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술'을 모으는 사람들

    한국, 중국, 네덜란드의 수집가들이 들려주는 북한의 시각문화 이야기
    그들은 대체 왜 북한 미술을 모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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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일 서울시립미술관은 통일을 주제로 한 전시를 시작했다.

    주제는 ‘통일’이지만 총 79점 중 북한 미술품은 단 3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 미술품을 단 1점도 전시하지 않는 방안도 고려됐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에서 북한 미술에 대해선 관심이 그다지 높지 않고 견해도 다양하다.

    일각에서는 북한 미술은 선전물이고 창의적, 미적,
    기술적 수준도 크게 높지 않다고 보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북한 미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마지막 보루’이며
    저평가되어 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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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출신 화가 반 고흐는 “우리는 오직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다”라고 사망 당시 갖고 있던 편지에 썼다고 한다.

    북한 작가들은 비교적 폐쇄되고 고립된 상황 속에서 작품 활동을 하지만, 그들도 그림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그런 맥락에서 과연 북한 미술의 미적 가치, 소장 가치는 얼마나 있을까?

    최창호의 '노동자'

    최창호의 '노동자'

    문소영 성신여대 겸임교수이자 미술 기자는 “(한국이) 북한 미술을 더 많이 알 필요는 있다”며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한 사회의 역사와 철학, 집단적 미감의 시각적 증거인 미술작품을 연구하고 수집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북한 미술을 대거 수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과 유럽, 미국 등에 있는데, 이들은 “북한 미술은 특이하고 다른 동시대 미술과 다르다”라고 주장한다.

    북한 미술을 연구하는 문범강 조지타운대학교 미술과 교수는 사실 북한 미술 중 가장 북한다운 미술은 ‘주제화(사회주의 이념을 표방한 작품)’라고 한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주제화’에 중점을 둔 북한 미술품 전시는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BBC 코리아는 한국, 중국, 네덜란드에 있는 북한 미술 수집가에게 연락해 그들의 북한 미술 소장품 중에 가장 아끼는 작품 하나를 공유해 달라고 했다. 그 작품에 얽힌 이야기, 북한의 시각문화, 미학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물었다. (단, 구입 경로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꺼렸다.)

    수집가,
    그들의 이야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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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성백 (중국 거주)

    단둥의 사업가인 류성백 씨는 중국인 아버지와 북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1984년부터 1994년까지 북한에서 자랐다. 20년 넘게 북한 미술을 수집하고 있다. 북한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예술을 사랑해서 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BBC 코리아에게 ‘마식령 스키장 건설’(2013)을 공유했다. 이 작품은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린 남북미술전 ‘백두에서 한라까지’에 전시될 뻔 했으나 반대에 부딪혀 전시할 수 없었다고 한다.

    관계자들은 마식령 스키장이 가진 의미 때문으로 추정한다. 마식령 스키장은 2013년 김정은 국방위원장 집권 초기, 스위스에서 10대를 보낸 그의 지시로 6개월 만에 완공되었다. 그런 곳을 거대한 작품으로 소개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거다.

    ‘마식령 스키장 건설’(2013)과 류성백(오른쪽)

    ‘마식령 스키장 건설’(2013)과 류성백(오른쪽)

    어떤 작품인가?

    “등장인물의 표정, 행동 하나하나를 보면 그 사람들이 지양하는 목표, 건설 완공을 위한 의지를 볼 수 있다. 또 이 그림은 현실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현실의 창조물이다. 스키장을 건설하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오직 사람의 힘으로 세운 것이다.”

    소장하게 된 경위는?

    “창작사가 (내게) 가지고 와서 사게 됐다. 20년간 평양 만수대창작사도 자주 가고 화가들도 만났고 해서 좋은 그림이 있으면 나에게 가지고 온다. 보고 ‘이것이다’했다.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이고 대대손손 물려줄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미술의 매력은?

    “북한 미술은 독특하고 그들만이 가진 개성이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추상 미술이 대세인 듯하다. 하지만 북한 그림은 그와 다른 뭔가가 있다. 그들만의 독창적인 창조물을 만들었다.”

    수집가,
    그들의 이야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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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상균 (한국 거주)

    최상균 전 대구예술대 교수는 재미 성악가이다. 그가 1990년에 처음 평양을 방문하게 된 것도 공연 때문이었다. 그 방문에서 우연히 북한 미술품을 보게 되었고 여태껏 봐온 작품과는 달리 직설적인 것에 큰 매력을 느껴 당시 10점의 작품을 샀다고 한다.

    그 이후에 20번을 더 갔고 현재 500여 점이 넘는 북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기획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아트 프롬 평양(Art from Pyongyang)'전이라는 북한 미술 전시를 주선했고 그 외에도 뉴욕, 심양 등에서 남북한 미술교류전을 진행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는 한국에서 열린 ‘백두에서 한라까지’전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와 같은 국제 행사에서 북한 미술품을 전시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그의 소장품을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전시관을 만들고 싶어 한다.

    공유하고 싶은 작품으로는 주저없이 정창모 작가의 ‘내금강 보덕암’(1999)을 꼽았다. 정 작가는 선우영 작가와 함께 ‘조선화 (북한 특유의 동양화)’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정창모 작가는 1931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6.25전쟁 때 월북했다. 이후 만수대창작사 소속 작가로 활동하며 ‘공훈예술가’, ‘인민예술가’ 등 작가로서의 최고의 칭호를 받았다.

    어떤 작품인가?

    “(금강산의) 내금강을 그린 것인데 정창모 선생의 국보급 작품이다. 일부 향토사학자들은 겸재 정선 산수화의 맥을 이었다고 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전주에서 열린 조선화 전시에 선보였는데, 전주 출신인 선생이 평생 고향에서 전시회를 하고 싶어했던 것을 생각하면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소장하게 된 경위는?

    “정창모 선생께서 직접 주셨다. 이전에는 작품을 평양에서 직접 샀지만 최근 들어 중국에서 산다. 중국에도 좋은 작품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북한의 국보급 작품이 중국에 가 있다. 중국에는 화랑에도 북한 미술품이 있고, 경매에도 나오고, 또 작가들이 직접 작품을 갖고 오기도 한다.

    북한 미술의 매력은?

    “1950~1960년대 이중섭, 이쾌대 등을 비롯해 일본 유학을 다녀온 대가들이 많았다. 이들 중 일부는 월북했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해방공간에서 암울하다 보니 사회주의에서 구원을 찾고자 한 지식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보고 왜 ‘빨갱이’ 미술을 모으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북한 미술의 중요성, 역사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색깔 논쟁을 하기 전에 역사를 보존하고 연구하는 것을 존중해야 한다.”

    수집가,
    그들의 이야기 ③

    김인석의 ‘버스정류소의 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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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스 브루젠 (네덜란드 거주)

    프란스 브루젠은 네덜란드예술재단 ‘스프링타임 아트 재단’ 대표다.

    스프링타임 아트 재단은 유럽에서 여러 차례 북한 예술 전문 전시회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2015년에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국제 순회 북한 미술전'을 개최했다.

    브루젠은 주로 평양에서 작품을 산다. 스프링타임 아트 재단 홈페이지에는 컬렉션을 ‘개성 컬렉션’이라고 명명했지만, 작품이 개성 것이라는 건 아니다. 브루젠은 개성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설명했다.

    개성은 한국과 북한의 경제협력과 교류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있었던 곳이다.

    김성희의 ‘봉산탈춤’

    김성희의 ‘봉산탈춤’

    아트 딜러였던 브루젠은 처음엔 순수히 호기심으로 북한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2300만명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반드시 재능있는 예술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7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그의 컬렉션은 2500여 점이 넘는다.

    그는 BBC에 2006년 베이징 국제미술전에서 9천 개의 작품 가운데 대상을 받은 김성희의 ‘봉산탈춤’과 탁효연의 ‘비 오는 거리’(2006)를 공유했다. 특히 그의 부인과 가깝게 지내는 김성희의 경우 북한에서 ‘팝스타’에 비유할 정도로 유명하고, 이례적으로 “창작의 자유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어떤 작품인가?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이 사는 평양의 일상을 보여준다. 탁효연은 젋은 작가지만 매우 인정받은 작가다. (평양 시내 만수대창작사에) 꽤나 큰 작업실을 갖고 있는데 젊은 작가가 그런 작업실을 갖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소장하게 된 경위는?

    “나는 작품을 고를 때 주로 예술성과 기술을 본다. 이 작품은 두 부분에 있어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탁효연은 젊은 작가에 속하는데 이들은 과거 대가들과 달리 자연이 아닌 실제 삶이 진행되고 있는 공간에 집중한다.”

    북한 미술의 매력은?

    “북한 작가들은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나다. 김성희의 ‘봉산탈춤’의 경우 한번의 붓 터치로 가로 120cm, 세로 163cm 작품을 만들었다. 만약 비무장지대(DMZ) 북쪽과 또 남쪽에서 전시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 김성희 작가의 경우 런던에서 개인전을 하는 것이 꿈이다.”

    북한 미술에 궁금한 6가지

    김철의 ‘눈 속을 달리는 범’(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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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북한 미술은 소장 가치가 과연 있을까?

    대부분의 한국 미술계 관계자 및 평론가들은 그들이 접한 북한 작품이 파편적이고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 시각문화 전반을 평하기가 조심스럽다고 한다.

    또한 외화벌이를 위해 생산된 작품과 북한의 지도층을 위해 제작된 작품의 편차가 매우 크다고 한다.

    북한 밖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접하는 북한 미학은 전자인데 전자의 경우 익명을 원한 한 미술계 인사에 따르면 “예술혼”과 “깊이”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후자를 많이 접한 문범강 교수의 의견은 다르다. 또 언제 제작된 것이냐에 따라 평가가 많이 다르기도 하다.

    이 같은 편차에 대해 문소영 교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도 얼마나 민중이 처한 문제를 잘 녹여내고 정서적 설득력이 있느냐에 따라, 또 화가가 그렇게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수준이 매우 다르다”며 “확실한 것은 극도로 제약과 검열과 탄압이 심한 정권에서는 작품의 질도 낮아진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념과 정치적 목표를 전달하는데 중점을 둔 예술 사조를 말한다.)

    Q. 국내 북한 미술품 전시 현황은?

    북한 미술품 전시는 대규모는 아니더라도 간간히 열려왔다.

    가장 대중적이었던 전시로는 2015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북한프로젝트’가 있었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북한 유화, 포스터 등이 전시됐었다.

    단 이념이 강하게 표출된 작품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전시는 없다는 게 주된 의견이다.

    최상균 전 대구예술대 교수의 경우, 한 지자체와 북한 미술 전시관을 지으려 하다가 작품 선정 등에 대한 이견으로 잘 안됐다며 일부의 “냉전적인 사고방식”을 비판했다.

    Q. 최근 들어 북한 사회에 변화가 있듯, 북한 시각문화에도 변화가 감지될까?

    박계리 홍익대학교 연구교수는 조각상의 경우 김정은 시대에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입체상에 색채의 사용, 웃고 있는 표정, 그리고 김일성상의 경우 젊어진 대상의 나이”라고 한다.

    북한 근현대미술 전문가인 그는 “김정은 시대에 만들어진 조각상은 김정일 시대의 ‘숭엄함’보다 ‘생동감’이 더 강조되고 있다”고 한다.

    2014년에 연 평양의 문수물 물놀이장에 있는 김정일 천연색 석고 입상이 한 예다.

    한편, 지난 8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도발에 대응해 대북 결의안을 채택했는데, 제재 대상에 만수대창작사도 포함됐다.

    하지만 BBC 코리아가 인터뷰한 수집가들은 아직은 북한 미술을 모으는 데 큰 지장은 없다고 했다.

    “김정은 시대에 만들어진 조각상은
    ‘숭엄함’보다 ‘생동감’이 더 강조되고 있다”
    - 박계리 교수

    장길남의 ‘추억’(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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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북한 미술품은 주로 어떻게 거래되나?

    해외에 판매되는 북한 미술품은 주로 ‘창작사’라는 곳에서 만드는데 만수대창작사, 함흥창작사, 신의주창작사 등 있다.

    이 중 1959년 설립된 만수대창작사는 최고로 꼽히고 4000여 명의 작가가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1980년대부터 북한 미술을 모아온 한 수집가에 따르면 만수대창작사는 문화성이 아니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직접 관여한다고 한다.

    만수대창작사의 경우 베이징에 조선만수대창작사미술관이란 곳에서 작품을 일부 전시하고 있고, 이탈리아 업체가 운영하는 만수대창작사 공식 웹사이트에서 영어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BBC 코리아가 인터뷰한 수집가들의 경우 북한 혹은 중국에서 작가한테 직접 사거나 창작사를 통해 샀다.

    "만수대창작사는 문화성이 아니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직접 관여한다"
    - 한 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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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북한 미술에는 모사품이 많다는데?

    문범강 교수에 따르면 북한에는 ‘모사작’이 있는데 이는 두 부류가 있다.

    첫째는 일반 작가가 국보급 작품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인데 배움을 위한 것이고 본인의 사인을 넣는다는 측면에서 ‘위작’이 아니라 ‘모작’이다. 모작도 판매가 되는데 원작보다 당연히 저렴하다. 단 이 때문에 컬렉터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

    두 번째는 국가가 공인해서 국보급 작품의 모작을 만드는 건 데 주로 해외 전시를 위해서 제작한다. 문범강 교수에 따르면 북한은 국보급 작품을 3점까지만 해외 전시에 보내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나머지는 모작을 보낸다.

    Q. 아프리카, 동남아 등에 가면 북한 예술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유는?

    만수대창작사 소속인 만수대 해외개발그룹이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나미비아, 베냉, 보츠와나, 콩고민주공화국, 짐바브웨, 에티오피아, 앙골라 등의 대규모 기념물 제작에 참여했다.

    대부분 그 나라 독재자들의 동상이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크기와 특유의 포즈가 특징이다.

    만수대창작사는 해외에 박물관도 짓는데, 캄보디아에 만든 ‘앙코르 파노라마 박물관’과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10월 전쟁 파노라마 박물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