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과
싸우는 사람들

1968년 11월 울진·삼척 북한 무장공비 사건의 피해자 고원식 씨의 아들 고석주 씨.

그는 현재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을 상대로 소송 중이다.

고원식 씨는 육군 예비군 소대장이었다. 당시 울진·삼척으로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 토벌 작전을 위해 하룻밤 집을 비운 사이 온 가족이 공비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부모님과 아내, 어린 두 딸 모두 잔혹하게 살해됐다.

강원도 중에서도 특히 접근이 쉽지 않은 평창과 인제, 정선 등 깊은 산골마을에서 수십명의 피해자가 나왔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어린이의 유명한 일화도 그 때의 일이다.

고씨는 처음에는 아버지가 겪은 일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한다.

"사람들도 잘 몰라요. 관련 책에나 이승복이 죽기 전날 일가족 5명이 죽었다는 얘기가 나와요. 저도 어머니가 나중에 얘기해줘서 알았어요."

"그때 할머니, 할아버지, 큰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너희한테 누나도 둘 있었는데 칼로 난자질 당했다고..."

"작은 할아버지가 오열하면서 시신들을 묻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참사 이후 해당 마을에서는 이 일에 대한 언급이 금기시됐다고 한다.

당시 무장공비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북한 체제를 선전하며 공산당 가입을 유도했기 때문에 자칫 ‘빨갱이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당시 피해자는 40여명 가량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수치는 여전히 파악조차 안되고 있다.

고씨의 변호를 맡은 류재율 변호사는 “이런 현실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렇게 많은 민간인이 희생됐는데, 알려진 사람이 이승복 어린이 제외하면 고원식 씨밖에 없어요. 말이 안 되는 거예요."

"한국 정부에 최소한의 피해 호소를 한 적도 없고, 그럴 기회도 없었고 정부가 나서서 조사를 한다거나 그런 사실도 전혀 없더라고요."

한국 정부 산하 진실화해위원회는 2023년에서야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고석주 씨 제공

고석주 씨 제공

사건 이후 고씨의 아버지는 술로 세월을 보냈다. 아버지와 대화를 해본 기억도 별로 없다. 아버지의 오랜 침묵은 그에게 상처로 남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10여 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은 관공서를 찾아가보는 등 아버지 생전에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입밖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부모자식 다 죽이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보훈신청 같은 거 절대 하지 말거라."

"예비군 소대장이라고 육군에서 아버지에게 감사장을 줬더라고요."

"남은 가족들이 왜 죽었겠어요? 며칠 전부터 집을 지켜봤다고 하더라고요. 누구네 집인지 공비들이 알았다는 거죠. 그러니까 아버지가 없는 틈을 노린 거예요."

고씨는 그런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했다.

그가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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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960년대 본격적인 대남 혁명 역량 강화 전략을 수행했다.

'김신조'로 대표되는 북한의 무장공비 남파 작전은 1960년대 내내 이어졌다. 남북한 체제 경쟁이 매우 치열하던 때였다.

한국정부초대통일부장관을지낸강인덕경남대석좌교수는당시중앙정보부북한과장을맡고있었다. 그는북쪽의움직임이심상치않았다고회상했다.

"북한이 특수부대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하지만 훈련 방법이 과거와는 달랐어요. 남쪽으로 내려보내는 간첩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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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3인조 간첩이 동서해안, 휴전선 할 것 없이 내려왔어요. 얼마 있으니까 5인조, 그다음에 7인조가 왔죠."

"강원도에서 부인을 난도질하고 어린아이까지 죽이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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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는 한국군의 월남 파병이 이뤄지던 때로, 북한이 대남 무장투쟁을 벌이기에 최적의 기회였다.

강 전 과장은 정황상 1968년에 대규모 북측 게릴라가 서울을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1967년 11월 초 박정희 대통령에게 관련 보고를 했다. 그리고 실제 1968년 1월 19일 새벽 2시, 전방에서 긴급 전화가 왔다.

"큰일났습니다. 새까맣게 들어왔습니다."

강 전 과장은 북한 무장공비들이 얼마나 훈련을 잘 받았는지, 일반 군인이 1시간에 행군할 거리를 5~6배 이상 빠른 속도로 진격했다고 설명했다.

“눈 속에 숨고, 행군하고, 그래서 21일 보니까 벌써 경기도 송추까지 왔더라고요. 누구를 겨냥하느냐? 박정희 대통령을 겨냥한 거죠. 청와대 기습."

그렇게 31명의 북한 공비들이 청와대 인근 자하문 터널에 다다랐고 종로경찰서 경찰들과의 총격전 끝에 북측 김신조가 생포됐다.

그해 10월 말, 11월 초 또다시 비상이 걸렸다.

강 전 과장은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선인 울진·삼척으로 120명 정도의 게릴라 부대가 상륙했는데 북쪽에서 얘기하는 게릴라 활동지구 해방구를 만들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때 공비들이 위조 지폐를 많이 갖고 와서 화전민촌에 뿌렸죠. 거짓말 하면 쏴 죽이겠다고 위협하면서 공산당 선언을 한 거예요."

이후 1969년 한 해에만 주문진 사건, 흑산도 사건 그리고 12월 강릉발 대한항공 납치 사건까지 북한의 대대적인 대남공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무장투쟁을 앞세운 북한의 대남전략은 1970년대 ‘8.15 평화통일에 관한 구상’(1970), 이산가족찾기 적십자 회담(1971), 7.4 남북공동성명(1972) 등 남측 평화공세에 가로막혔고, 이후 지하공작으로 전환됐다.

1972년 제2차 남북적십자 본회담 회의 모습 (뉴스1)

1972년 제2차 남북적십자 본회담 회의 모습 (뉴스1)

통일부가 공개한 1970년 8월~1972년 8월 진행된 남북회담 내용을 정리한 '남북대화 사료집' (뉴스1)

통일부가 공개한 1970년 8월~1972년 8월 진행된 남북회담 내용을 정리한 '남북대화 사료집' (뉴스1)

김정은과 싸우는 또 다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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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소송 중인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6.25 전쟁 당시 북으로 끌려간 국군포로들이다.

한국과 유엔군사령부가 추정하는 국군포로는 8만여 명.

그들은 긴 세월 험한 탄광에서 강제노역을 해야 했다. 정전 이후 남북간 공식 포로 교환으로 8300여 명이 한국땅을 밟았다.

하지만 돌아오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국군포로 지원단체 ‘물망초’ 박선영 이사장은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들이 매일 밤 천장을 바라보면서 당신의 군번과 고향집 주소,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큰아버지 등 가족들의 이름과 주소를 끊임없이 외웠다”고 설명했다.

"그것들을 왜 외웠겠어요? 조국이 자신들을 구하러 왔을 때 '내가 누굽니다' 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군번만 가지곤 안 되니까요."

"남이 내 군번을 외울 수도 있으니까 군번 외에 나를 입증해 줄 수 있는 인적 자료, 내 피붙이들을 끊임없이 외운 거예요. 그 심정을 누가 알겠어요.”

"남편을 기다리던 할머니가 결국 북한에 계신 할아버지와 연락이 닿았어요. 남편이 돌아올 거라 믿고 이사도 안 가고 시부모님 봉양하면서 기다리셨대요."

"근데 할아버지가 '나 여기서 결혼했어, 같이 가도 되겠냐'고 하니까 할머니가 '무슨 소리냐, 당연히 같이 와야지, 내 남편을 50년 넘도록 뒷바라지 해준 부인이 얼마나 고맙냐'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 편지를 북한에 전달했는데 그 사이에 안타깝게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거예요. 그래서 이 할아버지가 결국 한국에 못 오셨어요."

"한국에 받아줄 가족이 없으면 못 와요. 국방부가 안 받아줘요."

박 이사장은 과거 인연이 닿아 북한에 있는 국군포로들로부터 편지를 전달받았다.

그렇게 자비를 들여 받은 편지가 수백 통에 달한다.

'나 살아있어요.'
'나 좀 구해주세요.'

2000년 평양에서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억류되어 있던 포로들은 조국의 대통령이 직접 자신들을 데리러 온다는 기쁨에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대는 곧 산산조각이 났다.

자신들을 데리러 왔다고 굳게 믿었던 조국의 대통령은 북에 억류된 국군포로에 대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되돌아갔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그해 9월 한국에 있던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북으로 송환됐다. 북에 억류된 국군포로는 단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

실망한 이들은 죽더라도 고향에서 죽겠다며 하나 둘 탈북길에 올랐다.

한국 정부의 도움은 없었다.

그렇게 총 80명의 국군포로가 목숨을 걸고 탈출해 고향땅을 밟았다. 하지만 2011년 이후 한국에 온 이들은 없다.

박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돌아오신 국군포로 어르신도 두 다리로 서지를 못하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며느리가 업고 넘어왔어요. 딸도 아닌 며느리가 아버님 사망신고를 해놓고 두만강을 업고 넘은 거예요. 시아버지가 '죽기 전에 조국 땅을 밟아보고 싶다, 나 죽으면 고향에 묻히게 해달라' 노래를 하시니까. 어느 정도로 간절한 소원이었는지 아시겠어요?"

스스로 탈북하기에 이제 그들은 너무 고령이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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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강제노역을 하다 탈북한 국군포로들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2020년 7월 한국 법원은 국군포로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실제 배상금을 받기 위해서는 또다른 산을 넘어야 했다.

바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다.

이 단체는 한국에서 소비되는 북측 저작권료를 북한 대신 징수하는 곳이다. 지난 2005년 북한 당국과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실제로 북한에 저작권료를 송금하기도 했다. 현재는 제재로 대북송금이 막히면서 저작권료는 한국 법원에 공탁되어 있다.

북한 저작권은 관영 매체인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TV 속 사진과 영상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TV에서 북한 미사일 영상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도 다 저작권료를 지불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북한 저작권료가 사실상 유일한 한국 내 북한 자산인 만큼 이를 압류해 배상금으로 줘야 한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국군포로측 변호를 맡은 엄태섭 변호사는 “법원의 판결은 북한에게 권리 능력이 없다는 거예요. 일단 기본적으로 국가성도 인정이 되지 않고, 그렇다면 적어도 법인이어야 하는데 북한은 법인도 아니고 국가도 아니고 어떤 특정 개인도 아니라는 것이 법원의 논리”라고 설명했다.

박선영 이사장은 국군포로 어르신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고 했다.

“명예를 회복하고 당신들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북한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그리고 지금도 남쪽 하늘만 바라보면서 눈물 흘리고 있을 동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그거 하나뿐입니다."

북한 저작권 사무국과 경문협이 지난 2009년 체결한 합의서 원본 (제공: 국군포로 변호인단)

북한 저작권 사무국과 경문협이 지난 2009년 체결한 합의서 원본 (제공: 국군포로 변호인단)

북한 저작권 사무국과 경문협이 지난 2009년 체결한 합의서 원본 (제공: 국군포로 변호인단)

북한 저작권 사무국과 경문협이 지난 2009년 체결한 합의서 원본 (제공: 국군포로 변호인단)

이렇게 되자 경문협의 입장도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이 문제가 언론에 언급되는 것 자체가 곤란하다고 했다.

경문협 관계자는 BBC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도 국군포로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하지만 저작권료는 북한 개인들의 돈이지, 북한 당국의 돈이 아니지 않나. 이건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경희 샌드연구소 대표는 "북한에는 개인의 돈이 없다"고 했다.

"모든 경제 활동과 그 결과물들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점, 그것을 강조하는 게 북한 체제의 핵심이거든요. 따라서 저작권료는 국가를 운영하는 김정은의 소유라고 봐야 합니다."

pink concrete building with brown wooden windowpink concrete building with brown wooden window

현재 고석주 씨와 국군포로 양측 모두 새로운 소송을 준비 중이다.

경문협으로부터 돈을 받아낼 수 없다면, 한국 언론사들로부터 직접 북한 저작권료를 받아내겠다는 취지다.

국군포로측 엄태섭 변호사는 “한국의 언론사 등 저작물 이용자는 결과적으로는 북한에게 돈을 주는 것”이라며 “경문협이 그들 주장대로 단순 배달의 역할을 할 뿐이라면, 그들 빼고 직접 돈을 지급해야 할 언론사를 상대로 추징금 청구 소송을 한번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엄 변호사는 특히 이 사안이 중요한 이유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히 구분하고 또 실제 가해자로부터  배상액이 지급됐다는 그 가치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작년 10월 8일 한병수 씨(92)에 이어 같은 달 31일 김성태 씨(91)까지 별세하면서 이제 남은 탈북 국군포로는 단 10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포로가 된 지 53년만에 극적으로 탈북해 한국 땅을 밟았던 국군포로 장산욱 씨의 장례식

포로가 된 지 53년만에 극적으로 탈북해 한국 땅을 밟았던 국군포로 장산욱 씨의 장례식

A show poster for Ke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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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북한 자산을 배상금으로 받아낸 사례가 있다. 미국의 '오토 웜비어' 사건이다.

북한으로 관광을 떠난 대학생 오토 웜비어는 국가전복음모죄로 체포됐고 17개월 뒤 혼수상태로 석방돼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엿새 만에 사망했다. 사인은 뇌 조직의 광범위한 손상이었다.

웜비어 유족은 미국 법원에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2018년 2월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은 북한에 "5억113만 달러를 유족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리고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 혐의로 미국 정부에 압류되어 있던 북한 선박의 매각 대금 일부와 북한의 동결자금 24만 달러 등이 웜비어 유족에게 지급됐다.

국제법 전문가인 심상민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미국은 '오토 웜비어 사건'과 같이 피해를 입은 자국민이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을 때 승소할 수 있고, 북한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압류·매각해서 그 대금을 피해자 가족에게 제공할 수 있는 그런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국가”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북한 저작권료에 대한 추심금 소송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네스트'호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네스트'호

때마침 한국 정부도 작년 6월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시작했다.

북한이 2020년 6월 일방적으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기 때문이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 따라 그해 9월 개성공단에 문을 연 남북연락사무소는 그렇게 개소 19개월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문승현 통일부 차관은 BBC에 “소송은 남북관계의 정상화 차원”이라고 했다.

“기존 남북관계를 지켜볼 때 정상적이지 못한 접근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정상화 시키겠다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기본적인 접근입니다."

문 차관은 북한 저작권료에 대한 추심금 소송에 대해서는 "이분들이 최대한 공정하고 사실관계에 입각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통일부 차원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필요한 조치들을 도와드려야 한다, 이런 입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것이 있다.

바로 한국 정부가 북한에 구상권을 청구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선지급하는 방안이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국 정부가 먼저 피해자들의 판결 내용에 대해 배상을 해준다면 국내외에 있는 많은 피해자들이 북한의 인권 침해 책임을 묻는 작업에 나올 수 있을 거라고 봐요."

"한국 정부가 충분히 법률적 검토도 할 수 있고, 피해자들에게 선지급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나중에 북한 당국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을 적용한다면, 지금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해결할 수도 있고, 또 북한의 책임성도 명확하게 특정할 수 있겠죠. 그런 조치를 한국 정부에 촉구하고 싶습니다."

이에 한국 통일부는 “결국 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일”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여정의 끝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왜 이들을 기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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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율 변호사는 “역사 속에서 북한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한 파악이 먼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범죄 행위의 주체가 북한이지만 한국 정부가 실질적인 보상이나 피해 지원을 해주는 것이 맞다고 봐요. 그런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서 사건들이 조명되고 재판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슬픈 역사의 비극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

남북한은 휴전 중이다. 혼란스러운 국제정세 속에 전쟁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한국으로 송환된 국군포로 손동식 씨 추정 유골 (뉴스1)

한국으로 송환된 국군포로 손동식 씨 추정 유골 (뉴스1)

한국 법원은 2024년 2월 14일 국군포로들이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추심금 소송에서 원고 측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국군포로 변호인단은 "어르신들이 이미 3년 전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승소했다"며 "승소 판결에 따른 집행금을 최종 집행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Credits

기획·취재: 한상미
촬영: 최정민
애니메이션: 니키타 데쉬판데, 안드로 사이니(사운드)
애니메이션 총괄: 아그니아 아즈키아
에디터: 김현정
사진: BBC, Getty Images, 뉴스1, KTV, Reuters