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10KG 빠졌는데 정상인가요?'…마약류 ADHD 치료제를 '공부약'으로 먹는 수험생들

- 기자, 이선욱
- 기자, BBC 코리아
“ADHD 약 먹고 한 달 만에 살이 10kg 빠졌는데 정상인가요?”
올해 두 번째 수능을 본 정수원 씨(가명, 21)는 지난 9월 한 수험생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러한 내용의 질문글을 올렸다.
정씨는 글을 올리기 한 달 전부터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치료제를 먹기 시작했다. 그는 “약을 먹고 나서부턴 밥이 아예 당기지 않았다”며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아 체중이 급격히 줄었다고 말했다.
수능을 앞둔 8월에서 11월 사이 수험생 커뮤니티엔 이처럼 ADHD 치료제에 대해 문의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정씨처럼 약 부작용에 대해 상담하거나 복용량을 늘려도 괜찮냐는 문의가 집중적으로 올라왔다. 심지어 ADHD 증상이 없어도 약을 처방받는 방법을 공유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일부 수험생들이 수능을 앞두고 ADHD 치료제를 찾고 있을 가능성은 여러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지난 2020년 식약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ADHD 치료제의 처방 건수는 수능을 앞둔 10월에 가장 높았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은 지난 8월 이 약의 지역별 처방 건수가 교육열이 높은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와 노원구에서 가장 높았다고 발표했다.
'학업 능력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죠'
“당시에 공부도 잘 안 되고 그때 약간 정체기였어서, 저는 또 한 번 (ADHD를) 판정받은 경험이 있으니까. 먹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정씨는 약을 복용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정씨는 초등학교 때 ADHD로 진단받고 약을 복용한 적이 있다. 그러다 중학교 때 별 효과를 보지 못해 복용을 중단했다. 그리고 올 8월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처음 18mg이었던 복용량을 한 달 만에 세 배인 54mg으로 늘렸다.
“일종의 불안감이 있잖아요. 양이 적으면 뭔가 내 학업 능력에 그렇게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고 그래서 약간 급한 마음도 좀 있었고, 의사 선생님이 이 정도까지는 괜찮겠다 싶어서 좀 더 올려주셨던 것도 있어요.”
5년 전 수능을 본 김용현 씨(25)도 정씨와 비슷한 경우다. 이미 고2때 ADHD로 진단받아 치료제를 복용하던 김씨는 수능을 3달 앞둔 8월경 복용량을 늘렸다.

김씨는 단순 ADHD 증상 완화 이상의 학습 효과를 기대하고 증량했다고 말했다. 복용량을 늘리면 더 큰 학습능력 증진 효과를 볼 수 있으리란 기대였다.
“확실히 36mg 보다는 54mg으로 늘려서 열심히 공부를 해야 성적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저도 욕심이 있었던 거죠.”
효과 검증된 바 없지만 '공부 잘하는 약' 돼버려
이처럼 수험생들이 수능을 앞두고 ADHD 치료제를 처방받거나 복용량을 늘리는 이유는 이 약이 집중력과 학습능력 향상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인 ADHD를 치료하는 약이니 도움이 될 거란 기대다.
ADHD의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도파민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해 일어난다는 것이 정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도파민은 우리 뇌의 집중력, 동기부여 등과 관련이 있는 신경 전달 물질의 일종이다.
ADHD 치료제들은 이 도파민 수치를 늘리는 데 중점을 둔다. 국내에서 주로 쓰이는 ‘메틸페니데이트’ 계열 약물은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의 재흡수를 막는다. 흡수되지 않고 활동하는 도파민을 늘려 도파민 수치를 높이는 원리다.
전문가들은 ADHD 환자들이 이 약을 먹으면 도파민 수치가 일시적으로 높아져 유의미한 증상 완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신재현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뇌의 특정 부위에서 도파민 수치가 높아지게 되면서 집중력이나 수행 능력 같은 것이 좀 늘어나게 된다”며 이 때문에 “ADHD 환자의 8~90퍼센트 정도가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약의 ADHD 증상 완화 효과가 학습능력 향상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검증된 바가 없다.
분당 밝은미소약국 배현 약사는 ADHD 치료제가 일의 “능률을 올리는 건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약은 강제로 각성 상태를 만들어 몰입하게 하는데”, “몰입을 했다고 해서 결코 능률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며 공부 능력과 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ADHD 환자들이 복용량을 늘린다고 효과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의견이다.
신 원장은 “약만 증량한다고 해서 낫지 않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며, 오히려 무리한 증량이 부작용 위험을 늘릴 수 있으니 “충분한 진단 뒤에 조심스럽게 증량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의학, 중독의학의 권위자인 미 스탠퍼드대학교 정신과 애나 램키 교수는 저서 ‘도파미네이션’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주의력결핍장애에 처방되는 애더럴(암페타민 계열 약물)이나 리탈린(메틸페니데이트 계열 약물) 같은 약제는 단기 기억력과 주의력을 향상시킨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복합적 인지, 학업, 성적 등이 향상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부작용과 중독 위험성 상당한 '향정신성의약품'
문제는 이 약이 학습능력 증진 효과에 대해서는 확실히 검증된 바가 없지만 부작용과 중독의 위험은 큰 약물이라는 점이다.
식욕 부진과 소화불량, 가슴 두근거림, 두통 등이 대표적으로 알려진 부작용들이다. 심지어 심할 경우 환각, 우울 등 정신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미 체중 감소를 경험한 정씨는 복용량을 급격히 늘렸을 땐 더 심한 부작용을 경험했다.
“소화불량이 심했고 우울감이 굉장히 세게 왔어요.”
급기야 소화불량으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자 정씨는 의사와 상담해 복용량을 다시 줄였다. 약을 줄이자 우울감도 사라졌다.
“그때는 그냥 약 문제가 아니라 아무래도 수험생이기도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약을 줄이고 나니까 신기하게 우울증이 거의 사라졌어요.”
반면 김씨는 심한 부작용을 참으며 수능 때까지 54mg으로 복용을 지속했다. 그는 약을 먹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매스꺼운 느낌이었고, 식욕 저하로 살도 약 3kg이 빠졌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거의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가지 않으면 힘들었어요.”
김씨는 대학에 가서도 약에 의존했다. 수능이 끝난 후 약 복용을 중단했던 그는 대학 첫 학기 중간고사를 앞둔 4월 다시 병원을 찾았다. 또다시 학업 때문이었다.
“대학교에서도 외울 게 너무 많은데, 외우지를 못하니까” 다시 약을 찾게 됐다는 김씨는 “먹어도 소용이 없었던 것 같았고 오히려 부작용이 더 심했지만” 시험 때마다 약에 의존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부작용에 이어 메틸페니데이트가 위험한 이유를 바로 이런 의존성에서 찾는다.
배 약사는 이 약물이 향정신성의약품 등급상 “프로포폴보다 더 높은 등급에 해당한다”며 의존이나 중독 위험성을 강조했다.

실제 메틸페니데이트는 현행법상 마약류인 향정신성의약품 중 두 번째로 높은 등급으로 분류돼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메틸페니데이트를 “오남용 우려가 심하고”, “남용할 경우 신체적, 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키는” ‘나’ 등급 약물로 분류한다.
일부 연예인, 고위층의 불법 투약으로 사회적 문제가 된 프로포폴과 졸피뎀은 이보다 두 단계에 낮은 ‘라’ 등급에 속한다.
배 약사는 “도파민이 과잉 분비됐을 때 나타나는 뇌의 흥분은 사실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이는 곧 “약물에 중독될 우려가 굉장히 높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이 때문에 약물 의존성이 증가하고 다른 약물에 빠지게 되는 등 ADHD 치료제가 일종의 ‘게이트웨이(gateway) 약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오남용 위험에 노출된 수험생들
이처럼 부작용과 중독의 위험성 때문에 철저히 관리되어야 할 약물이지만, 수능을 앞두고 무리하게 증량한 정씨와 김씨의 경우처럼 오남용될 가능성이 높다.
부작용을 참으며 복용량을 늘렸던 김씨는 증량하는 과정이 어렵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그는 “성적도 잘 안 나오고 집중도 잘 안 되니까 조금 올려달라고 하니” 병원에서 손쉽게 증량을 해줬다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도 알고는 있었을 거예요. 저 같은 애들이 한둘이 아니니까요.”
ADHD 치료제의 과잉 처방 가능성은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식약처가 지난 5~6월 2달간 메틸페니데이트 처방 정보를 분석한 결과, 6237명의 의사가 4만 3062명의 환자에게 조치기준을 벗어나 ADHD 치료제를 처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업체들은 수험생들의 간절한 마음을 이용해 오남용을 부추기기도 한다.
수능을 앞둔 지난 10월 식약처는 온라인 공간에서 메틸페니데이트 제품을 불법 판매·광고하거나 유통·알선·나눔·구매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게시물을 점검해 200건을 적발한 바 있다. 이들은 ‘공부 잘하는 약', ‘집중력 높이는 약' 등으로 이 약을 광고했다. 현행 마약류관리법에 따르면 마약류인 ADHD 치료제는 광고 자체가 불법이다.

사진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Ministry of Food and Drug Safety
'정말 ADHD가 맞았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공부를 위해서 약을 이용했을 뿐인 것 같아요.”
2년 전부터 ADHD 치료제 복용을 중단한 김씨는 최근 본인이 정말 ADHD가 맞는지 고민 중이다.
“지금은 집중력 관련된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그는 대학을 자퇴하고 취업을 하면서부터 약을 먹지 않았다. 매스꺼움과 소화불량 등 대부분의 부작용도 사라졌다.
김씨는 일에서 재미를 찾으면서 약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집중이 안 될 리가 있나”라며, 과거 공부에 집중을 못한 이유가 ADHD여서가 아니라 공부에 흥미를 붙이지 못했어서가 아닐지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ADHD 진료인 수는 2017년 약 5만 3000명에서 2021년 약 10만 2000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중 10대의 비중은 2021년 기준 40%가 넘는다.
신 원장은 ADHD가 수험생들의 집중을 방해하는 주된 원인이 아니라며, “대개는 스트레스나 우울, 불안 같은 정서적인 문제가 1순위”라고 말했다.
“막상 얘기해보면 성인이나 나이가 좀 든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제일 큰 원인이 ADHD는 아니거든요.”
신 원장은 “청소년 환자 같은 경우에는 단독으로 진단해선 정확한 진단이 쉽지 않다”며, ADHD 진단도 복합적인 과정을 통해 이뤄져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청소년들은 “전체적인 상황을 아울러서 얘기를 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본인들이 약한 부분, 부끄러운 부분을 드러내지 않고 싶어 하기 때문에, 부모님과 선생님 등 주변 사람들과의 충분한 상담을 통해 약 복용을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약사는 이렇게 ADHD 치료제 복용이 증가하는 경향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그동안 숨겨져 있는 환자가 많아서였을까, 아니면 환자를 만드는 걸까, 라는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고민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