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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는 어떻게 변했을까
- 기자, 스티브 로젠버그
- 기자, 러시아 에디터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기리기 위해 러시아인들이 꽃을 바치는 모습을 보고있자 한 청년이 나발니가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단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을 전했다.
“전 충격에 빠졌습니다. 마치 2년 전 2월 24일, 전쟁이 시작했을 때만큼의 충격이었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침공을 명령한 이후 지난 2년간 러시아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머리 속에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드라마였으며, 유혈사태, 그리고 비극의 연속이었다.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에 죽음과 파괴를 야기했다. 러시아군 역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 러시아의 도시들은 폭격을 당했고 드론 공격을 받기도 했다.
- 수십만 명의 러시아 남성들이 군대에 징집됐다.
- 바그너 용병들은 무장 반란을 일으키고 모스크바로 행진했다. 바그너의 지도자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이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 국제형사재판소가 전쟁범죄 혐의로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 이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해온 자가 세상을 떠났다.
2022년 2월 24일은 ‘분수령’을 맞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사건의 방향성은 분명했다. 지난 2014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처음으로 돈바스 지역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알렉세이 나발니는 2020년 신경작용제에 중독됐고 2021년에는 감옥에 수감됐다.
러시아 내의 탄압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이 일을 기점으로 가속화됐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경우, 전쟁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자신감을 갖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마치 러시아 안팎에 있는 자신의 적을 모두 물리칠 결심을 한 듯했다.
그는 미국, 나토, 유럽연합을 비난하고 나섰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서구 집단”의 러시아에 대한 전쟁, 즉 조국의 생존을 위한 실존적 전투로 빗대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언제, 어떻게 끝날까? 물론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를 회상해볼 수는 있다.
최근 나는 우리 집 찬장에서 20여 년 전, 즉 푸틴 대통령의 초기 집권 시기에 러시아에서 내가 보도했던 긴급보도 문서 더미를 발견했다.
이 문서들을 샅샅이 살펴보니 마치 몇 광년 떨어진 다른 은하계에 대해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2001년 5월 17일에 내가 발행한 기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59%가 러시아의 유럽연합 가입을 지지했다...”
2001년 11월 20일 기사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나토와 러시아는 긴밀한 협력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이는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이 서로를 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양측의 신호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는 나만의 궁금증은 아니다.
전 나토 사무총장 로버트슨 경이 최근 나와 런던에서 만났을 때 “나와 좋은 거래를 하고, 나토-러시아 협의회를 함께 설립한, 내가 알던 푸틴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마치 과대망상증에 걸린 사람 같다.”고 전했다.
“2002년 5월 내 옆에 서서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안보에 관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주권 독립 민족 국가라고 말했던 사람이 이젠 (우크라이나는) 민족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로버트슨 경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과거 러시아의 나토 가입을 고려했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있었다.
“푸틴 대통령과의 두 번째 회담에서 그는 ‘언제 러시아를 나토에 가입하도록 초대할 건지’ 명시적으로 물어봤었어요. 그 때 나는 ‘나토에 가입하도록 국가를 초대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가입을 신청하는 겁니다’ 라고 설명했었죠. 그러자 그는 ‘글쎄요, 우리는 중요치 않은 여러 국가와 함께 줄을 서진 않을 겁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로버트슨 경은 푸틴 대통령이 나토 가입을 정말로 원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나토가 그에게 가입을 제시하길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러시아가 세계 무대에서 위대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고 소련이 가졌던 명예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그는 점점 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테이블에 둘러 앉아 공동 정책의 이익에 대해 토론하고 논의하는 평등한 국가들의 동맹에 결코 편안히 안착하진 않았을 겁니다.”
‘자라나는 자아’
로버트슨 경은 소련이 한때 세계 제2의 초강대국으로 인정받았으나 오늘날 러시아는 어느 방면에서든 초강대국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나는 그것이 (푸틴의) 자존심을 깎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종종 나타나는 서구의 나약함과 그가 직면했던 여러 도발, 그리고 커져가는 그의 자아도 결합했을 겁니다. 저는 이 모든 게 푸틴이 나토와 협력하고 싶어하던 자에서 이젠 나토를 커다란 위협으로 인식하는 자로 바뀐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러시아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러시아 정부 당국자들은 나토가 동쪽으로의 영향력을 확대해가며 유럽의 안보를 훼손한 것이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나토가 소련의 종말기에 크렘린궁과 맺었던 약속, 즉 러시아의 영향권에 있던 국가들을 동맹세력으로 받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을 어겼다고 비난한다.
로버트슨 경은 “종이엔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합의된 바는 아무것도 없었고, 관련된 조약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2002년 5월 28일 로마 선언에 서명한 사람은 블라디미르 푸틴 자신이었죠. 제가 서명한 같은 문서에는 영토 보전과 타 국가에 대한 간섭 금지와 관련한 기본 원칙이 담겨있었습니다. 그가 그것에 서명한 겁니다. 그는 남을 탓할 순 없습니다.”
모스크바에서 40마일 떨어진 솔네크 노고르스크 마을의 한 공원에는 러시아의 극적인 지난 2년 간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그 곳에서 난 바그너 그룹을 지지하는 한 낙서를 발견했다.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는 꽃도 놓여있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사망한 이 마을 출신의 러시아 군인 두 명을 그린 커다란 벽화도 있다. 이들 옆엔 청년 사관생도가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시내 중심가에는 제2차 세계대전과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희생된 자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이 곳에 새로운 구역이 추가됐다.
“특수군사작전에서 전사한 병사들을 추모하며.”
46명의 이름이 비석에 새겨져 있다.
나는 마침 손자와 함께 걸어가던 리디야 페트로브나에게 지난 2년 간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이전엔 해외에서 수입해오던 물건들을 이제는 우리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어요. 그건 좋아요.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과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서방과의 전쟁은 결코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러시아 국민들은 평생 전쟁, 전쟁, 또 전쟁 이외엔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17세 아들을 둔 마리나에게 물었을 때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러시아 군인들을 칭찬했다. 그리고는 아들 안드레이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로서 제 아들이 전쟁이 소집될까 두려운 마음도 있습니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가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