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은 싫지만 문자는 좋아하는 이유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는 대한항공 승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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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연락하는 데 사용되지만 이메일은 종종 화를 자아내는 반면 문자 메시지는 그 어느 때보다 인기가 많다. 우리가 선택하는 의사소통 방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말하는 것일까?

약 15년 전 나는 쇼핑몰 안의 전자기기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었다. 동료 하나가 "문자를 쓰느냐"고 물었다.

"난 중독됐다니깐."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너무 재밌어서 말야."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LED 화면에 플라스틱 키패드가 달려있는 오래된 피처폰을 쓰고 있었다. 입력할 수 있는 글자 수 제한이 정확히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히 트위터보다 짧았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걸 입력할 수 있기까지 12년이 걸렸다. 문자는 느리고 무척 값비쌌으며 겨우 하이쿠 시 하나의 4분의 1 정도나 쓸 수 있는 정도의 길이였다. 나는 문자 메시지가 정말 바보 같은 것이라 생각했고 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정말 크게 헛발질했던 것이다.

최초의 문자 메시지("메리 크리스마스")는 영국에서 1992년 발송됐다. 휴대전화가 일본 등의 지역에서 점차 인기를 얻으면서 문자 메시지는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로 퍼지기 시작했고 2000년대 말이 되자 이제 세계 어디에서나 문자 메시지를 볼 수 있게 됐다.

2012년 추산에 따르면 전세계의 휴대전화를 통해 14조 7천억 개의 문자가 전송됐다 한다. 2017년에는 그 숫자가 28조 2천억 개로 늘었다. 이 기술은 사라지기는 커녕 더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다.

문자 메시지 전송 서비스(SMS)와 다른 형태의 문자 메시지 서비스가 우리가 서로 소통하는 데 핵심적인 방식이 되면서 문자보다 앞선 형태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소외받기 시작했다. 바로 이메일이다.

이메일이 연락을 주고 받는 멋지고 새로운 방법이었던 시절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었다.

이메일을 확인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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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이고 지루한

불과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우린 모두 이메일을 받을 때마다 기뻐했다고 미국의 종합지 애틀랜틱은 지적한다. 인터넷 포털 AOL은 1990년대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인기가 높았으며 심지어 로그인할 때마다 고객들을 '메일이 왔어요!'라며 활기차게 맞이했다. 그러나 그런 새로움은 이제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 업무용 이메일 함을 하루만 안 챙겨놔도 우리는 공손한 대답과 사려깊은 피드백, 그리고 계속 연락하자는 절반쯤만 진심인 약속을 기다리는 이메일의 바다를 헤엄처야 할 것을 걱정하게 된다. 누군가가 별 생각없이 나를 참조(cc)에 넣거나 '모두에게' 공지처럼 보낸 메일들로 시작된 기나긴 이메일 타래로 우리들의 컴퓨터는 허덕인다.

"많은 사람들이 이메일을 두려워하죠. 원하지 않는 광고가 오기도 하고 각종 스팸 메일에 우리에게 사기를 치려는 뻔뻔한 시도도 오니까요." 뉴욕의 버팔로대학교의 커뮤니케이션 교수 마이클 스테파논은 말한다. "전반적으로 개인적이지 않는 데다 일과 관련된 편이죠."

온타리오의 워털루대학교에서 비즈니스용 글쓰기를 가르치는 에이미 모리슨은 사용자들이 이메일 때문에 화가 나는 가장 큰 까닭은 '수신', '발신', '제목', '본문' 등 사무실 문서의 딱딱한 형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온라인에서 다른 의사소통의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재미로 썼죠." 초기에는 모두가 이메일 주소를 갖고 있지도 않았고 모두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이메일은 힙했다.

"그땐 다들 바보 같은 이메일 주소를 갖고 있었죠." 모리슨은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바보 같은 이메일 주소도 외우고 있어야 했어요. 이메일 주소를 갖고 있는 사람은 주변에 한 다섯 명이나 될까 했으니까 이메일을 갖고 있는 게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죠. 그때는 그랬어요. 널리 알려진 게 아니었죠."

(혹시 궁금할까봐 덧붙이는데 1998년경 내 이메일 주소는 '[email protected]'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재미로 이메일을 쓰는 사람과 업무용으로 이메일을 쓰는 사람의 비율이 역전됐다. 이젠 원하지도 않고 청하지도 않은 이메일들이 메일함에 쌓이고 있다. 상사한테도, 클라이언트한테도, 심지어 전혀 일면도 없는 사람과 회사로부터 이메일이 온다.

"갭에서 티셔츠 사는 데 3달러 할인을 받으려면 갭에 자기 이메일 주소를 주면 됐어요." 모리슨은 말한다. "그럼 그때부터 평생 갭에서 당신에게 이메일을 보내게 됩니다."

너무나 많은 이메일을 받고 있어서 이걸 다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모든 메일을 삭제하는 핵폭탄 단추를 느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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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메시지의 친밀감

이메일을 둘러싸고 있는 '업무 전용'의 음산한 분위기는 스마트폰이 없는 삶(휴대전화가 아니다)을 알지 못하는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에게 특히 강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기기들엔 문자 메시지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각종 메신저 앱이 구비돼 있다.

그러나 Z세대는 이메일을 죽이진 않을 것이다. 몇몇 추정에 따르면 Z세대(200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의 85%는 이메일을 커뮤니케이션의 필수적인 형태 중 하나로 보고 있다 한다. 같은 응답을 한 밀레니얼 세대는 89%이고 X세대(1965년부터 1980년에 태어난 세대)의 경우에는 92%가 그렇게 응답을 했다. 그러나 22세 미만의 사용자들은 이메일을 다르게 쓰고 있다.

섀런 로리셀라는 온타리오대학교 기술연구소의 사회과학·인문학 교수로 지난 10년간 자신의 학생들에게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줘 왔다. 질문이 있다고? 그럼 문자를 보내렴. 그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저는 학생들이 주로 활동하는 곳에서 그들을 만나고 싶어요." 그는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 학생들이 저를 어떻게 그들과 같은 사람으로 보겠어요?"

그는 학계에서 18~24세들이 교수들과 소통할 때 이메일, 문자, 스카이프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학생들이 이메일은 공식적인 것으로 인지하면서 지위와 연배를 인지하는 의사소통의 방법으로 여기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메일은 교수와 학생처럼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연장자인 관계에서 선호되는 의사소통 도구인 반면 문자나 SNS는 관계가 더 친밀할 때 선호됩니다." 그는 말한다.

문자 메시지는 그 특성상 보다 개인적이다. 상대방의 휴대전화 번호를 갖고 있거나 왓츠앱 사용자명 혹은 페이스북 메신저 이름을 알아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많은 경우 상대방은 이를 당신과 공유하기를 택했기 때문에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이메일에는 "뭔가 행동을 발생시키는 게" 있다고 로리셀라는 말한다. 이는 어떠한 종류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메일은 자주 업무와 연관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뭔가 응답을 하거나 뭔가를 행해야 한다.

이메일은 또한 비동기적이다. 언제든 이메일을 받고 답장할 수 있다. 때문에 이메일은 쌓여가고 무척 부담스러워진다. 이메일에 답장하는 것은 금방 잡무처럼 느껴질 수 있다. 빠르고 개인적이며 캐주얼한 특성을 가진 문자 메시지에선 그런 것들이 모두 사라진다.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운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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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셀라는 학생들과 문자를 주고 받으면서 이상하거나 부적절한 일은 없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단어의 사용에 별 고민 없이 그저 과제에 대한 질문을 하거나 수업에 늦을 것 같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는 또한 문자 메시지를 업무와 관련된 활동으로 변화시키는 걸 피했다고 한다. 이메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메일은 친근감과는 거리가 있고 공식적이며 보다 길고 사려깊은 답장을 요구한다. 우리는 문화적으로 이를 알고 있고 답변에 시간이 걸려도 이는 용인된다. 이메일은 종종 우리가 잘 모르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오기도 하니까.

게다가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메일을 보내기 싫어하며 대화를 하는 것도 싫어한다.

"전화로 학생과 얘기해 본 적은 한번도 없는 거 같아요." 그는 말한다. "저한테 전화를 건 학생은 한번도 없었죠."

문자의 종말?

그렇다면 더 '쿨한' 의사소통 방식이 등장하면 문자 메시지도 이메일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

"새로운 기술은 또다른 기술을 가져오죠." 버지니아폴리테크닉연구소의 커뮤니케이션 교수 제임스 아이보리는 말한다.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점차 빨라집니다."

다시 말해 인터넷과 컴퓨터는 이메일을 낳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스마트폰의 문자 메시지로 이어졌다. 고해상도 카메라를 장착한 스마트폰은 이미 새로운 방식으로 최첨단의 의사소통 방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미 순수하게 '문자'만 보내는 방식은 대체되고 있다고 봐요." 버팔로대학교의 스테파논 교수는 말한다. "스냅챗은 필터를 써서 우리 모습을 이상화시킬 수 있게 해주죠. 스냅챗이 인기를 얻고 있는 걸 보세요."

스냅챗의 일간 사용자 수는 2014년부터 매 분기마다 증가했고 2018년 1분기에는 전세계에서 2억 명에 가까운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와 유튜브 블로거 그리고 리액션 '움짤'의 세계는 매우 비주얼 중심적인 의사소통의 문화를 만들었다. 단순한 문자 메시지가 아니다. 셀카나 인스타그램 부메랑, 각종 스티커와 특수효과 문자들이 더해진다.

"전문가로서 저는 거의 20년간 학생들과 함께 해왔습니다." 로리셀라는 말한다. "이젠 많은 것들이 비주얼 중심이 됐어요. 문자 메시지는 순전히 단어로만 이뤄져 있죠. 이젠 제 딸의 관심을 끌려면 스냅챗으로 메시지를 보내요. 웃기는 표정으로 셀카를 찍은 다음 '쓰레기 봉투 좀 밖에 내다줄래?'라고 쓰죠."

스마트폰을 함께 살펴보는 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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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의 삶에서도 이를 느낀다. 페이스북 메신저로 오는 메시지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답장을 하지 않은 다음 나중에 이에 대해 죄의식을 느낀다. 어쩌면 이미 이것들도 이메일처럼 돼 버린 건 아닐까?

그러나 우리의 비탄에도 불구하고 이메일은 지킬만한 무언가를 제공한다.

"이메일이 침체되면서 하나 잃고 있는 게 있어요. 누구도 이메일을 정말로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게 그겁니다." 아이보리는 말한다. "이메일을 대체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술이나 애플리케이션은 누군가의 개인 소유입니다. 스냅챗을 만드는 스냅에도 CEO가 있고 페이스북에도 CEO가 있죠. 좋든 나쁘든 간에 우린 위대한 공공 웹 기술 중 하나를 잃고 있는 거에요." 물론 누군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핫메일을 소유하고 있고 구글이 지메일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메일이라는 것의 지적 개념은 특정 앱이나 특정 형태의 문제 메시지가 그런 것처럼 특정한 기업의 소유물이 아니다.

사람들이 다시 이메일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자 메시지가 앱 기반 커뮤니케이션 도구에 잠식된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이 사기업들이 정한 규칙에 더 많은 제한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자 메시지의 운명은 이메일이 그랬던 것처럼 업무와 연관될 때만 암울해질 것이다.

"상사가 당신한테 문자를 보낼 수 있게 되면" 문자는 끝이라고 모리슨은 말한다. 이제 문자도 재미없어지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칵테일 파티를 벌이기로 하고는 왜 재미가 없는지를 궁금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