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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시위’ 그 후 1년 … 시 주석의 코로나19 정책에 맞섰던 중국 청년들
- 기자, 켈리 응, BBC 중국어 뉴스
- 기자, BBC News
- Reporting from, 싱가포르, 홍콩
지난해 11월 26일, 긴 하루를 마치고 SNS를 둘러보던 중국 청년 황이청(27)은 상하이 우루무치 도로를 따라 모인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접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시에서 발생한 아파트 화재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었다. 이들은 희생자들이 엄격한 코로나19 제한 조치로 인해 미처 화재 현장을 탈출하지 못했다고 믿었다. 중국 당국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또한 시위대의 손엔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흰 종이가 들려있었다. “우리가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상징한다고 했다.
상하이에서 벌어진 이 밤샘 시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퇴진 요구 시위로 번져나갔다. 중국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황은 “정말 자극받았고, 분노에 차올랐다”고 말했다. 황은 경찰에 의해 쫓겨난 밤 이후에도 다음날 같은 장소를 찾아 시위에 합류했다.
이러한 ‘백지 시위’는 중국 전역에서 터져 나왔다. 수도 베이징, 남서부 도시 청두, 중부 시안, 세계 최초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우한 등 여러 도시에서 수천 명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중국의 가혹한 ‘제로 코로나’ 정책 폐지를 앞당긴 것으로 평가받는 이 시위에 참여했던 이들은 희망과 두려움을 오가며 살고 있다.
BBC는 당시 참여했던 시위 참여자 4명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들은 조금 더 큰 정치적 각성으로 이어지길 원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당국의 탄압으로 인해 이들은 중국을 떠났다. 떠난 이후에도 일부는 남겨 둔 가족이나 친구들의 안위가 걱정돼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는 청년 이청은 “해외로 갈 계획이 있었지만, 이곳에 이렇게 오랫동안 머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면서 “백지 시위 참여는 내 삶의 궤도를 완전히 바꿔놨다”고 말했다.
이청은 시위 현장에서 다른 시위자들과 함께 상하이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경찰이 시민들을 거꾸로 뒤집어 끌고 간 다음 버스에 밀어 넣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청은 경찰이 다른 시위 참가자들에 정신이 팔려있던 틈을 타 간신히 탈출했다.
하지만 그 후 몇 달간 이청은 엄청난 두려움 속에 살았다. 어느 날 갑자기 당국이 집 앞에 찾아와 잡아가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이에 이청은 자신의 휴대전화 심 카드도 자르고, 직장도 그만두고, 윈난성의 산간 지역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친구 1명에게 만약 자신이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을 보낸다면, 이는 자신이 구금됐다는 의미라고 일러뒀다.
올해 3월, 잠시 집에 들린 이청은 학생 비자를 통해 독일로 갔다. 그 과정도 녹록지 않았다. 당국의 눈을 피하고자 돌고 돌아 우선 선전시로 간 다음 그곳에서 육로로 홍콩 땅을 밟았다. 그 뒤 싱가포르로 가 그곳에서 독일 함부르크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현재 이청은 독일에 망명 신청을 해둔 상태다.
이청은 “정치적 각성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계속 들끓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에선 이러한 정치적 행동의 대가가 너무 큽니다. 당국은 너무나도 강력하고, 그렇기에 두렵습니다.”
이청은 비록 최근 몇 년간 시 주석의 통치가 더욱 숨통을 조여오고 있지만, 중국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다시 일어나고 있다면서, 백지 시위야말로 이를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청은 지난해 1월 베이징에서 일어난 극적인 시위를 언급했다. 당시 한 미스터리한 남성이 쓰퉁차오 다리에 나타나더니 제로 코로나 종식과 시 주석 타도를 촉구하는 대형 현수막 2개를 내걸었다.
이 남성이 체포됐다는 보도도 있었으나, 현재까지 공식적인 확인은 없으며, 이 남성의 신원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 없다.
당시 주민들은 경제가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도 코로나19 봉쇄 정책을 유지하는 당국에 분노했다. 이에 상하이에서 광저우, 정저우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에서 당국과 주민들이 충돌했다.
이러한 분노와 좌절감은 11월 말경 전국적인 시위로 퍼져나갔다. 중국에서 지난 수십 년간 찾아볼 수 없던 모습이었을 뿐만 아니라, 집권 중국 공산당 반대 시위는 더더욱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일본, 유럽연합(EU), 미국 등 해외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 또한 비슷한 시위를 조직했다.
중국에선 빠르게 시위 진압이 이뤄졌다. 경찰들은 후추 스프레이를 살포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으며, 현장에서 체포가 이뤄지고, 거리에 경찰 인력이 배치되며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게 막았다.
이렇듯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감시로 인해 이후 몇 주, 몇 달간 더 많은 이들이 조용히 체포됐다. 그러나 구금됐거나, 아직도 구금 중인 이들이 몇 명인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이청은 “백지 시위와 그 외 유사한 시위에 관한 정보들은 중국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에선 비판적인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지만, 당국의 감시가 얼른 작동하죠. 듣거나 보기 싫은 말들은 모조리 조용히 시킵니다.”
한편 베이징 소재 대학에 다녔던 장쥔졔는 지난해 11월 27일 대학에서 열린 백지 시위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 “단순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몰고 올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학교 측은 장에게 학교를 떠나달라고 했다. 대학 측은 아들을 데리러 온 장의 아버지에게 장이 “갑작스러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혼낸 뒤 정신과 병원에 보냈다. 그곳에서 장은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3개월간 몇 차례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 기간 의사들은 장에게 신경안정제를 투여했다.
장은 “심지어 할아버지조차 내가 병이 들어 공산당에 반대했다고 생각했다”면서 “우리 가족이 이렇게까지 당국에 협력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장은 시위에 참여했다는 점에 대해 가족들과 계속 의견이 부딪혔다.
이에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올해 8월 뉴질랜드로 떠났다. 장은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지만 우선 “박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면서, 자신도 정치적 망명자 자격을 신청하고 싶다고 했다.
중국을 떠나온 이후에도 여전히 장은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고국의 상황에 실망감을 느낀다.
“가끔 저는 무력감을 느낍니다. 중국의 민주주의는 너무나도 먼 꿈처럼 느껴지거든요.”
백지 시위는 자연스럽게 ‘톈안먼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1989년 학생들의 주도로 일어난 시위로, 수만 명이 모여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쳤다. 개혁주의 지도자 후야오방의 죽음으로 촉발된 해당 시위는 수백, 혹은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유혈 군사 진압으로 결국 끝이 났다.
중국에서 톈안먼 사건은 금기어가 됐다.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 및 심지어 인터넷상에서도 이젠 톈안먼 사건이 발생했다는 그 어떠한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이번 백지 시위도 온라인상에서 이에 대한 기록이 지워지는 등 비슷한 운명을 맞이한 듯한 모습이다. 이에 대해 일부는 중국 정부의 검열이 얼마나 정교한지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올해 11월, 시위 1주년을 맞아 해외에선 여러 행사가 열렸지만, 정작 중국 내부에선 어떠한 행사도 열리지 않았다.
BBC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올해 11월 초 중국 당국은 지난해 시위에 참여한 이들에게 나서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한편 실명을 밝히지 않은 한 20대 청년은 지난해 11월 27일 청두에서 다른 시위자들과 함께 모였을 당시 얼마나 흥분감이 넘쳐흘렀는지 생생히 기억난다고 했다.
“그 현장에 있다는 것, 사람들이 외치는 구호를 듣는다는 건 정말 대담한 일이었습니다. 그땐 정말 중국에도 진정한 변화가 찾아올 수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사람들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면서 이에 시위 관련 담론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중국의 백지 시위가 전 세계에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는지 뒤늦게 알게 되며 충격받았다고도 덧붙였다.
“중국을 떠난 이후에나 알게 된 사실입니다.”
3차례 경찰 조사를 받은 그는 중국을 떠났고, 올해 5월부터 줄곧 프랑스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친구나 가족들이 곤경에 빠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중국과 완전히 단절되고 싶진 않다”는 그는 “또한 중국에서 매우 ‘정치적인’ 인물로 인식되고 싶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마찬가지로 익명을 요구한, 상하이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했다는 한 20대 남성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원래 대형 사기업에서 일하길 꿈꿨던 그는 현재 시민운동 쪽으로 기울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공부하는 한편 중국인들을 위해 지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한다.
그는 “백지 시위가 나를 변하게 했다”고 말한다.
백지 시위는 전 세계 다른 나라들이 모두 개방을 택할 때 여전히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한 당국의 결정으로 인해 일어났다.
그러나 그는 시위대는 이보다 더 큰 무언가를 원했다면서, 중국 지도부에 대한 반발을 말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마야 왕 중국 에디터는 백지 운동이 교육받은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상당한 자기 성찰 및 탐구”를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왕 에디터는 올해 핼러윈 시기 빈 종이를 붙인 옷을 입고 나타난 이들이 있었다면서, 중국의 침체된 경제 상황으로 인해 더 많은 이들이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중국에서 얼마나 반대의견을 낼 수 있는지 말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 및 자본이 현재 중국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 10년간 신중하게 배양된 민족주의 흐름과는 달라진 흥미로운 변화입니다.”
하지만 영국 런던대 ‘중국 연구소’ 소속 스티브 창 소장은 중국 정부의 “강압적인 접근법은 위협적인 효과를 의도했고, 의도대로 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창 소장은 백지 시위는 “중국에도 사람들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마오쩌둥이 남긴 유명한 말처럼 한 줄기의 불꽃만으로도 광야를 태울 수 있습니다. 딱 한 번만 흔들려도 시 주석은 (위태로워집니다) … 그는 매번 실패 없이 성공해야만 권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