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수들, 국제 경기에서 한국 선수 만나면?...'실수할 바엔 마주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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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이래현
- 기자, BBC 코리아
“한국 선수들과 만나서 악수하고 웃으며 인사하니까 그 날 저녁에 집합을 시켰어요. ‘네 친구냐? 네 형제냐? 너희 적이다’ 이런 욕 들으면서 혼났죠.”
북한 유도 국가대표 선수로 1980년대 국제 대회를 휩쓸며 ‘북한 유도 영웅’이라고도 불린 이창수 씨는 “전날까지 웃으며 악수하던 사람들이 다음 날 되니 쳐다도 안보고, 마주치면 멀리 가버리고 하니 한국 선수들 입장에선 깜짝 놀랐을 것”이라며 웃었다.
1989년 유고슬라비아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을 따내는 등 이 씨는 북한 유도계에서는 ‘간판급 선수’였다. 1991년 바르셀로나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가 북한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차에서 뛰어내려 한국으로 귀화한 이 씨는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당시 한국의 정훈 선수에게 결승에서 패하고 탄광을 다녀왔다.
“억울했죠.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메달도 땄는데… 국내 대회에서 3등도 못하는 선수들은 밑에서 웃고 있고, 나는 탄광 보내고. 그래서 ‘이게 뭐냐’라고 했더니 ‘정신 차리라고 보낸거다’ 이랬어요. 경기에서 무조건 이겨야 된다는 정신을 일으키라는 거죠. 어이가 없더라고요.”
파리 올림픽이 한창인 가운데 지난 3일 기계체조 여자 도마 결선에 출전한 한국의 여서정 선수가 먼저 연기한 북한의 안창옥 선수와 인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 나가갔으나, 안창옥이 여서정을 그대로 지나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다시 자리에 앉은 여서정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고, 옆자리에 앉은 코치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런가 하면 지난달 31일 열린 탁구 혼합복식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거머쥔 한국의 임종훈 선수가 휴대폰을 들고 다른 메달리스트 선수들과 ‘셀카’를 촬영하자 은메달을 딴 북한의 리정식과 김금용 선수가 함께 촬영에 임한 모습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경기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사회자가 북한을 ‘노스 코리아(North Korea)’라고 소개하자 북한 관계자가 항의했고 이후 사회자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뜻하는 ‘D.P.R 코리아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로 불렀다. 한 한국 취재진이 동메달을 따낸 한국팀과 함께 시상대에 오른 소감과 경쟁심을 느꼈는지 묻자 김금용 선수는 "그런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만 답했다.
북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말과 행동은 국제 무대에서 늘 주목받는다.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사회에 사는 그들은 다른 나라와의 경기에 설 때마다 나름대로의 지침에 따라 행동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들이 보여주는 많은 부분이 ‘계산된 행동과 말’이라는 의미다.
‘눈은 마주치되 악수는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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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 씨는 “국제 대회에 나가기 전 국가대표 선수들은 무조건 교육을 받아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을 받아야 이수증이 나오고, 이수증이 있어야 단수여권 발급이 된다. 외국에 한 번 다녀올 수 있는 일회성 여권이고, 다녀와서는 반납해야한다”고 설명했다.
15세 때 북한의 국가대표 복싱선수로 발탁됐던 김상윤 씨는 BBC에 “올림픽 같은 국제 대회를 맞이해서 북한 선수들이 출전하게 되면 정기적으로 아침 시간이나 오후 시간 때 1시간 정도 활용해서 교육을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일본,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를 상대로 만날 때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할 것을 교육받아요. 한국 선수들이 ‘너네 한국 오면 억대 연봉 받아’ 이런 얘길하면 ‘우리는 수령님이 있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니 그런 얘기 말라’고 답해야 해요. ‘우린 풍족하진 않지만 수령님 품에서 걱정 없이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잘 산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 거죠.”
현재 남북스포츠문화연구원 이사장이자 21세기안보전략연구원 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 씨는 외할아버지가 6.25 전쟁 당시 남측 의용군으로 참전했다는 이유에서 국가대표였음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에서 청소년 선수가 국가대표가 된 것은 김 씨가 처음이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었다.
김 씨는 자신이 북한에서 국가대표 선수 생활을 하며 받았던 교육에는 세세한 행동 지침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국제 대회에 나온 북한 선수들이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거나 경기 후 상대 선수의 악수를 거부하는 행동 모두 교육 내용의 일부라는 것이다.
“저는 90년대부터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로서 준비를 했는데 당시엔 남북 관계가 그렇게 나쁘진 않았어요. 남북 스포츠 교류 활성화가 시작되던 시기였거든요. 그때는 남한 선수들을 보면 먼저 반갑게 악수하고, 인사할 것을 강조했어요. 그런데 또 관계가 조금씩 안 좋아지니까 ‘눈은 마주치되, 악수나 대화는 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 지침이 바뀌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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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선수들은 '간첩'?
이들이 대회에 나가기 전 받는 교육에 따르면 외국 선수들은 언제든 북한의 정보를 빼낼 준비가 돼 있는 ‘간첩’이다.
김상윤 씨는 “사회주의를 허물어뜨리는 수령에 대한 비방, 사회주의 공화국 체계에 대한 비방, 우리 주민들이 허덕이고 있는 것 등에 대한 비방을 통해 (외국 선수들이) 간첩 활동을 할 수도 있고, 우릴 이용해 언론을 통해서 북한이라는 나라를 헐뜯고 무시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경고를 한다”고 말했다.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땄을 경우 외신 기자회견에서 받을 수 있는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도 미리 교육을 통해 유도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외신기자들이 ‘어떻게 1등을 하게 됐느냐’라고 물어보면 ‘수령님의 지도 하에 당의 품에 안겨 우린 근심, 걱정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경기력이 나와 1등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도록 유도하고 교육을 합니다.”
북한에는 체육 업무를 담당하는 최고 행정기관으로 국가체육지도위원회가 있다. 이창수 씨는 해외에 경기를 나가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이 위원회 관계자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람들이 국제 대회를 같이 따라나가서 총화보고서를 써요. 전반적으로 대회에 대한 보고서를 쓰는 겁니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 어떤 선수가 한국 사람하고 어떠한 행동을 했다, 이렇게 잘못 써버리면 (그 선수는) 매장이에요. 김일성이 북한 땅에서 실수하는 건 용서가 돼도 해외에 나가서 실수하는 건 용서가 없다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선수들은 행동을 아주 조심하는거죠.”
“그래서 한국 선수들을 만나면 그냥 피하라고 그래요. 만나지 말라고. 만나서 얘기를 계속하다 보면 실수를 할 수 있으니까.”
이 씨는 함께 국제 대회를 나갔던 한 통역사가 호텔 로비에서 한국 사람과 술을 마시다가 대사관 직원에게 적발돼 정치범수용소에 잡혀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국가기관에서 일하던 아버지 덕에 수용소에서 겨우 빠져나왔지만 이미 너무 심한 체벌을 당한 그는 며칠 뒤 숨을 거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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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으로 기념품도 받으면 안 된다. 김상윤 씨는 선수들끼리 운동을 하다 보면 운동용품 등을 주고받게 되는데, 중국이나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 선수들이 주는 물건은 받아도 되지만 한국이나 일본 등의 선수들이 주는 건 사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이 경기 전 교육을 통해 ‘물질로 얻는 만족감이나 즐거움’보다도 ‘물질 만능주의가 가져다줄 수 있는 퇴폐’ 등 부작용을 먼저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보여지는 모습 뒤에 선수들 간의 긴밀한 교류가 존재한다는 게 이창수 씨의 설명이다. 이 씨는 북한과 한국의 선수들이 몰래 만남을 가진 적도 있다면서, 한국 선수들이 북한 선수들에게 “돈을 넣어줬다”고 말했다.
“안 볼 때, 시합장에서 딴 곳 보고 있을 때, 그럴 때 우연히 만난 것처럼 주머니에 돈 같은 거 쓱 넣어줄 때가 있어요. 한국 선수들이 북한 팀 선수들 돈 많이 줘요. 주머니에 뭔가 쓱 넣어줘서 이따가 보면 돈이고, 그래요. 코치들끼리도 만나서 돈 주고.”
“한국 선수들이랑 웃고 떠들지 말라고 욕 먹고 나서 그 다음부터는 안 마주치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북한팀 숙소 있죠. 거기 가니까 몽땅 담배가 다 ‘88 담배’인 거예요. 북한 코치들이 한국 사람들한테 다 담배 받아서 ‘팔팔’을 피우고 있더라고. 몰래 다 만나는거지.”
‘88담배’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발매된 한국의 담배로, 8, 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다.
모든 경기가 종료되고 북한에 다시 돌아와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받는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는 부분 중 하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짧은 혀 때문에 긴 목 날아간다’라는 소리를 내가 들었던 적이 있어요. 무섭더라고요. 외국 나가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에 대해 북한에 들어와서 얘기하지 말란 거예요. 함부로 얘기하면 사상범이 되거든요.”
남북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
기본적으로 남북관계의 좋고 나쁨을 떠나 북한 선수들은 ‘이를 악 물고 이겨야’ 한다. 한국은 물론이고 자본주의 기반의 국가 대표팀과의 경기에서는 무조건 승리를 거머쥐어야 한다. 이겨야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수령님’이 강조하는 사회주의의 우월성과 정신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김상윤 씨는 “사회주의 국가와 만날 땐 따스하게 포옹하라고 한다”며 “그 선수들과 겨룰 땐 최선을 다하자, 열심히 하자, 정도에 그친다면 자본주의 국가 선수들과의 경기는 다르다”고 말했다.
“오늘 선수 생활 끝장난다고 생각하고 죽을 각오로 임해야 되는 거예요. 사실 상대 선수들이 그 나라의 배경하고는 무관하다는 걸 알아요. 그래도 북한 선수들은 무조건 이겨야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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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품고 있는 굳은 결심은 매번 같을지라도 미디어에 보여지는 그들의 태도나 한국 선수들을 향한 말과 행동은 남북관계에 따라 사뭇 다르다.
이번 파리 올림픽 대회 기간 북한의 선수단은 한국의 취재진에 일절 응답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선수들 간 냉랭함이 돋보였다. 유도 남자 73kg급 16강 경기에서 북한 김철광이 한국 강헌철에게 한판승을 거뒀으나, 경기 종료 후 강 선수가 내민 손을 김철광 선수는 잡지 않았다. 조용히 뒤돌아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남북 간 정치, 군사적 긴장이 정점을 찍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최근 몇 년간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남북 정상 간의 판문점 선언 합의가 이뤄졌던 2018년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 뚜렷하다. 당시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한국 쇼트트랙 대표님 훈련이 이뤄지고 있던 가운데 예고없이 북한 팀이 방문했다. 쇼트트랙 첫 남북 합동훈련으로, 남북 선수들이 서슴없이 장난을 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큰 화제가 됐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했다. 여자 핸드볼 경기에서 맞붙은 남북한의 대표팀 선수들은 팀을 구분하지 않고 단체 사진을 찍었고, 정유라 선수는 “북한 선수들이 경기 중 넘어지면 ‘괜찮냐’고 묻고 ‘화이팅’이라고 말해줘 고마웠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이창수 씨 역시 자신이 국가대표로 활동하던 시절인 90년대에는 남북통일축구대회도 개최되고 탁구 남북 단일팀도 결성되는 등 분위기가 한층 유했던 시절이었다며 그땐 서로 “가깝게 지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정치적 얘기만 하지 말고 웃으며 운동 얘기하면서 가깝게 지내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대회 나올 때마다 국제 정세에 따라 외국에 가서 지켜야 할 행동 같은 것들에 대한 지시가 다 나와요. 그러면 그대로 해야 돼요. 북한이 한국하고 현재 관계가 좀 좋다, 이러면 국제 대회 나가서도 한국 선수들 만나면 같이 재밌게 얘기도 하고 그러라고 하다가도 관계가 안 좋아지면 절대 안 된다고 하고...”
김상윤 씨도 남북관계에 따라 선수들에게 내려오는 행동 지침이 달랐다고 말했다. 특히 경기장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뿐만 아니라 선수들끼리 물건을 주고받는 등의 개인적인 일까지도 남북관계에 따라 행동 지침이 달라진다.
“남북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는 남한 선수들이 자기들이 갖고 있던 물건 같은 걸 주면 받지도 않고, 손에 쥐어줘도 그냥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가곤 했는데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나서는 ‘주는 건 받아라, 받고 보고를 해라’라는 식으로 바뀌었어요. 그 때 받은 운동용품 같은 건 보고를 해도 회수를 하진 않았어요. 근데 글러브에 태극기가 붙어있으면 그런 건 폐기 처분이죠.”

사진 출처, European Pressphoto Agency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6·15 공동선언으로 그 어느 때보다 남북 관계가 좋았던 해에 열린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한반도기가 등장하며 최초로 남북 선수단이 공동입장하기도 했다. 이후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포함해 크고 작은 국제대회에서 남북 공동 입장이 있었다.
그러나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등 2010년대 초반에 들어와 남북 간 긴장이 급속도로 고조되자 국제대회에서도 화기애애한 남북 선수들의 모습은 찾기 어려워졌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는 4년 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다르게 남북 선수단이 각각 따로 입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