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택배 없는 날’… 기사들은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택배 배달은 계속된다

사진 출처, Taek-A/YouTube

사진 설명,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택배 배달은 계속된다
    • 기자, 윤인경
    • 기자, BBC 코리아

"다음 주 물량이 계속 밀리고 밀려서 일주일 내 물량이 많을 텐데…"

오늘은 '택배 없는 날'이다. 이에 따라 전국 택배기사들은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 연속 쉴 수 있게 됐다. 주 6일 근무하며 한해 60일 정도만 쉴 수 있는 택배기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택배 산업이 생긴 지 28년 만에 얻은 휴가지만, 한 택배 기사는 걱정이 앞섰다. 택배를 하루 쉬어도, 택배 주문이 평소와 같으면 결국 그 일을 다 감당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왜 생겼나

지난달 한국통합물류협회가 8월 14일을 공식 휴무일로 정해 택배 노동자들에게 16일까지 3일간 연휴를 보장하기로 했다. 전국택배연대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인 거다.

지난달 18일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택배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렸고, 이후 한국우정본부도 동참하며 파급력이 향상됐다.

우체국과 CJ대한통운·한진·롯데·로젠 등 5개 택배사에 소속된 택배 노동자의 95%인 4만 명이 오늘 공식 휴무한다.

SNS에서도 '#늦어도괜찮아' 캠페인이 등장했다. 택배 노동자를 응원하고 온라인 주문도 하루 쉬어가자는 취지다. 소비자만이 아니라 일부 온라인 쇼핑몰 운영자들도 전날(13일)을 '주문 쉬어가는 날'로 정하고 연대에 나섰다.

14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 택배상자가 가득 쌓여 있다

사진 출처, 뉴스1

사진 설명, 14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 택배상자가 가득 쌓여 있다

배송 서비스는 17일부터 다시 시작된다. 이날은 임시공휴일이지만 택배업계는 정상 근무할 예정이다.

택배 노동자 금종명 씨(35)는 BBC 코리아에 '택배 없는 날'의 좋은 취지는 알지만, 발 뻗고 쉬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평일에 하루 쉰다고 했을 때, 고객들이 하루 인터넷 주문을 안 해주시면 그 효과가 나지만, 현실적으로 모두가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 하루 치 물량이 그대로 쌓인다고 생각해주시면 된다"고 설명했다.

쉬는 것이 어려운 이유

택배사가 업무를 멈추는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택배기사는 따로 휴가를 내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건당 배송 수수료를 받으면서 근무하는 사실상 자영업자다. 택배기사는 택배회사 대리점과 업무위탁계약을 맺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노동자)여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물론 연차유급휴가 보장 대상도 아니다.

합법적으로 주 52시간 이상 초장시간 근무가 일상화된 이유다.

특고노동자는 자율적으로 휴일을 정하면 쉴 수 있다. 하지만 업무 구조상 이를 시행하기 어렵다는 게 택배기사들의 설명이다. 질병·경조사 등의 사유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루라도 쉴 경우, 개인에게 할당된 배송물량이 쌓이기 때문이다.

택배기사는 사실상 자영업자다

사진 출처, 뉴스1

사진 설명, 택배기사는 사실상 자영업자다

금 씨의 경우, 한 기사가 빠지면 같은 대리점의 다른 기사들이 해당 물량을 나눠서 일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도 대리점마다 분위기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셔 상을 치러야 하는 경우도 있고, 저 같은 경우엔 아내가 임신했을 때 갑자기 수술을 해야 하는 긴급 상황이 있었어요."

그는 "서로 상부상조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리점이 있지만, 개인플레이를 하는 대리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많은 택배기사가 연차·휴가 제도가 없이 본인이 직접 다른 배송차량(용차)을 수배해 공백을 메꾼다. 하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비용이 만만찮아 자주 이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코로나19와 택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비대면 소비 확대로 택배 물량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0~40% 증가했다.

금 씨도 이를 몸소 느낀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물량이 15%~20% 늘었다고 말했다.

"구역이 넓어지지 않았는데도 양이 늘었어요. 화요일 기준 작년 이맘때는 250개를 배송했다면, 요즘은 300개가 넘는 날도 있으니까요."

그는 배송 시간보다는 '까대기'라고 불리는 분류작업 시간이 늘었다고 말한다. 그는 추석을 앞두고 9월부터 물량이 불보듯 뻔하게 더 늘 것으로 내다봤다.

전국택배연대노조원들이 8월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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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지난 7월, 전국택배연대노조원들이 8월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18년 한국교통연구원의 '택배서비스산업 일자리 실태 조사 분석'에선 택배노동자들이 하루평균 12.7시간, 월평균 25.6일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상반기 택배량이 폭증하면서 택배노동자들의 과로·과로사도 심각해졌다.

12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택배업 산업재해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 6월까지 산재 승인을 받은 택배기사 사망자 9명 중 7명이 모두 과로로 인한 심혈관계 질환으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6월까지 집계된 택배노동자의 산재 사고 건수를 기준으로 2020년 상반기 산재사고율은 43%로 추산됐다. 지난 7년 동안 집계된 산재 사고율(21.4%)의 2배인 수치다.

지난 11일 국회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마련 촉구 유가족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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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지난 11일 국회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마련 촉구 유가족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국회에서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택배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지난 6월 18일 택배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아프면 나만 손해'

택배노동자들은 '택배 없는 날'과 같은 휴식이 '이벤트성' 처방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택배기사 업무는 제품을 직접 고객 집 앞까지 배송해야 하는 육체노동이자 정신노동이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거다.

금 씨는 배달을 업으로 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달은 계속된다.

택배 기사들에게 비가 많이 오는 날을 특히 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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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택배 기사들에게 비가 많이 오는 날을 특히 더 힘들다

그는 "나 같은 젊은 사람도 1년 내내 근육통을 달고 산다"며 "나름 배달 양을 조절하면서 근무를 하는데도 몸이 너무 아픈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비 오는 날, 미끄러지는 거 조심해야 해요. 다리라도 부러져서 2주가량 쉬면 2주 동안의 급여가 없어지잖아요. 몸 정말 조심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