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대장' 김일성을 기억하는 102세 고향 후배
백마 탄 항일투사, 영원한 태양, 북한의 아버지, 위대한 지도자...
북한 김일성을 수식하는 수많은 표현이 있지만, 그를 '골목대장', '동네 형' 등으로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올해 101세를 맞은 1세대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북한 김일성 주석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다.
광복 직후 만경대 고향에서 김일성과 식사를 하기도 했던 김형석 교수가 BBC와 만나 북한 정권의 수령이 되어버린 고향 선배 '김성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골목대장 김성주
"제가 김일성을 처음 만났을 때는 25세였고요. 김일성보다는 본 이름이 김성주였는데..."
김형석 교수는 김일성, 당시 김성주의 이름 석 자를 익히 듣고 자랐다.
두 사람은 어릴 적 초등학교 선후배 사이였고, 가족끼리도 가까웠다.
김형석 교수의 친척 할머니가 젖이 안 나오는 김성주(김일성)의 어머니를 대신해 젖을 물릴 정도였다.
그는 김일성을 어릴 적부터 키가 크고, 운동을 좋아하며, 친구들을 끌고 다니는 소위 "골목대장"으로 기억했다.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항상 축구팀은 김일성이 주장을 맡았다고 하더라고요.”
“골목대장이래요. 자기들 다 끌고 다녔다고.”
다만 김형석 교수는 그와 나이 차이가 있는 탓에 친하지는 못했다.
둘의 첫 공식적 만남은 김형석 교수가 25세가 돼서야 이뤄졌다.
두 사람은 김일성이 북한 정권을 위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하기 몇 주 전 아침 식사(조반)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조반은 만주에 항일 운동을 다녀온 김일성의 귀환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됐다.
“다 합해서 한 10명 정도가 만났어요. 교회 장로님들이 중심인데, 나도 같이 가자 그래서 간 겁니다.”
김형석 교수는 당시까지만 해도 김일성이 김성주라는 원이름으로 활동했으며, 특별한 점은 없었다고 회고했다.
다만 김형석 교수는 마을 어른들이 독립운동을 하던 김일성에게 나라의 미래를 물으니 '초등학생이 선생님에게 숙제를 발표하듯' 답한 것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 물어보셨어요.”
“그러니까 초등학교 학생들이 선생님들에게 숙제를 발표하는 것 같이 '앞으로 우리나라가 해야 할 일은 첫째로 친일파 숙청이고, 두 번째가 모든 국토를 국유화하는 것이고, 세 번째가 모든 기업체를 국영화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김형석 교수는 또 김일성을 "지식보다는 의지가 강하고, 목적의식이 강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는 이어 지금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이 아버지 김정일보다는 할아버지 김일성을 닮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일성이 나타났다고 해서 가니 김성주가 있더라'
둘이 아침 식사를 가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성주는 평양공설운동장에서 김일성으로 나타났다.
"(친구들이) 김일성 장군 보려고 갔는데, 가보니까 김일성이 아니라 우리 동네 성주가 있다고 그래요.
“'하도 이상해서 가까이 가서 보니까 성주야, 틀림없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 예감은 '아, 소련 군정에서 김일성이라는 인물을 만들어서 내놓았구나' 싶더라고요."
"일반 시민들은 의심했죠. 김일성 하면 그래도 50대쯤 된 장군. 군사 경험이 있는 사람일 텐데 30대 젊은이가 나오니까 '가짜다'한 거죠."
그러나 김형석 교수는 혼란기를 틈타 피어오른 공산당은 빠르게 성장했고, 김일성의 정체를 의심하는 여론도 점차 사그라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때는 혼란기였어요. 공산당은 그 안에서 피어올라 오고, 반공산 세력은 다 밀려나고.”
김형석 교수는 곧 공산당 치하에 사라지는 여러 지인을 보며 "내가 여기 더 있다가는 잡혀가거나 감옥에 갈 수밖에 없겠다"라며 월남을 결심했다.
그는 결국 1947년 탈북했고, 직접 참전하지는 않았지만, 남측에서 선생님으로써 6·25 전쟁을 겪었다.
전쟁의 참혹함으로 가족과 친척 여럿을 잃기도 한 김형석 교수는 김일성을 젖 먹여 키웠다는 친척 할머니의 말을 되새기기도 했다.
"친척 할머니가 '그놈, 내 아들 두 놈 다 잡아 죽일 줄 알았더라면 그때 젖꼭지로 콧구멍을 막아서 죽이는 건데 못했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죠."
김일성의 본명을 포함한 정확한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많다.
김일성은 이후 1994년 사망하기 전까지 북한 공산당을 이끌었다.
김형석 교수는 102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의를 이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