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 차장검사, ‘아태지역에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 기자, 이래현
    • 기자, BBC 코리아

한국을 방문한 나자트 샤밈 칸 국제형사재판소(ICC) 차장검사가 중대한 국제범죄에 대한 면책이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로마규정' 채택 25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개최된 ICC 아시아·태평양 지역 고위급 세미나에 참석한 칸 검사는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더 많은 국가들이 로마규정에 비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밝혔다.

ICC는 중대한 반 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는 최초의 상설 국제재판소다. 1998년 채택된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에 따라 2002년 발족했으며, 본부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다.

개인의 국제 형사 범죄를 재판하지만 국가나 군부 등 집단에 대한 관할권은 갖고 있지 않다.

샤밈 칸 차장검사는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분쟁에 대해 특히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제네바 협약 위반과 로마규정의 비인도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9일 이집트에서 카림 칸 ICC검사가 '이스라엘에서의 민간인 살해 규모는 ICC의 관할권에 속한다'고 말한 것을 다시 강조한 것.

또한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을 공격한 자들도 ICC의 관할권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ICC는 지난 2014년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무력 충돌 당시에도 이스라엘군을 포함해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들의 전쟁범죄 혐의에 대해 조사한 바 있다.

그러나 ICC 가입국이 아닌 이스라엘은 법원의 관할권을 거부하고 조사에 공식 참여하지 않았다.

이에 칸 검사는 “범죄 행위가 자행된 장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범죄 행위가 ICC 비당사국 국민에 의해 ICC 당사국 내에서 자행됐다면 ICC에 관할권이 있다”며 “당사국 국민이 당사국이 아닌 국가에서 범죄를 저질렀다해도 ICC의 관할권이 있다”고 설명했다.

즉, 이스라엘이 당사국이 아닐지라도 팔레스타인은 로마규정을 비준하고 있기 때문에 ICC의 관할권이 부여된다는 것이 ICC의 입장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제사회에서는 팔레스타인이 주권 국가가 아니라는 이유에서 ICC의 중동 분쟁 관련 관할권이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제네바 협약은 인도주의에 대한 국제법의 기초로, 부상병이나 조난자, 포로, 일반 주민 등 전투행위에 직접 참가하지 않는 자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로마규정 또한 집단살해죄, 비인도적인 범죄, 전쟁범죄, 침략범죄 등을 처벌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현재 전세계 국가의 3분의 2인 123개국이 서명했다.

한국도 2002년 11월 로마규정을 비준하고, 2003년 ICC 정식 가입국이 됐다.

북한도 ICC 관할권에 포함될까?

ICC의 당사국이 아니지만 ICC의 관할권이 인정됐던 사례도 있다. 지난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한 것이다.

칸 검사는 “우크라이나 사례는 약간 특수한 면이 있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ICC 당사국이 아니지만 우크라이나가 로마규정 제12조 제3항에 따라 자치적으로 ICC에 관할권을 인정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로마규정 제 12조 제3항은 비당사국이 ICC의 관할권을 수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강제 점령당한 이후인 2014년과 2015년에 걸쳐 자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중대한 국제범죄에 대해 ICC의 관할권을 수락한 바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ICC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법정이 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ICC는 범죄자를 체포할 경찰력이 없다. 그럼에도 ICC는 재판소이기 전에 국제 기관이기 때문에 로마규정을 비준한 국가들이라면 그 재판 결과를 따를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체포 영장을 발부 받은 자가 ICC당사국 영토 내에서 발견됐을 때, 로마 규정에 따라 그를 법정에 세울 의무가 있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떨까.

앞서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북한은 ‘국가의 최고위급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몰살, 살인, 강간, 고의적 굶주림, 강제실종 등 반인도적 범죄'를 자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 내 구금시설의 경우 ICC에 관할권이 없다고 밝혔다.

“만약 구치소에서 고문과 같은 행위가 벌어진다면 로마규정의 요건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만, 비당사국 국민에 의해 비당사국에서 행해진 범죄는 원칙적으로 관할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중국 정부의 탈북민 강제 북송 문제도 중국과 북한 모두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관할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만약 대규모의 강제 북송이 당사국에 의해 일어난다면 그 경우는 ICC의 관할권이 인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얀마 군부의 탄압을 피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건너간 미얀마 소수민족 로힝야족이 지난 2018년 다시 본국으로 강제 송환됐던 사례를 들며, “미얀마는 ICC당사국이 아니지만 그들은 당사국인 방글라데시로부터 송환을 당한 것이다. 즉, 당사국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관할권이 있던 것” 이라며 “예를 들어, 만약 로힝야족이 비당사국인 인도 같은 국가로부터 송환된 것이라면 우리에겐 관할권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아시아의 비당사국을 독려하길’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들이 ICC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점이 재판소의 한계로 작용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칸 검사는 “로마규정은 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국경을 넘음으로써 정의를 훼손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시스템”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모든 국가에 강요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모든 국가가 로마규정을 따른다면 이상적일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기 위해선 당사국과 비당사국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당사국이 로마규정을 비준하면서 어떤 법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고 사법 시스템에 어떤 개선점이 있었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마련되는게 중요할 겁니다.”

칸 검사는 “많은 국가들이 로마규정을 비준했을 때 주권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로마규정이 제정된 방향과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본다면 로마규정이 주권을 존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ICC에서 한국의 역할은 이미 여러 분야에서 증명이 됐다”며 “한국은 가장 많은 분담금을 부담하는 국가 중 하나고 높은 수준의 재판관과 소장 등을 배출해 낸 국가”라고 말했다.

“아태지역에는 수많은 인재들이 있습니다. ICC는 한국과 일본 등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 국가들이 아직 로마규정에 비준하지 않은 아시아 국가들의 참여를 독려함으로써 ICC의 확대에 기여하길 기대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현재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는 19개국만 ICC에 가입되어 있으며, 비준율이 가장 저조한 대륙이다.

한국은 2002년 로마규정에 가입한 후 송상현 전 재판소장, 정창호 ICC 재판관, 권오곤 전 당사국 총회의장을 배출하는 등 ICC의 보편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왔으며, 분담금 규모도 전체 7위,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2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