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푸틴과 회담 장소로 사우디를 제안한 이유는?

    • 기자, 마날 칼릴
    • 기자, BBC 아랍어 서비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방안을 놓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날 수 있다고 발언했을 당시 많은 이들이 왜 이 중요한 정상회담의 장소로 사우디를 선택했는지 궁금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인 회담 날짜를 밝히지는 않고 다만 가까운 시일 내에 열릴 수 있다고만 언급했다.

그러면서 'MBS'로도 알려진 사우디의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 또한 회담에 참석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 회담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 및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각각 전화 통화를 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이같이 말했다.

그리고 오늘(17일) 사우디 측은 성명을 통해 미-러 정상 간 전화 통화 및 자국에서 두 정상이 만날 가능성을 환영했다. "사우디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지속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립적인 장소

다가오는 미-러 정상회담의 개최지로 중국, 아랍에미리트 등 여러 국가가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소재 '중동 연구소'의 폴 살렘 부회장은 "사우디는 중립적이기에 논리적으로 미-러 정상회담 개최지로 선택할 만한 곳"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유럽 국가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강경한 입장이기에 유럽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관계학을 가르치는 카타르 아부 디압 박사 또한 "전통적으로는 스위스 제네바 같은 중립적인 장소를 선택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스위스를 포함한 다른 유럽 국가와 러시아 간 관계 악화로 인해 다른 곳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디압 박사는 사우디는 푸틴 대통령과 신뢰 및 상호 이익을 성공적으로 구축한 국가이자, 국제형사재판소(ICC) 서명국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지난 2023년 ICC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전쟁 범죄 혐의로 푸틴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사우디의 경우 푸틴 대통령이 체포당할 위험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국가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중재자 역할

사우디는 그동안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포로 교환에서 중재를 맡아온 국가 중 하나로, 양측 모두의 신뢰를 쌓아왔다.

최근에는 러시아에 3년 넘게 억류되었던 미국인 교사 마크 포겔의 석방 협상에서도 사우디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중동특사에 따르면 빈 살만 왕세자는 포겔의 석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울러 사우디는 여러 차례 젤렌스키와 푸틴 대통령을 맞이하며 두 국가 간 지속적인 평화 협정 체결을 위해 노력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고자 제다에서 여러 국가의 대표단과 함께 국제 회의를 주최하기도 했다.

2023년 12월 리야드를 방문한 푸틴 대통령에 대해 빈 살만 왕세자는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특별하고 매우 존경받는 귀빈"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한편 아랍 이슈 전문가인 압둘라 바부드는 사우디가 오만,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처럼 국제 사회의 중재자로 거듭나길 열망하며, 역내 주요 국가로서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바부드는 트럼프-푸틴 회담 주최가 사우디에는 외교적 호의가 될 수 있다면서, 이는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아랍 4개국 간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내용의 '아브라함 협정' 서명 등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 대가일 수 있다고 봤다.

살렘 부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금융, 투자, 전략적 이유로 사우디의 관계 강화를 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미국-사우디-이스라엘 협정 체결에도 관심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니달 추카르 박사는 사우디가 트럼프의 중동 정책에서,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존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가자 지구 주민들을 사우디로 이주시키겠다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발언에 대해 사우디 측이 강하게 거부한 이후 미국이 사우디를 압박한 점을 지적했다.

석유

세계 최대 산유국은 미국이며,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그 뒤를 잇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영향을 미친 가운데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유가 안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지난해 12월 사우디, 러시아를 포함한 석유 수출국 22개국으로 구성된 'OPEC+'의 8개 회원국은 예상보다 약한 수요 및 비동맹국의 생산 경쟁을 이유로 제시하며 석유 증산을 미룬다고 발표했다.

바부드는 사우디, 러시아는 주요 산유국으로서 겹치는 이해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트럼프-푸틴 정상회담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뿐만 아니라 국제 유가 및 경제 협력과 관련한 논의도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과거 유가 인하를 요구한 바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에너지 기업들에게 유리한 원유 가격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바부드는 트럼프 대통령은 청정에너지보다 화석 연료 생산을 우선시하고 있으며, 이는 주요 석유 수출국으로서 사우디의 역할과도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전략적 관심사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당시에도 첫 대통령 공식 순방지로 사우디를 선택하며 국제 무대에서 사우디의 외교적 위상을 높여준 바 있다.

그리고 다시 백악관에 돌아온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도 첫 해외 순방지로 사우디를 선택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한편, 이에 대한 가격표를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사우디가 4500억 혹은 5000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 한다면 … 아마 나는 갈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며칠 후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는 향후 4년간 미국에 6000억달러를 투자하고 싶다고 발표했다.

이후 며칠 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 경제 포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나는 멋진 왕세자에게 (투자 금액을) 약 1조달러로 늘려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매우 잘해줬기에 그들이 그렇게 하리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추카르 박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를 핵심 전략 및 경제 파트너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아시아로 방향을 돌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랍 내 지배적인 미국의 경제적 우위를 강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압 박사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위해 사우디 및 아랍 지역 내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한다고 봤다.

사우디는 인권 문제와 관련해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았으나, 디압과 추카르 박사 모두 사우디가 여성의 운전 허용, 종교 경찰 폐지 등의 개혁을 글로벌 이미지를 개선했다고 봤다. 그리고 이 덕에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정치적 압력에 덜 취약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