 두려움을 왜곡하는 방식을 경계해야 한다. 초기의 투기꾼들은 전 세계가 불타버릴 것이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비전을 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핵폭발이 실제로 가져올 현실적인 위험에 대해서는 누구도 분명한 예상을 내놓지 못했다. 바로 ‘낙진’이다. 방사능에 노출된 낙진으로 인해 오늘날 여전히 지역사회, 특히 소외된 지역사회가 고통을 받고 있다.
이 사례가 AI와 관련해 주는 교훈은 이렇다. 우리는 드라마틱한 위험에도 주목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구체적이면서 주목은 덜 받는 위험 역시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다시 한번 전 세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에서는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서는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