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친한 친구의 배신 … '제 삶의 모든 순간을 음란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금발의 여성

사진 출처, Nikki Short/BBC

사진 설명, 호주에서 교사로 일하는 한나 그룬디는 자신의 딥페이크 이미지가 담긴 웹사이트를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 기자, 티파니 턴불
    • 기자, BBC News, 시드니

주의: 불쾌한 언어 표현 및 성폭력에 대한 묘사가 포함돼 있습니다

따뜻했던 2월의 어느 날 밤, 호주 시드니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한나 그룬디(35)는 불길한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이 익명의 발신자는 "당신이 봐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이메일을 보낸다"고 밝히고 있었다.

이 메일에는 굵은 글씨로 '불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이 적힌 링크도 첨부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혹시 사기성 메일은 아닌지 걱정되어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보다 심각했다. 해당 링크를 클릭해보니 한나를 대상으로 한 상세한 성폭행 판타지, 폭력적인 협박, 조작된 음란물이 가득한 웹사이트가 연결되었다.

한나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 안에 내가 묶여 있었다"면서 "화면 속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새장에 갇혀 있었다"고 했다.

이 중에는 조잡한 솜씨로 한나의 이름과 성이 적혀 있는 이미지도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 계정명과 살고 있는 교외 지역도 함께 공개된 상태였다. 나중에는 전화번호마저 유출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이메일은 한나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았다고 비유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한나는 스스로 수사관이 되어 가깝게 지내던 지인이 저지른 끔찍한 배신을 밝혀냈으며, 자신의 삶을 바꿀 법정 소송을 진행하게 된다. 해당 소송은 호주의 법률 기준마저 바꿔놓게 된다.

'충격 그 자체'

이 웹사이트의 이름은 '한나의 파멸'로, 상단에 마련된 어떻게 한나를 괴롭히고 싶은지 묻는 설문조사에는 수백 명이 참여한 상태였다.

그 밑으로 한나의 얼굴을 합성한 끔찍한 사진 600여 장이 줄줄이 이어졌다. 사진 중간중간 소름 끼치는 협박성 메시지도 적혀 있었다.

메인 사진에는 '나는 이 걸레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녀의 집에 숨어서 기다리다가 혼자가 되면 뒤에서 붙잡고 … 그녀의 몸부림을 느끼고 싶다.'

벌써 3년이 지난 일이지만, 한나와 연인 크리스 벤츄라(33)는 함께 이 웹사이트를 열어봤을 때 느꼈던 "충격 그 자체"를 생생히 기억한다.

거실에서 페퍼민트 차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있던 한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눈을 크게 뜨며 "보자마자 내 신변이 위험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해당 웹사이트를 구석구석 살피던 크리스는 한나 외에도 가까운 다른 친구들을 포함해 최소 60명에 달하는 다른 여성들의 사진도 발견했다. 피해자 대부분이 시드니 출신이었다.

한편 한나와 크리스는 딥페이크 음란물 제작에 사용된 이 사진들의 출처가 여성들의 개인 SNS 계정임을 금방 알아챘다. 즉, 범인은 이 여성들의 지인인 것이다.

범인을 밝혀내겠다는 간절한 마음에 한나와 크리스는 몇 시간 동안 피해 여성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이들의 SNS 친구 목록을 검색해 겹치는 인물이 있는지 뒤졌으며, 증거로 사용할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했다.

그렇게 4시간 만에 잠재적 용의자 3명을 추려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바로 제외해버린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대학 시절부터 가깝게 지낸 앤드류 헤일러라는 남성이었다.

대학 캠퍼스에 있는 술집에서 동료로 만난 한나, 크리스, 앤드류는 금세 친해졌다. 그리고 '관리자'라는 별명의 앤드류는 이 세 사람의 관계가 더욱 돈독하게 이어주는 접착제와도 같은 인물이었다.

한나에 따르면 앤드류는 사려 깊고 다정다감한 사람으로, 술집에서 여자 친구들을 잘 챙겨주고, 이들이 잘 귀가했는지 살펴주는 남자였다.

종종 휴가도 같이 보낼 정도로 정기적으로 만났던 세 사람은 서로를 아끼고 신뢰했다.

한나는 "앤드류를 아주 친한 친구로" 여겼다.

"우리는 그가 좋은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곧 한나와 크리스의 잠재적 용의자 후보는 단 1명으로 좁혀졌으니, 바로 앤드류였다.

두려움과 수사 지연

다음 날 아침, 한나는 곧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충격과 공포 및 "순진한 낙관주의"가 섞여 있는 상태였다.

크리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는 그날 당장 경찰이 앤드류를 체포하리라 믿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오히려 경찰들은 한나를 무시하고 가볍게 여겼다.

뉴사우스웨일스(NSW)주 경찰관은 오히려 한나가 앤드류에게 무슨 짓을 했냐고 물었다.

심지어 경찰은 한나에게 앤드류에게 직접 그만두라고 말해보는 것은 어떤지 제안하기도 했다. 아울러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있는 한나의 사진을 가리키며 "이 옷 잘 어울린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NSW 경찰은 한나의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의견을 묻는 BBC의 요청을 거부했다.

한나는 이 과정에서 자신이 "별것도 아닌 일을 크게 벌이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인생이 뒤집히는" 일이었고, 경찰이 도와주리라는 믿음도 사라졌다.

그렇게 계속 사건 처리가 늦어지면서 결국 '호주 e안전 위원회'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규제 기관으로서 그저 콘텐츠를 삭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었다.

절망에 빠진 한나와 크리스는 결국 직접 변호사를 고용하고, 디지털 포렌식 분석가에게 의뢰했다.

그러는 동안 앤드류의 귀에 이 일이 들어가지 않도록, 자신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세상과 자신들을 격리했다. 한나는 당시를 회상하며 "내 세상은 점점 좁아졌다. 사람들과도 대화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극심한 공포와 외로움이 이들을 덮쳤다.

"(우리가 믿었던) 그가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모든 믿음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앤드류가 실제로 저를 찾아와 성폭행을 저지르거나 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집안 곳곳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했으며, 한나는 위치 추적 기기를 몸에 지니고 다녔다. 아울러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전자시계를 24시간 차고 다녀 만약 자신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거나 멈추면 누군가가 알 수 있도록 했다.

"누군가 들어올까 봐 무서워서 창문도 열지 못했다"고 한다.

"침대 옆 탁자에는 칼을 두고 잤습니다. '만약?'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한편 경찰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낀 크리스는 연인 한나를 포함해 피해자가 된 다른 친구들에 대한 범죄 수위가 높아지지는 않는지 확인하고자 계속 해당 웹사이트를 감시해야만 했다.

수사의 비밀을 유지하고자 이 친구들에게는 아직 알리지 않은 상태였기에 두 사람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한나는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옳은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러다 수사가 중단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나와 크리스는 더 자세한 포렌식 보고서를 받아내고자 더 큰 사비를 들였다. 이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고 앤드류의 범행을 막고자 개인적으로 지출한 돈은 최종적으로 2만호주달러(약 1800만원)가 넘는다.

아울러 경찰 감시 단체에 정식으로 항의하겠다고 위협했다. 마침내 새로운 형사가 배정되고, 이후 2주 만에 경찰이 앤드류의 집을 급습했다.

그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앤드류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에 안도감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 한나는 마찬가지로 피해자인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검정색 상의를 입은 무표정한 얼굴의 여성

사진 출처, Nikki Short/BBC

사진 설명, 제시카 스튜어트는 친한 친구였던 앤드류가 "사려 깊고, 위협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제시카 스튜어트는 앤드류가 자신의 사진을 이용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된 순간을 떠올리며 "속이 울렁거렸다"고 회상했다..

"정말로 더럽혀진 기분이었습니다 …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제시카에게도 "가족"처럼 아끼던 친구가 사실 범죄의 배후라는 사실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앤드류는 언제나 "겸손하고, 사려 깊은" 친구로, 힘들 때 생각나는 사람이었다.

"그런 친구가 이번 사건의 범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정말 힘들었습니다."

기념비적인 사건

해당 사건은 호주에서도 미지의 영역이었다.

최소 10년 전부터 전문가들이 기술의 발전이 AI 범죄 증가로 이어지리라 경고해왔으나, 전 세계 당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딥페이크 피해자들(대부분이 여성이다)은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이다.

앤드류가 체포된 2022년 당시만 해도 뉴사우스웨일스주를 포함해 호주에서는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하거나 공유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지 않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는 전례 없는 대규모 사건이었다.

이에 앤드류 헤일러(39)는 온라인 통신망을 통해 타인을 위협하거나, 괴롭히거나, 불쾌감을 주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는 대다수의 온라인 범죄에 흔히 적용되는 경범죄 항목이다.

사람들은 한나에게 앤드류에게 제대로 된 처벌이 내려지리라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그가 그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모습만을 보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나를 포함해 소송하기로 결정한 여성 26명은 그에게 제대로 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해 열린 앤드류의 선고 공판에 한 명씩 차례대로 나와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제시카는 법정에서 "당신은 내 우정을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내 삶이 안전하다는 느낌 자체를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당신으로 인해) 세상이 낯설고 위험하게 느껴지며, 끊임없이 불안하고, 늘 악몽에 시달립니다."

"또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하게 느껴지고, '이 친구도 당신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끊임없이 자문하게 됩니다."

앤드류가 피해 여성들에게 사과하려고 하자 제시카와 한나는 그 자리를 견딜 수 없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한나는 "그가 내게 무슨 말을 하든 상황이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을 그가 알길 바랐다"고 했다.

한편 법정에서 앤드류는 이러한 이미지 제작은 자신 내면의 정신적으로 "어두운" 부분을 발산하는 "출구"로, 이를 통해 자신의 "힘이 커진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그것이 실제 해를 끼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저는 정말 끔찍한 일을 저질렀고, 정말 죄송합니다."

해당 사건을 맡은 제인 컬버 판사는 그의 이 같은 뉘우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 반성하는 모습은 있으나", 자신이 "수없이" 저지른 이 "충격적인" 범죄가 초래한 "심각하고도 지속적인" 고통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앤드류에게 징역 9년 형을 선고했다. 기념비적인 판결이었다.

제시카는 "법정에서 숨을 들이마셨고 … 정말 안도했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한편 오는 2029년 12월에 가석방 신청을 할 수 있는 앤드류는 항소할 의향을 밝혔다.

포옹하는 두 여성의 모습

사진 출처, Ethan Rix/ABC News

사진 설명, 지난해 앤드류에게 징역형이 선고된 직후 포옹하고 있는 한나와 제시카의 모습

호주 로열 멜버른 공과대학교에서 기술과 젠더 관련 법률을 연구하는 니콜 섀클턴 박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 "전례 없는" 사건이 향후 사건의 중요한 법적 기준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섀클턴 박사는 법원이 이번 사건은 "그저 온라인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며, 이러한 행위는 "여성에 대한 현실 세계에서의 폭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섀클턴 박사와 전문가들은 호주를 포함해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AI 사용을 적극적으로 규제하거나, 오남용 사례를 조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근 호주는 국가 차원에서 딥페이크 음란물 제작과 공유를 범죄로 규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법적으로 허술하거나, 딥페이크 음란물을 아예 범죄로 규정하지 않는 국가들이 많다. 영국의 경우 딥페이크 음란물 공유만 불법일 뿐, 이를 제작하거나 홍보하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관련 법이 곧 개정될 예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범죄와 관련해 경찰관에 대한 교육 및 자원이 부족하기에 한나처럼 많은 피해자들이 사설 탐정에 의존하거나 스스로 파헤쳐야 한다. 처음 한나에게 이번 사건을 제보한 것도 어느 사설 탐정이었다.

NSW 경찰은 성명을 통해 AI 범죄 수사에는 "자원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어려움이 많다면서, 최근 "모든 경찰관이 이러한 유형의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e안전 위원회, IT 기업과 협력하여 딥페이크 남용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안전 위원회의 줄리 인먼 그랜트 위원장은 BBC에 보낸 성명서를 통해 피해자 대부분이 이 같은 끔찍한 컨텐츠가 삭제되길 최우선으로 바란다면서 e안전 위원회는 "매우 높은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e안전 위원회는 범죄 수사 혹은 법적 처벌을 추진할 권한은 없다고 덧붙였다.

줄무늬 상의를 입은 여성과 체크무늬 상의를 입은 남성

사진 출처, Nikki Short/BBC

사진 설명, 한나와 크리스는 이 같은 사건에 대한 경찰의 태도가 바뀌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편 크리스는 "법은 언제든 고쳐질 수 있지만, 경찰이 무능하다면 …"이라며 말을 꺼냈다.

"물론 우리가 가장 분노하는 상대는 앤드류입니다. 그러나 경찰들을 집요하게 괴롭혀야만 이번 사건의 정의를 구현할 수 있었다는 게 역겹습니다."

크리스와 한나는 미래의 다른 피해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겪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지난 6개월 동안만 하더라도 NSW와 빅토리아주에서 각각 다른 사건으로 남학생 2명이 같은 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딥페이크 음란물을 대량으로 제작한 혐의로 경찰에 신고된 바 있다.

몇 년간의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한나이지만,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고자 노력 중이다.

하지만 앤드류가 항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삶을 되찾고 정신 건강을 회복하려는 한나를 괴롭힌다.

무릎을 모아 끌어안은 자세로 한나는 그에게는 합당한 처벌이 내려졌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저와 다른 여성들은 영원히 … 영원히 (합성 음란물은) 인터넷 상에 있을 것이니까요."

한나는 지금도 피해 사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지워주는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친구, 동료, 학생들, 자녀 등 자신을 아는 누군가가 이 사진을 보게 되진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들을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게 가장 두렵다고 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기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 것입니다. 반려동물을 맞이하고, 집을 사고, 결혼을 약속한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공유했죠."

"그리고 그는 그런 모든 순간을 음란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그 사진을 볼 때마다 … 성폭행당하는 제 모습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